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애프터 양(코고나다, 2021)을 봤다
화제의 영화 '애프터 양'(코고나다, 2021)을 보고 왔다. 최근 몇 년 간은 정말 극장에 안 갔다. 코로나 영향도 있지만, 그냥 어느새 서서히 극장에 가는 게 비일상이 되면서 그 공간 자체가 조금 버겁게 느껴지게 되었던 것 같다. 별 일 없이 멀어져 연락 끊기는 관계와 비슷했다. 아쉽지도 않았다.
우울증 관리 어언 4년 차. 약한 우울감에 정체된 게 작년 하반기부터니까 꽤 오래됐는데 지난주에 갑자기 감정의 반추도 중요하지만, 이젠 좀 공격적으로 즐거움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회의감과 반성과 슬픔에 대한 시간을 침범받으면 인생 전반에 김이 새 버려서 다 때려치우고 싶어 지기 때문에 스스로 자연스럽게 이런 마음이 먹어지는 때에 도달한 것 자체가 성취 같았다. 매일매일 즐거운 순간을 적극적으로 늘리고, 더 오래 기억에 새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늘의 극장행도 그 일환이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보러 가면... 어쩌면 즐거울지도? 그리고 해가 많이 길어졌으니까 저녁 무렵에 서쪽을 바라보면서 산책하면 틀림없이 좋을 테고.
영화는 괜찮았다. 다만 요즘 영화를 안보다 보니 생각나는 레퍼런스가 다 옛날 옛적 것들이었는데, 거기에 더해 이 영화의 주제도 분위기도, 그리고 혼자 극장에 가서 약간 명상적인 영화를 보고 나와 광화문을 걷는 행위 자체도 여러모로 대학생 시절에 대한 감상을 불러일으켜서 괜히 머쓱해졌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한 건 아니다. 극장에 앉아있을 때 살아있다는 기분을 회복할 수 있었던 시기보다는 극장에 일 년에 한 번 꼴로 가도 괜찮은 일상을 일구어 살고 있는 지금이 훨씬 낫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오늘의 일상에 이 즐거움을 다시 복구시켜도 좋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 그 생각 너머로 오래된 감정이 향수도 추억도 아닌 어떤 것으로 모호하게 비쳐서 좀 울렁거린다. 즐거운 거 맞는지 헷갈려.
그치만 작품에 대해 생각하는 건 확실히 즐겁다. 내 생각에 이 영화의 첫 번째 주제어는 기억이 아니라 죽음이다. 양에게는 미안한 판단이지만 나는 인간이니까. 그리고 이 영화가 총체적으로 목표했던 성과는 상실 뒤에 이어지는 조용한 비애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 보고 돌이켜보니 첫 장면에 많은 정보가 담겨있는 영화였는데, 첫 문단이 좋은 책들이 그렇듯 이 영화도 은유에 완결성이 있었다. 사실 영화 초반엔 세트장을 오가며 장면만 바꿔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느낌이라 폐쇄적인 공간감에 숨이 좀 막혔는데, 양의 기억에 접속하는 장면부터 상관 없어졌다. 미시 우주가 펼쳐지는 순간의 스펙터클이 순수하면서도 조악하지 않았고, 이어서 요즘 관객에겐 너무 생동감 있을만한 순간들이 연달아 전개되니까 확 몰입됐다. 그런데 정말 스마트폰이나 패드로 보면 너무 무의미해질 것 같은 이미지들이긴 하다. 가급적이면 극장에서, 웬만하면 스크린 중앙 정면에서 보세요.
예전에 세계에서 제일 완성도 높은 파티세리는 프랑스 아니고 일본에 있을 거라고 확신했던 적 있는데, 이 영화 보면서도 가장 ‘아시아적'인 건 북미에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감독인 코고나다가 한국계 캐나다인이라고 들었는데, 동양계 한국인인 내게 ‘아시아적’인 에스테틱(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음)의 상이란 것은... 정말 조금도 그려지지 않는다.(특히 어딘가 zen 한 느낌으로는 더더욱) 유교적인 것, 도교적인 것, 불교적인 것, 중국풍, 일본풍, 한국풍 뭐 그런 것은 알지만, 어설프게 짬뽕된 것이나 개량된 것도 떠오르지만, 이 영화에 등장한… 서양 서브컬처에 축적된 (동)아시아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 이미지들을 어떤 라이프 스타일에 채쳐서 다시 반듯하게 다려낸... 이런 ‘아시아적인 것’은 내게 너무 이국적이고 그래서 매력적인 기호였다.
하지만 그건 알고 있다. 양(저스틴 H. 민)과 제이크(콜린 패럴)의 대화에 등장했던 이야기. 차 한잔에 시간과 공간이 담겨있고, 그것은 형언할 수 없는 맛이라는 그 세계관, 그 시간성을 알고 있는 인간으로 살아온 지 아주 한참 됐다. 이건 배운 것이라기보다는 생득적인 감각을 성장과정에서 잃어버리지 않은 것에 가까운 것 같다. 근데 이게 동양적인 건가?
처음 디지털카메라를 갖게 되었을 때부터 그림자 사진을 찍는 데 집착했었고 지금도 약간 습관으로 남아있는데, 그 이유는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기억났다. 그림자와 반사된 빛은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존재의 증거이자, 연속적인 시간으로부터는 자유로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마치 종교를 믿듯이 그 사실에 의지했다. 극장에 앉아있을 때 가장 살아있다고 느꼈던 게 너무나 당연하네. 이런 건 기억나지 않았어도 괜찮은데 기억해 버려서 조금 안타깝다. 그래도 즐거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