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선배가 일요일에 가르쳐준 것들

by 해야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이 있다. 그를 생각하면 이름 모를 희고 진분홍 꽃들이 어울려 핀 이른 오후의 산책길이 떠오르기도 하고, 오후 한두 시의 햇살을 쬐며 싱그럽게 흔들거리는 무성한 초록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의 글은 따뜻하고 솔직하다. 따뜻한 사람의 따뜻한 시선으로 쓰인 글이어서일까. 우울함 없이는 한 자도 끄적거리지 못했던 나에게 그의 글은 글쓰기가 따뜻함을 담는 행위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꾸준히, 애정을 다해 이어가고 있는 그의 일상을 읽으며, 문득 내게 소중한 것들을 글로 담고 싶어 졌다. 그렇게 하면 오래전 식어버린 내 생활이 조금씩 온기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흘러가는 시간을 안타까워하며 발만 구르지 않고 과거의 결정들을 부정하고 괴로워하지 않으면서, 앞으로 나에게 남아있을 시간들을 무엇보다도 현재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써 내려가는 글만큼 따뜻한 그의 웃음을 생각하며, 그의 큰 키와 짧은 머리를 생각하며, 내 인생 첫 사수로서의 그에 대한 애정을 생각하며, 개에 대한 그의 사랑을 생각하며, 그와 홍대 맥주집에서 처음 먹어본 진짜 새우깡을 생각하며, 같이 일할 때 가끔 아팠던 그를 생각하며, 내가 헤아릴 수 없을 그의 아픔을 생각하며, 나의 아픔을 잘 이해해주었던 그를 생각하며, 아직 친하진 않지만 친근한 그의 남편을 떠올리며, 우리와 함께 일했던 다른 소중한 동료들을 생각하며 먼 타지에서 키보드를 두드린다. 11년 전 대학 졸업반이던 사회 부적응자에게 그가 가르쳐 준 것들과 11년이 지난 지금 그의 글이 나에게 거는 말들이 교차되는 초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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