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과 이별 사이 그 어딘가.
(2. 21. 2023)
"우리 그만 헤어지자. 그동안 고마웠어. 앞으로 서로가 없는 인생 각자 행복하자."
이별은 꼭 연인 사이에서 성립되는 것일까. 우리의 관계가 친구라는 이름으로 성립된 이상 어쩌면 우리는 연인보다도 끈질기게 서로를 인내하는 중이란 생각을 했다. 물론 "손절"이라는 개념이 언제부턴가 너무 널리 퍼져있지만 손절과 이별의 개념은 결코 같지 않다. 우리는 손절이라는 방식 이외에 조금 더 나은 이별을 우정에서 가능시킬 수 없을까.
어떤 우정은 사랑보다도 더 끈질기고 상처를 주면서도 놓지 못한다. 위로하며 동시에 상처를 주고 고무줄처럼 멀어졌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가까워지고 아끼는 만큼 미워하고 증오하기도 한다. 각각의 총량이 이 쪽이 높아졌다 저 쪽이 높아졌다 50대 50에 가까운 수치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우정이란 이름이 사랑과 미움 사이에서 유지된다.
어쩌면 이런 종류의 우정이란 통념적인 우정과 사랑의 언저리에서 서성거리는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우정이 0, 사랑이 100이라는 수치를 갖는다면 우리는 0부터 99.99999를 모두 우정이라 칭하니까. 아무리 100에 가까워도 99.999999999와 100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무한이 있다. 그래서 어떤 우정은 사랑에 가깝다 할지라도 그것은 사랑이 아닌 우정이라 불릴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그러기에 어떤 우정은 사랑만큼이나 고되고 지난하며 큰 감정소모를 불러오기도 한다. "차라리 애인이었더라면 진작에 헤어졌을 텐데."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 만큼 말이다. 연애를 했더라면 아마 우리는 3개월에서 길어봤자 6개월을 유지했을 테고 이별이라는 깔끔한 관계의 매듭을 지었을 텐데. 그리고 서로의 인생에서 짧은 흔적 하나 남기고 영원히 퇴장했을 텐데. 차라리 연인이었더라면 진작 헤어지고 자유 했을 텐데. 왜 친구 사이에서는 이별이 없을까. 우정에도 이별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정과 사랑의 차이점 중 하나는 우정에게는 무의식적으로 '지속가능함'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크게 싸우지 않는 한, 그래서 '손절'을 하지 않는 한 이 우정은 계속될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기대. 사랑을 시작함에 있어 우리는 언젠가 이별이 올 수 있음을 인지하지만 우정에 관해선 이별을 떠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들에도 지속가능한 것은 없고 유한하고 유동적인 인간의 더 유동적인 마음이 만들어낸 우정이라는 개념에서도 지속가능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상주의에 가까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라는 타의에 의해 서서히 멀어져 가는 것 외에, 손절을 하고 껄끄러운 관계가 되는 것 이외에는 우리는 조금 더 아름답게, 건강하게 우정에서 이별할 수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