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17. 2018)
졸업 후 백수가 된 지 삼 개월. 꽤 우울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어려운 주머니 사정만큼 얄팍해져가는 자존감으로 감정이 요동치는 날들 속에서 나를 버티게 하는 건 내 밥걱정을 해주는 마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점심은 먹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내 입에 들어가는 삼시 세 끼를 궁금해하고 걱정해 주는 마음들.
얼마 전에 카페에서 한국에 있는 친구 Y와 카톡을 했다.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게 뉴욕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기에 카페 풍경과 먹고 있던 크루아상 사진을 찍어 보냈다. 그리고 며칠 후 친구의 블로그를 들어가 보니, 내가 보내준 사진이 업로드되어 있었다. 친구의 글에 스치듯 적혀있던 '크루아상 사진을 보니 영양상태가 좀 걱정되긴 하지만'이란 부분이 아직도 마음에서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누군가는 사진을 보고 맛있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누군가는 부실하게 먹는 당사자의 영양상태를 걱정한다. 똑같은 사진을 보고 해석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결국 누군가에게 쏟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먼 한국에서 나의 밥을 걱정하는 또 한 명의 친구 C가 있다. 점심은 먹었는지, 반찬은 뭘 먹었는지, 친구를 만나서 뭘 먹었는지, 굶고 다니진 않는지. 작년 겨울 그가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진 난 학생, 그는 직장인이었다. 밥을 잘 안 챙겨 먹고 다니는 나를 끌고 다니면서 밥을 먹였던 사람. 고추참치를 너무 자주 먹는다고 반찬을 사서 담은 비닐봉지를 건네주던 사람. 살면서 가장 감동받았던 순간 중 하나였다. 그 따뜻함 때문에 앞으로도 그 사람의 옆을 오래도록 지키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고마움에 보답하며. 밥은 이렇게 힘이 세다.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니 예전 남자친구가 보내준 삼계탕이 생각난다. 당시에도 유학생이었던, 생활비가 넉넉지 않았던 나에게 미국 반대편에 살던 그는 한국 마트 인터넷 쇼핑으로 레토르트 삼계탕을 몇 봉지 보냈다. 옆에서 돌봐주지 못하는 미안함, 건강한 것을 먹이고 싶은 마음에 생각해 낸 냉동 삼계탕. 그 마음 만으로도 이미 건강해진 것 같았었다.
어제 벤치에서 A와 이야기를 하다 자신은 이미 날 잘 챙겨주고 있다는 그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예를 들어보라 했다. "밥도 사주고, 인터뷰 보면 조언도 해주고". 내가 생각하는 챙김의 기준과 달라 역시 그 답다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챙겨주고 있었다. 세상에 당연한 밥은 없는데 난 왜 그와 먹는 밥을 당연하다 생각했을까.
오늘 오전 11시 느지막하게 일어나 C와 통화를 했다. 새롭게 잡힌 인터뷰 얘기와 그 외 잡다한 것들을 공유하고 역시나 밥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제 밥을 먹을 시간인데 뭘 먹을 거냐고. 그냥 똑같이 밥에 오징어채 무침과 깻잎이라 말했더니 영양의 균형을 위해 계란을 같이 먹으란다. 그리고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통화는 끝났다. 전화를 끊고 얼려놓은 밥을 데우고 반찬을 방으로 가져왔다. 아마 평소였으면 귀찮아서 듣지도 않았겠지만 그래 시키는 대로 하마, 하고 계란프라이를 해 밥 위에 얹어 인증사진을 찍어 보냈다. 계란 사진을 본 그는 착하고 말을 잘 들어서 예쁘단다. 내가 니 반려동물이냐고 장난으로 욱하며 대화를 끝냈지만 매 끼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을 궁금해하고 걱정하는 그 마음이 참 고맙다. 당분간은 그의 말대로 계란을 먹는 말 잘 듣는 사람이 되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