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데 얼마나 들까?
종이 종류, 평량(종이 무게), 쪽수, 제작 부수에 따라 제작비는 천차만별, 총비용이 얼마나 들지 가늠할 수 없다. 책이 두꺼울수록, 좋은 종이를 쓸수록, 반짝이는 색을 쓴다거나 글자를 올록볼록하게 만들거나 뭔가 특별한 작업을 하면 더 비싸진다. 인쇄비 외에도 인디자인이나 포토샵 같은 필수 프로그램 구독료, 교정을 보기 위해 종이에 출력하는 비용 등이 든다. 마케팅 비용까지 생각한다면 포장비나 북페어 참가비도 고려해야 한다. 복잡하니까 일단 인쇄비만 따져보자. 인쇄소 웹페이지에서 종이 종류와 인쇄 방법, 쪽수와 수량를 입력해 바로 견적을 내 볼 수 있다. 말은 쉽지만 컬러로 할지 흑백으로 할지, 종이는 뭐로 할지 정하고 대략적인 쪽수라도 알아야 한다. 처음 책을 만들어보는 사람이라면 지금 가지고 있는 원고가 책이 되었을 때 어느 정도의 두께가 되는지, 몇 부나 찍어야 할지 막막할 것이다. 충분히 그 마음을 이해한다. 나 역시 책을 여러 권 만들어봤음에도 원고량으로 몇 페이지짜리 책이 될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오늘 또 미가옥>과 <소탐대전>을 떠올려 볼 때, 200쪽 이하의 책을 300부 정도 찍는다면 흑백 150만 원, 컬러 300만 원 정도 예산을 세우면 될 듯하다. 2024년 9월 기준이다. 물가 상승에 따라 종이 등 원자재 값이 오르면 더 비싸질 수 있다.
* 샘플 제작과 옵셋 인쇄 모두 인터프로프린트를 이용했고 가격과 인쇄 품질, 서비스에 만족했다. 대전에 살고 있으니 동네 인쇄소를 이용하고 싶지만, 직접 인쇄소에 찾아가 견적을 묻고 주문하는 게 어려워서 컴퓨터 앞에서 인터넷 선배님의 후기를 읽고 궁금한 건 1:1 게시판으로 질문하면서 진행했다. 독립 출판 플랫폼 인디펍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독립출판제작자들이 디지털인쇄 업체로 많이 이용하는 곳은 태산인디고와 북토리, 금비피앤피, 알래스카인디고이고, 옵셋으로 인쇄할 때는 상지사피앤피, 영신사, 한영문화사를 추천한다고 한다.
* 디지털 인쇄와 옵셋 인쇄의 차이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내 지식과 정보로는 무리다. 초보 독립 출판 제작자로서 알아야 할 내용은 500부 이하는 주로 디지털 인쇄, 그 이상은 옵셋 인쇄를 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디지털 인쇄는 소량 제작도 가능해서 1부도 만들 수 있다. 물론 많이 찍을 수록 단가는 내려간다. 300부까지는 무조건 옵셋보다 디지털이 저렴하고 그 이상은 견적을 비교하면서 판단하면 될 것 같다. 옵셋 인쇄는 별도의 금속판을 제작하고 물과 기름의 반발에 의한 어쩌고저쩌고 방식으로 인쇄가 되며 인쇄 품질이 좋다. 정밀하고 정확한 색감 표현이 가능하지만 단가가 비싸서 500부 이상은 찍어야 한다. 500부나 1천 부나 가격 차이가 크게 없다.
페이지 수 예상하고 종이 정하기
따라 만들고 싶은 책의 한 면에 들어가는 글자 수를 세서 대략적인 책의 분량을 가늠해 보자. 전체 원고의 글자 수를 페이지당 글자수로 나누면 대략적인 페이지가 나온다. 거기에 그림이나 사진 추가되면 꼭지 수만큼 쪽 수가 늘어난다. 본문 외 부속 원고와 제목면(장도비라 등)까지 고려하면 20여 쪽이 더 늘어난다. 보통 한 꼭지의 글을 책으로 디자인할 때 제목을 적고 몇 줄을 띄거나 다음 면에서 본문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례를 들어 설명해 보자면, <오늘 또 미가옥>의 초고는 약 4만 5천 자였다. 그림이 없는 한 면에 들어가는 글자는 500자 내외로, 글 분량으로만 따지면 90쪽이 나온다. 거기에 그림 20여 쪽, 서문과 목차와 부록 등 부속 요소를 포함해서 20여 쪽 더 늘어난다고 생각하면 130쪽을 예상할 수 있다. 실제 책은 140쪽이었다. 188쪽짜리 <소탐대전>의 초고는 6만 5천 자, 같은 기준으로 한 쪽에 500자가 들어간다고 계산해서 글만 채웠을 때 130쪽, 그림도 더 많이 들어가고 부속 요소도 고려하면 50쪽 이상이 추가될 것이다.
이렇게 책의 쪽수를 예상하고, 표지와 내지에 사용할 종이를 선택해 견적을 내본다. 사진이나 그림 이미지의 색이 잘 나오게 하려면 종이를 고를 때 훨씬 어렵겠지만 글 위주의 책은 보통 내지용으로 모조지 80그램이면 충분하다. 평량이 곧 두께인 것은 아니므로 종이 샘플을 보고 결정하면 좋은데 종이 샘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이며, 본다고 또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인터넷 선생님들의 후기를 찾아 읽으면서 종이에 따른 특징을 읽고 공부하기는 했지만 가장 좋은 건 주변에 먼저 책을 만든 독립 출판 선배님에게 묻는 것. 무슨 종이를 썼는지 물어보고 괜찮아 보여서 그걸로 했다. <소탐대전>표지는 M러프 백색 210g, 내지는 미색모조 80g이고 <오늘 또 미가옥> 표지는 M러프 EW 210g, 내지는 미색모조 80g이다.
*장도비라는 장이나 부가 나뉠 때 본문 내용 없이 제목만 적거나 장식으로 들어가는 쪽이다. 속표지를 도비라라 부르고, 장을 구분하는 면을 장도비라라고 부른다. 업계에 남아있는 일본 용어다. 이름을 아는 게 중요하진 않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들어야 하니 많이 쓰이는 용어는 기억해 보자. 세네카는 책등, 하시라는 본문면 하단에 표기된 쪽수나 책 제목, 장 제목을 말한다. (요즘엔 쪽 수가 위나 옆에 있는 경우도 많다.)
몇 권 찍을까?
출판사를 통해서 책을 낼 때는 초판 2천 부를 찍었는데 독립 출판으로 직접 책을 만들 때는 당연히 그 정도를 찍을 수 없다. 가족과 지인에게 최대 100권 팔고 독립서 점이나 북페어에서 팔 수 있는 수량의 최대를 100권으로 한다면 200부 정도를 찍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견적을 내보면 200부와 300부의 차이가 10~20만 원밖에 차이가 안 난다. 책값을 1만 원이라고만 잡아도 20만 원 들여서 100만 원어치 책을 만들고 그걸 다 팔면 수익이 80만 원이잖아. 이런 단순한 생각으로 100부 더, 더, 하다가 욕심내서 처음부터 책을 너무 많이 찍으면 책상 밑과 옷장 한쪽에 꾸역꾸역 책을 쌓아두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상업 출판사에서도 책이 팔리지 않을 때면 보관 비용 대비 예상 수익을 비교해 창고에 쌓아둔 재고를 폐기하는데, 개인이 생활하는 집에서 침실이나 거실을 창고처럼 써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는 말자. 아무리 썩지 않는 물건이라고 해도 재고가 잔뜩 쌓여있는 모습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다. 같이 책 만들기 모임을 하는 동료 작가님은 딱 100부만 찍어서 지인 판매와 선물로 다 소화하겠다고 한다. 얼마나 팔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려울 때는 소극적으로 판단해 100부 이하로 소량만 찍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잘 팔리면 그때 추가로 제작해도 책은 금방 나온다. 100부 찍어서 판 돈으로 100부 더 찍고 또 찍어서 증쇄하는 기분도 좋겠지. 그런데 저는 욕심부려서 500부나 찍었고 300부 남았습니다. 각각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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