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내게 도대체 뭐길래

다리를 다친 두한이

by 해야

다리를 다친 길고양이 두한이 때문에 마음을 졸이며 황급히 몇 군데의 동물병원에 더 이메일을 썼다. 처음 연락한 집 근처 동물병원에서 모든 검사와 치료비용을 제외한 예약 진료 비용만 110달러라는 말에 마음은 더 암담해진 후였다. "안락사시키고 싶지 않아요. 꼭 구할 거예요.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된 이메일. 10년 전 룸메이트였던 냥집사 아주머니가 보내준 링크를 통해 알게 된 그나마 저렴한 치료비가 기대되는 병원들이었다. 하지만 이 마저도 무산될 경우, 학교에 전체 이메일을 보내 관심 있는 친구들에게 도네이션을 받거나, 인맥을 통해 저렴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방법을 요청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지금 있는 돈으로 치료비 일부만 먼저 지불하고 나머지는 월마다 메꿀 수 있는지 병원에 문의해야 할까.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스치지만 무엇이 최선일지, 이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모르겠다. 이 작은 아이와 낯선 미국땅에 산다는 것이 나를 참 무능력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내가 지금 경제활동을 한다면, 공부하고 싶은 내 욕심으로 집에 폐를 끼치는 중이 아니라면, 아니 최소한 그동안 과자나 커피를 덜 마셔서 모아놓은 돈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지금보다 나을까. 그렇다면 몇백 불 급한 대로 치료를 시킬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얘기를 하면 유학할 돈은 있으면서 고양이 치료비가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보통의 가정에서 무리해 유학을 온 학생들의 유학 생활은 그다지 녹록지 않다. 인터넷에 증상을 검색하고 시간이 지나면 낫는 경우가 많다는 글에 희망을 갖고 기다렸지만, 이틀이 지나도 한쪽 발을 땅에 디디지 못하고 힘겹게 걷는 두한이를 보자 기대가 점점 옅어진다.


병원을 구한 다음에는 길고양이인 두한이를 잡아서 어떻게 데려가야 할지 케이지는 어떤 크기로 어떤 종류를 사야 할지 계속 숙제들이 남아 있지만 메일을 보내고 나니 잠시 한숨은 돌릴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도대체 난 고양이를 왜 이렇게 사랑하는가. 고양이가 무엇이길래 이런 사랑이 쏟아지는 걸까. 저들을 위해 돈과 시간을 쏟고, 없는 살림에 입양을 위해 이사를 생각하고 있는 걸까. 폭설 속에서 밥을 챙겨주러 나를 일으키고, 이토록 게으른 나를 하루에 몇 번씩이나 동네를 어슬렁거리게 하는 존재들. 스스로도 나의 행동들과 무조건적인 사랑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일까. 처음으로 머릿속에 스친 생각이었다.


묘연이란 말을 얼마 전 처음으로 들었다. 고양이와의 인연. 묘연에 의해서 내가 키우는 고양이를 만난다는 것이었다. 묘연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수 많은 아이들 중 이 생명과 만나 사랑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는 것이 연이겠지. 그래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다리를 절뚝이는 두한이가 어디에서 찬 바람을 피하고 있을지 걱정이 되는 것이겠지. 그저 내가 사랑하는 저 불쌍하고 약한 고양이 두한이의 다리가 나을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것 밖에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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