도시락 준비

효율 인간

by badac


아침마다 밥을 짓는다.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어젯밤에 씻어 불려 놓은 3인분의 쌀을 압력밥솥에 넣고 가스불을 켠다. 밥이 지어지는 동안에는 이불을 펴서 잠자리를 정리하고 그 위에 커다란 천을 덮는다. 매일매일 이부자리를 개서 한쪽에 두곤 저녁마다 다시 펴는 게 아무래도 너무 귀찮다. 그렇다고 종일 펼쳐놓으면 그건 또 지나치게 게으른 느낌인데다 위생상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이렇게 정착했다. 제법 마음에 든다. 다음으로 고양이 물그릇에 새 물을 채우고, 화장실을 치운다. 순서가 바뀌면 곤란하다. 물을 먼저 갈고 이불을 정리하면 고양이님 마실 물에 먼지가 들어간다. 그러면 안 된다. 화장실을 먼저 치워도 안 된다. 고양이님 마실 물을 올릴 땐 그래도 깨끗한 손으로. (인간) 화장실이 급해도 참아본다. 일에는 순서가 있다. 화장실을 치운 뒤 손을 씻으면서 세수를 한다. (인간 화장실 용무도 이때 처리한다)


딸랑딸랑 밥솥의 추가 흔들리면 불을 줄인다. 오늘의 도시락을 준비한다. 샐러드, 김치 반찬, 주인공 반찬, 후식, 간식이 내 도시락의 구성이다. 지난주에 사놓은 각종 쌈채소가 아직 남아있다. 상추, 겨자채, 케일, 샐러리를 먹기 좋은 크기로 미리 썰어 커다란 통에 담아두었으니 도시락 용기에 옮겨 담기만 하면 된다. 점심과 저녁 두 통을 챙긴다. 오늘의 주인공은 된장 가지 조림이다. 어젯밤에 가지를 썰어 칼집을 내고 된장 앙념을 푼 채수에 넣고 약한 불로 끓였다. 그저께 주인공 반찬이 데친 표고버섯이어서 남은 채수를 이용했다. 오렌지 한 알을 까서 작은 통에 담고 아침으로 먹을 사과를 썰었다. 간식으로는 오이를 챙겼다. 쟁반 위에 오렌지껍질, 사과 꽁다리, 오이 꽁다리가 쌓였다. 음식물 쓰레기를 모으는 통으로 한꺼번에 가져간다.


갓 지은 밥은 반찬 없이 꼭꼭 씹기만 해도 달다. 밥, 김치, 주인공 반찬 조금으로 아침을 먹고 점심과 저녁은 통에 담는다. 도시락 가방으로 쓰는 에코백이 작게 느껴진다. 내일부터는 더 큰 가방을 들고 다녀야겠다. 도시락 두 개를 싸서 작업실로 출근하는 날은 세 끼 같은 음식을 먹는다. 지겨운가? 잘 모르겠다.

직접 챙기는 끼니는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려고 노력하다보니 아무래도 심심해서 자극적인 맛이 그립기는 하다. 저녁마다 소파에 기대앉아 배달 어플을 들락날락하면서 치킨을 시켜 말어 고민한다. 그걸 먹고나서도 허전함이 달래지진 않을 거야, 먹어도 맛있지 않을 거야, 딱 먹고 싶은 게 그건 아닐 거야, 뭔가 먹고 싶다는 마음도 진실이 아닐 거야. 휴우~ 오늘도 무사히 넘어갔다. 그러기를 여러 날, 결국 지난 일요일밤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주문했다. 역시 맛은 없었다. 남은 치킨과 밥을 도시락으로 쌌다. 다음에 또 치킨이 시키고 싶어질 땐 이 맛과 함께 육식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이유를 똑똑히 기억해야겠다.


가장 최근의 맛있는 기억을 떠올려본다. 깻잎을 넣고 싼 김밥. 어릴 땐 쌉싸름한 맛이 싫어서 삼겹살을 먹을 때도 깻잎은 손도 안 댔었는데 요즘은 깻잎이 참 좋다. 내일은 깻잎을 넣고 김밥을 싸야겠다. 고슬고슬 지은 밥에 소금과 식초를 뿌리고 참기름을 살짝 두르면 밥만 먹어도 맛있다. 오이도 넣어야지. 속이 너무 부실한가. 표고버섯이 남아있으니 양파 넣고 볶아서 주인공 반찬을 만들어야겠다. 내일은 김밥과 버섯, 투톱 주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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