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흠다운 디지털 생활

by 해야

아이패드를 충전하느라, 그러니까 충전선이 짧아서 어쩔 수 없이 아이패드를 바닥에 세우고 있느라 지금 좀 이상한 자세로 글을 쓰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바닥에 앉아서 내 왼쪽 사선에 충전 중인 아이패드를 세우고, 무릎 위에 핑크색 무선 키보드를 놓고 타이핑을 하는 중이다. 아이패드와 키보드 사이 어떤 연결 선도 없이 내가 쓰는 글씨들이 화면에 차곡차곡 전달되는 것이 이 아날로그 인간에게는 여전히 신기하다. 마술사가 상자에 들어간 조수의 몸 마디마디에 칼을 찔러 넣어 사지를 분해했음에도 (당연히) 죽지 않은 몸뚱이가 따로 놀아나는 장면이 생각난다면 오바 같지만 무선 키보드는 어쩐 일인지 여전히 익숙하지도, 정이 들지도 않는다. 문득 궁금하다. 요즘 아이들, 그러니까 2000년대 아이들은 그런 마술이 뭔지 알까...?


지금 모습을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좌 아이패드, 우 아이폰을 놓고 무릎엔 로지텍 무선 키보드를, 엉덩이에는 공기를 주입한 엠보싱 방석을 깔고 앉아 스타벅스 크리스마스 플레이 리스트를 (스타벅스 풍의 크리스마스 음악인지는 모르겠으나) 알렉사로 듣는 중이다. 거실의 이 노란 조명도 아마존 스마트 플러그로 연결된 덕에 코로나로 불어난 궁둥이를 떼지 않고도 불을 껐다 켰다 할 수 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꽤나 스마트한 라이프를 영위하고 있는 것 같지만, “숨 막힌다” 는 문장이 먼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지금 내가 앉아있는 반경 일 미터의 공간을 묘사했을 뿐인데 벌써 나열된 브랜드 이름이 몇 개야... 산속에서 자연인처럼 살고 싶은 생각은 1도 없고 물건을 쓰는 순간 브랜드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그리고 그런 삶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지만, 막상 생활의 아주 작은 단면을 영위하게 해주는 브랜드와 기술들을 문자로 나열해 보니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 이것들이 나에게 편의를 주고 있는 도구일 뿐일까, 도구에 주객이 전도된 구속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구속이라면 자유가 주어졌을 때 그 삶은 지금보다 행복해질까. 아니지, 구속이라는 단어는 너무한 것 같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니 ‘자발적 구속’이라 정정해야겠다. 그렇다면 자발적 구속에 길들여져 물건과 기술이 ‘나’를 압도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아날로그 인간이라 스스로를 칭했지만 그런 인간치고 온갖 디지털 기기들을 쓰고 있지 않은가! (변명이라면 스마트 플러그를 쓴 지는 고작 일주일 정도 되었다.) 조금이라도 날 편리하게 할 제품들, 브랜드들을 원하면서도 나를 둘러싼 모든 물건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 기술의 편리에 의존하면서도 완전한 ‘오프라인’에 대한 로망을 품고 사는 매일. 자연스러우면서도 아이러니하고, 아이러니할 것도 없이 당연한 일인 듯하다.


오늘은 이 정도로 일기를 마무리해야겠다. 아이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11시 24분. 이제 알렉사를 불러 음악을 끄고 몸을 일으켜 스트레칭을 해야지. 그다음엔 브리타로 정수된 물을 꺼내 마시고 킷캣 초콜릿을 하나 먹어야겠다. 알렉사, 굿나잇! (불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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