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이번 달 들어 버린 물건이 기억나지 않는다. 학교 졸업 후 쓰지 않는 칼판을 버릴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지내길 반복했지만 차마 수업의 추억이 아쉬워 일단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웠다.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격은 어렸을 때부터였다. 어릴 때 좋아했던 학용품들, 과자에 들어있던 따조와 스티커들, 어릴 때 친구들과 주고받던 온갖 쪽지와 편지들, 초등학교 때의 일기장들... 이런 추억이 짙게 녹아있는 물건들은 이해하지만 기본적으로 어떤 물건이든 잘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고 살았다. 이런 성격도 유학을 오며 생존의 문제가 되니 자연히 고쳐지는 것이 신기하다. 잦은 이사가 빠질 수 없는 유학생활에서 이사는 오롯이 내 몸뚱이로 혼자 처리해야 하는 노동이기에 짐은 언제나 이민가방과 캐리어에 가득 채워 혼자 이고다닐 수 있을 정로도 제한해야 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라도 떠날 수 있게 최소한의 살림살이만을 영위하는 것은 유학생 삶의 필수 조건이랄까. 좋아하는 책도 이젠 내가 이사할 때 들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할 짐일 뿐이다. 어느 곳에서도 안정감을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시절이 바꾼 생활 형태다. 졸업을 하고 직장을 다니는 지금도 형편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이게 기본 체질이 된 지 이제 5년이다.
좁은 개인공간의 물건들은 비록 그 양이 적을지라도 순식간에 날 갑갑하게 한다. 버릴 것 없는 생필품으로 빼곡히 찬 작은 서랍장을 멍하니 보며 바라보며 단순하게 살고 싶다 생각한다. 퇴근하자마자 하루로 어지럽혀진 방을 정리하고 스탠드만 켠 채 미니멀리즘 책과 유튜브를 본다. 타인의 미니멀라이프를 보니 이제야 숨이 탁 놓인다. 본격적으로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려고 미니멀리즘 전용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버리는 물건을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올린 게시글을 훑어보니 이건 그냥 뭐 매일 일상 쓰레기를 집 밖으로 내다 버린 정도이긴 하다. 버릴 게 없으면 영수증이라도 버리라고 하는 미니멀리즘 전문가들의 조언을 믿으며 이게 어디야 하고 위안한다. 작은 것이라도 매일 하나씩 버리면 한 달이면 서른 개의 물건이 줄어있으리라 기대하며 시작한 프로젝트인데 지금까지 업로드한 날짜들을 확인하니 매일 무언가를 버린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진 않다.
친구들과 카톡으로 미니멀라이프에 대해 얘기하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물건밖에 없어."라는 무의식의 소리가 나왔다. 숨 막히는 생활에서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내 방이니 여기서라도 숨구멍을 내고 싶은 걸까. 일, 나이, 이루지 못한 꿈들, 돈, 그 안에서 숨이 막히려고 하면 황급히 미니멀리즘 콘텐츠를 본다. 텅 비어있는 고요 속으로 숨는다. 그것이 비록 모니터 속 세상일지언정.
하고 싶은 수많은 리스트 중에서 우선순위를 세우고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 불필요한 인간관계에 더 이상 에너지를 쏟지 않는 것 모두 미니멀리즘의 확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욕심을 부려 모든 것을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쥐지 않고 과감히 쳐내는 것. 내 주위를 도는 타인들의 궤적을 단순화시키는 것. 감정소모에서 벗어나는 것.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르며 엉뚱한 곳에 쏟았던 에너지를 소중한 것들에 집중하는 것이 내게 필요하다. 단순하게 살자. 미니멀하지만 단단한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