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글과 관계된 일로 먹고살던 사람이란 자신이 있었는데,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다. 글을 쓰는 법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아마도 무언가를 심도 있게 들여다보는 일과, 그것을 글로 옮기는 일 모두를 잃어버린 듯하다.
나는 내면세계에 모든 에너지가 쏠린 사람이었다. 나의 관심사는 외부가 아니라 내 안이었다. 마음, 감정, 그 복잡한 상호작용들. 마음이 크게 아팠던 적이 많아서일까. 내면에 대한 관심의 크기와 반비례해서 외부 세계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무관심했고 무지했다. 예를 들면 세상 돌아가는 일 같은 것들. '나'라는 변화무쌍한 자아를 이해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았지만, 세상과는 심드렁한 거리를 유지했다. 나의 수많은 감정들과 요동치는 마음의 원인을 들여다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 일은 힘들다. 고통스럽다. 힘든 내 마음을 계속 마주하고 파고들어야 하니까.
생활이 바빠지고,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휩싸여 살게 되면 내면을 살펴볼 겨를이 없다. 그리고 나쁘지 않은 적당히 괜찮은 날들이 연속될 때에도. 그렇게 2년을 지냈다. 2년 동안 딱히 마음이 크게 상했던 적도 없고, 학교를 다니며 바쁘게 과제를 하며 흘러가듯 살았다. 딱히 생활에 불만이 있지 않았다. 우울한 기간은 여지없이 찾아왔지만, 그래도 내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더 골치가 아프니까. 그렇게 내면 들여다보기를 멈춘 지 2년이 흐르니, 나는 크게 괴롭지도, 우울함에 함몰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크게 기쁨으로 충만한 생활을 하고 있지도 않다. 내면의 무시는 예민하던 감수성을 무디게 만들었고, 덕분에 나는 무덤덤하게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이고 떠나보내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다시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두려워서, 계속 글쓰기를 피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괴롭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 시절, 예민했던 감정들이 그리워졌다. 외로움도 괴로움도 쓸쓸함도 사랑도 기쁨도 아름다움에 더 진하게 흠뻑 젖을 수 있었던 예민함들이. 그래서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하루하루 느끼는 것들을 곱씹고 뱉어내면서 잊고 있던 삶이 주는 세밀한 자극들을 다시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2019년인가 어느 날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