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 노무현, fucking u.s.a
쓰고있는 단행본 원고의 일부(초고). 이 글은 재작년 쯤 썼을 것이다. 이게 어떤 책이 될지 잘 모르겠다. 다만 그냥 제21대 대선의 장면을 보는데, 그게 이 시절의 한 결과로 느껴졌다. 오늘 나누고 싶어져 일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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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중학교는 혼자 있는 사람이 유독 이상해 보이는 공간이다. 특히 교실 이동할 때, 매점갈 때, 소풍날 같은 때 혼자 있으면 꽤 문제처럼 보인다. 멋모르고 1학년을 즐겁게 보내고 속으로만 질풍노도의 2학년을 넘긴 나는 3학년 때 결국 혼자가 되었다. 혼자는 반에서 겉도는 이상한 애지, 중립적인 개인이 아니다.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에는 괜찮았지만 점심은 다른 반의 친구들과 먹었다. 이미 새학기가 꽤 지났는데 뒤늦게 무리에 다가갈 숫기가 없어서 택한 건 혼자 있는 게 아무 문제가 아니라는 자기암시였다. 물론 마음은 믿는 그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교과 이동 시간엔 내심 위축되었고, 결국 끝까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외로움보다도 체면이 구겨지는 기분이었다. 아마 “혼자 있지만 왕따는 아님” 같은 상태메시지를 달고 다닐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나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보다 불안감과 피해의식, 소속감에 대한 욕구를 숨기는 데 에너지를 쓰면서 그해를 넘겼다. 결국 숨기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별 문제는 안됐다. 남들은 그런 걸 알아차릴 만큼 내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은 아마 내가 혼자 다닌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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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가는 곳은 걸어서 10분 거리의 집과 학교, 만화 대여점. 하지만 매일 기분이 지구내핵부터 대기권까지 널을 뛴다. 1학년 때 친했던 친구가 다음 해에는 반에서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다고 한다. 복도에서 우연히 만난 내게 너도 찐따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 만화부 찐따들이랑 놀지 말라고 충고를 한다. 이미 눈빛이 달라진 친구도 있다. 갑자기 너도 나도 문구점에서 도둑질을 시작해서 유행이 된다. 틀린 것이 평범해질 수 있단 걸 알게 된다. 학교에는 공공연한 왕따들이 있고, 모두 여자애들이다. 별달리 이유는 없다. 이름이 특이하거나, 덩치가 크다거나, 쌍둥이이기 때문에. ‘일진’에게 괴롭힘을 당한다기보다 대체로 평범한 남자애들의 심심풀이 놀림거리가 된다. “야 저기 니 여친 지나간다.” 그런 종류의 말에 그 애들은 화도 내지 않고 눈길도 안준다. 갑자기 전혀 안친한 남자애가 사귀자고 해서 거절했더니 내 머리를 책상에 가져다 짓누른다. 놀랍게도 내겐 그 평범한 남자애의 아귀힘에서 벗어날 힘이 없단 걸 깨닫는다. 얌전하고 착한 친구와 가까워져 집에 놀러갔는데, 갑자기 같은 반 여자애들을 출석번호 차례대로 세어가며 쌍욕을 한다. “우리 반엔 날라리가 너무 많지 않니? 31번 얜 싸보여. 39번 머리가 텅 비었어. 42번 얘는 완전 미친년이지. 걸레.” 다음날 교실에서 만났을 때 친구는 여전히 조용히 웃고 있다. 우리는 이제 베프다. 비밀을 들었으니까. 그 애는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런데 나는 그 애를 제외한 모두가 거북하게 느껴진다.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미국 선수 안톤 오노가 우리나라 선수 김동성에게 저지른 반칙 때문에 화가 난 몇 몇이 운동회 만국기에서 미국 깃발을 훼손하고, 9.11테러가 반영되지 않은 영어 교과서 지문의 세계무역센터 사진에 충돌하는 비행기를 그리며 낄낄댄다. ‘다 뒤졌음.’ 과학 시간에 해부용으로 쓰인 황소개구리들은 마취에서 풀려난 뒤 탈출한다. 과학 선생님이 학내에서 개구리를 잡아오면 수행평가 가산점을 주겠다고 하지만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사랑이란 거라도 해보고 싶지만 학교 남자애들은 최악이다. 얼마 전엔 자기 여자친구 엉덩이를 만졌다는 이유로 남자애들끼리 주먹질이 오갔다. 나는 영향력이 없고 내심 오만해서 마음 둘 곳이 없다. 오타쿠 커뮤니티의 소년만화에서 벗어난 나는 이제 순정만화를 탐독한다. 대부분의 순정만화에서 여주인공은 절대로 아름답고, 선하고, 억울하며, 자신을 스스로 변호하지 않아도 결국에는 모두가 진실을, 그녀의 선량함을 알아주고는 한다. 이제 달콤쌉싸름한 자기연민과의 긴 내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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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담임은 군대식 말투를 쓰는 지긋한 중년 남자로, 그와 나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도 유대도 없었다. 대화라고는 진로 상담 때가 다였다.
“너도 특목고 준비하냐.”
서류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직장인다운 단조로운 목소리였다.
“아니요?”
그는 반색을 하며 잘 생각했다고 나를 격려하더니 특목고 수험생들의 편의를 봐주는 분위기에 대해서 투덜거렸다. 전교생이 500명인데 백 명 정도는 특목고 준비를 하고 있었고 가을무렵부터 그 애들은 다 학원에 가느라 결석을 했으니(물론 생활기록부에 기록은 남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과연 이듬해에는 33명이 특목고에 진학했다는 현수막이 학교 벽에 붙었다. 사상 최다 합격이라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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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과 강북이라는 구분이 우리들 입에도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강남 애들은 생일 선물로 MP3 같은 거 준대” 진짜일까? 궁금하면서도 그런 걸 수군거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비강남 인구로서 어쩐지 쪽팔리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걔네는 “강북 애들은 생일 선물을 아트박스에서 산대”같은 말 안할 것 같으니까. 꼭 그런 구분이 아니더라도 생일 문화는 동네마다 다른 걸지도. 도둑과 경찰 놀이나 공기놀이의 규칙이 동네마다 미세하게 다른 것처럼. 우리는 중2쯤 되면 친구 생일 날 따로 선물을 준비하기 보다는 3-4천 원씩 돈을 모아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 혹은 그 해 유행한 컴필레이션 CD나 작은 악세서리 같은 걸 선물로 준비한 뒤 케익과 함께 주고, 친구가 쏘는 패스트푸드점에 갔다가 시간 당 3천원 쯤 하는 노래방에 가는 게 관례였기 때문에 기십만원 하는 MP3를 또래들이 주고 받는다는 건 도시괴담처럼 자극적이었다. 그땐 인스타그램도, 인터넷 쇼핑몰도 없었다. 하두리 웹캠과 세이클럽, 버디버디 정도로는 남들이 뭘 먹고 뭘 입는 지 알 수 없었다.
나에게 강남은 멀티플렉스와 코엑스몰이었다. 우리는 영화를 보러 멀티플렉스를 찾아 먼 길을 떠나곤 했다. 아직 CGV나 메가박스가 베드타운 지근거리까지 점령하지 않았을 무렵, 동네의 오래된 단관극장들이 무리하게 개조해서 관수를 늘리던 무렵이었다. (내가 디즈니의 인어공주와 팀버튼의 배트맨 시리즈와, 짐 캐리와 세계 최고 미녀 카메론 디아즈가 나오는 마스크를 봤던 동네 영화관은 1개 관을 여러 개로 쪼개놔서 앞의자에 무릎이 닿았다.) 당시 막 개통한 6호선을 타고 태릉입구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면 강변 테크노마트나 삼성 코엑스몰이 신내동에서 그리 멀지도 않았다. 하지만 더 좋은 학원과 더 좋은 병원을 찾아내는 정보력을 가진 엄마가 있는 친구들은 강남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실감하는 바가 있는 듯했다. 그 애들은 삶에서 이미 여러번 어떤 법칙을 확인한 것처럼 단언했다. 좋은 거, 새로운 건 무조건 다 거기에 있다는 법칙. 여기, 우리 동네까지 와있는 건 이미 다 낡은 것들 뿐이라는. “노원 롯데백화점이 무슨 백화점이야. 그냥 슈퍼지. 노원 슈퍼마켓.” 그렇구나. 세상엔 그런 가설이 있구나. 좋은 건 다 강남에 있다는 가설. 나중에 강남에 가게 되면 정말 그 가설이 사실인지 확인해봐야겠다. 나는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서운하거나 재수없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노원 롯데백화점이 미도파 백화점으로 TV 광고에 나오던 때가 무상하게 떠오르긴 했지만) 중요한 건 우리 둘 다 세상에 불만이 있고 이 동네에 살며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거였으니까. 무엇에 대한 냉소든 간에 그걸 주고 받을 친구가 필요한 시기였다. 친구가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가 사실인지 물어볼 수 있는 곳은 나 역시 엄마였다. 엄마, 친구 누구가 그러는데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픽 웃으며 단박에 무시했다. “강남? 너도 강남 많이 가봤잖아. 어릴 때 예술의 전당 갔던 거 기억 안나니?” 우리 엄마가 말하는 강남은 너무 지나치고, 과시적이고, 촌스럽기만하고, 정신없고, 겪어보면 막상 별 거 없는 것들의 공간이었다. 너무 지나친 장식, 너무 지나친 가격, 너무 지나친 사교육과 사치…, 비싸기만 하고 맛 없는 음식. 예전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동네. 그렇구나. 하지만 직접 봐야 알 수 있겠지. 엄마의 인상평은 친구네 엄마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걔네 엄마 비싼 레스토랑가서 잘난척을 어찌나 하던지. 나는 좀 웃겼어. 엄마가 집에서 만드는 파스타가 훨씬 맛있지 않니? 양도 많고. 그치? 옷도 가만보면 다 골프웨어야. 네 친구도 엄마 등쌀에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거야. 착한 앤데… ” 아. 나도 걔네 엄마가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아직 알 수 없었다. 골프웨어만 입고 다닌다는 게 의미하는 바를… 영원히 몰랐어도 좋으련만. 타인에게 독해당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라는 강박이 살며시 내 내면의 지형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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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을 만나서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나는 우울했다. 한비야는 지구 밖으로 행군하고, 나는 우울했다. 한국은 월드컵 4강에 진출했고, 그건 정말 대박적이었지만 나는 우울했다. 노무현이 극적으로 대통령이 되었고 꽤 멋진 드라마였지만 나는 우울했다. 진보정당의 젊은 정치인들이 17대 국회에 입성했지만 나는 우울했다. 우리 집엔 55년생 80 학번의 전교조 교사가 살고 있었고, 그는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 된 날 당장 광화문에 나가서 밤새 기쁨을 만끽했기 때문에 00년부터 04년까지의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가진 이들에게 얼마나 뚜렷한 기승전결의 승리담인지 나도 잘 알았다. 그리고 내게도 모두 감동적이고 의미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결같이 우울했다. 역사의 앞면이 진보하는 듯 보이고, 제법 세련되어져 가는 듯 보였지만, 교실도 친구들도, 친구들의 부모님도, 선생님들도 달라진 건 없었다. 우리는 앞면과 함께 성장하지 않았다. 우리 삶은 뒷면에 속해있었고, 그건 메인 플롯에 역행하는 서브 플롯들의 세계, 부작용의 세계였다. 야간학습이 금지되면 강제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평준화 지역에서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주소 이전을 하고, 특목고 입시학원에 갈 시간을 확보해주기 위해 학교가 출결관리를 해주는 세계. 지금은 어떨까? 세계는 이제 서브 플롯과 메인 플롯의 위치가 전도된 세계, 부작용이 정치적 의사결정을 완전히 압도하며 전면을 장악한 곳 같아보이는데, 가정이나 교실, 키즈카페와 놀이터 등 보호자 슬하의 세계는 어떤지 가끔 궁금하다. 꼬마라고 부르는 실수, 그의 세계를 전도된 세계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고 말을 걸고 싶은데. 이 순간 떠오르는 게 왜 “아줌마 잘 먹지?” 밈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