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3. 2020)
오랜만에 울었다. 그냥 힘들어서 라는 이유로. 하루종일 고양이 보험 갱신 때문에 서너 번을 보험사와 전화하고 전화를 돌리고 돌리고 오늘만 네다섯 명과 통화를 한 것 같다. 통화 전에는 아침 8시 반부터 병원 두 군데에 전화를 걸어 급하게 진료를 예약하고, 다시 검색을 하고, 지인과 상의하고, 몇 시간을 검색과 고민사이에서 허덕거리다가 결국 힘들게 잡은 예약을 취소하고 그러기에 한 세네 시간을 쏟은 것 같다. 그리고 또 뭘 했더라. 그 사이에 간간히 오늘 업무 돌아가는 상황을 체크하고 팀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오늘 휴가인데 왜 안 쉬는 거야!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러게 말이야. 나는 왜 못 쉴까? 쉬고 싶은데 너무 불안해.
주말 내내 궤양 때문에 걷지도 앉지도 못하고 뒤척거리면서 끙끙대다가 귀중하게 쓴 하루 휴가를 쉰 것도 일한 것도 아니게 써버렸다. 아니, 사실 잘 쓴 휴가는 맞다. 병원 예약과 미뤄뒀던 고양이 보험 갱신, 기한을 얼마 안 남기고 이제야 의뢰한 2019년 세금 보고, 쌓아두었던 우편물 정리까지 마쳤으니까. 오늘의 휴가가 없었으면 또 미루고 미뤄 마감 직전에 후회하면서 울고 있겠지. (진짜 운다는 얘긴 아니다.)
나란 인간은 큰 병은 없지만 유행한다 싶은 자잘한 병들은 꼭 걸려보는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아주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우수한 진료 서비스는 둘째 치더라도 필요할 때 적절히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접근성은 나에게는 조금 오버해서 생명줄처럼 느껴진다. 그걸 간과하고, 특히나 스스로가 병원을 얼마나 자주 가는지 알고 있으면서 미국땅에서 살겠다고 왔으니 도대체 나는 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쳤을까. 하긴, 막상 ‘삶’이 되기 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할 문제 이긴 하니까. 그리고 유학 때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 병원을 가며 나름 선방했던 터라 다시 이렇게 병원에 갈 일이 자주 생길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도 하다. 하지만 웬걸, 그 몸뚱이가 어디 가겠나.
삼 개월이 넘는 코로나 격리로 내가 왜 이 미국땅에서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잊어버린 상황에 건강은 갈수록 나빠지고 그 원인이 오롯이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라는 걸 알고 있으니 힘들지만 방법이 없다. 평생 일하지 않으면 날 먹여 살릴 수 없으니까 라는 불변의 대전제가 터진 불안의 근본적인 이유 같다. 영원히 나태지옥을 도는 것처럼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받아가면서 하루하루 울면서 뺑뺑이를 돌아야 하는 걸까. 그 근원적인 공포감으로 이미 오래전 번아웃된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다른 사람들보다 힘든 일을 겪고 있는 것도 아니고, 코로나로 실업을 겪은 것도 아니고, 모두 다 견디며 살고 있는데 왜 나는 고통의 역치가 낮을까 생각하며 오랜만에 눈물 콧물을 뚝뚝 흘렸다. 역치가 낮다고 하기엔 정말 치열하게 살았는데. 항상 미래만 생각하면서 그 목표 달성을 위해서만 현재가 존재했으니까. 나도 알고 있다. 전혀 건강한 것이 아니란 걸. 어쩌면 그런 상태로 십 년을 넘게 지냈더니 마음의 고름도 이제 하나씩 터지고 진물이 나는 게 아닐런지. 몸도 마음도 다 곪아 터진 거다.
지난겨울 받았던 상담이 생각났다. "왜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선생님이 말했다. "잘해야 하는걸 기본값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왜 잘하는걸 기본으로 두고 있는 거죠?" 한 번도 잘해야 한다는 마음 자체를 의심해 본 적 없던 내 머리를 쿵 때리는 질문이었다. 그러게요. 왜 난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내가 맡은 것을 잘하지 못하면 왜 자존심이 상하고 자존감이 떨어질까요. 솔직히 얘기하면 선생님과의 그다음 대화는 기억나지 않는다. 눈물 콧물을 찔찔 짜며 그 질문을 생각한다. 너, 왜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 못해도 되잖아. 아무것도 놓지 못하고 주먹을 꽉 움켜쥔 채 부들부들 거리던 두 손이 조금씩 풀리며 뭔진 모르지만 내가 잡고 있던 것들, 놓지 못한 것들, 집착하던 것들, 과민하던 것들이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흩어진다. 내 손으로 내 목을 조르는 나에게 주문을 걸듯이 말한다. 왜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럼 조금은 숨이 쉬어진다. 물론 아직 훈련이 덜 되어서 자주 그 말을 되새김질해주어야 하지만.
열 시 반이 조금 넘은 지금, 그러니까 내일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나에게는 다시 불안과 내일이 오는 두려움이 손을 뻗친다. 그래도 한번 시원하게 울고 기도까지 했더니 두 시간 전보다는 마음이 훨씬 잠잠해졌다. 다 잘 될 것이다. 내일도 그다음 날도 괜찮을 것이다. 내가 해온, 지금도 하고 있는 것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할 수 있다. 그러니까 잘했다. 오늘은 마음 편히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