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일과 임인년 설날인 2월 1일을 경기도 수원의 선배네 집에서 혼자 맞이했다. 2021년 12월 22일 집을 나섰고 강릉에서 1박 2일, 수원에서 12박 13일을 지내고 2022년 1월 5일 완주 집에 들렀다가 6일 후에 다시 수원으로 갔다. 23박 24일을 보내고 며칠 전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 가을부터 길고 깊은 절망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울적한 기분이다, 우울하다, 괴롭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서 또 어쩔꺼냐 하는 생각이 바로 따라온다. 꽉 막혀 답답한 마음을 녹여보려고 누워도 보고 걸어도 봤다. 웃고 울고 잠을 잤다. 상담을 다시 시작했지만 여전히 기운이 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거니 오늘 하루만 무사히 지나가자고 다짐하며 보냈다. 다정한 사람들이 걱정도 하고 인사도 주고 마음을 보냈지만 여전해서 더 갑갑하고 미안하고 이런 상황들이 싫고 또 싫었다.
상담을 마친 저녁 시간이었다. 조금 떠오른 어떤 용기와 그리움, 희망 따위 흐릿한 감정들이 사그러들기 전에 보고 싶은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고, 당장 오라는 말에 다음날 가지를 차에 태우고 강릉에 갔다.
가지는 2017년 9월부터 같이 사는 고양이다. 완주에 와서 두번째 집으로 이사할 때 두 식구가 되었다. 우리집에 올 때 태어난 지 3~4개월 가량 되었을 거라고 해서 가지 생일은 5월 5일 어린이날로 했다. 가지 어린이는 길출신으로 처음에 집에 왔을 땐 집 앞에 나무 타러 인간이랑 같이 나가서 놀기도 했는데 차차 집고양이로 잘 적응했다. 그땐 가지가 강아지처럼 산책도 같이 하고 외출도 좋아하는 고양이로 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스타가 된 가지 덕도 보고 살줄 알았는데...) 시골길 조심조심 운전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카페 알바하러 가는 날 차에 태워 같이 출근도 하고 다른 고양이 친구집에도 놀러갔었다. 2018년 3월엔 내 차타고 장흥까지 가서 배 타고 제주에 간 적도 있고, 2021년 1월에 기차타고 서울도 갔다. 제주에 갈 때는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돌아오는 배랑 차에서는 거칠게 숨을 쉬길래 걱정을 많이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응급실에 갈 생각으로 긴장해서 집에 왔는데 다행히 안정이 금방 됐다. 서울에 갈 땐 역까지 택시, 기차, 다시 택시를 타고 갔는데 다행히 큰 문제가 없어보였다. 한 달 정도 일을 보고 내려올 때는 친구차를 타고 내가 쓰다듬으면서 왔는데 그래도 너무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울고불고 난리였다. 다음부턴 절대 가지랑 자동차는 못타겠구나 싶었다. 그때 확실히 생각했다. 가지랑 이제 멀리 떠날 수는 없겠구나. 2019년 봄에 친구 여럿에게 부탁하고 다른 나라로 2주 여행을 다녀왔는데 돌아왔던 날 가지는 한참(약 5분, 아니 더 짧았을지도) 품안에 안겨있었다.
가지를 두고 오래 떠날 수도 없겠구나. 가지를 데리고 어디로 갈 수도 없겠구나. 이 작고 연약한 생명이 내게 온 순간, 나는 그런 것들을 포기해야했던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