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노을을 봤어

by 해야

어제에 이어 노을을 보러 내가 사는 4층 건물 옥상에 올라왔다. 지난 일요일 퀸즈에서 브루클린으로 이동하던 차에서 본 노을이 준 감동이 너무나 강렬했던 터다. 맨해튼의 고층 빌딩들이 만들어내는 그 특유의 실루엣 위로 새빨간 노을이 긴 구름처럼 걸려 있던 것이다. 태어나서 본 노을 중에 가장 새빨갛고 하늘이 붉다기보다는 길고 붉은 덩어리가 빌딩 위에 닿을 듯 떠 있는 듯했다. 노을의 강렬한 색감과 반짝이는 빌딩들, 그 빌딩들이 이어진 드넓은 수평의 캔버스가 완벽한 합을 이룬 광경이었다. 그러니까 뉴욕을 떠다면 다시는 볼 수 없는 노을이었던 것이다. 핸드폰에 정확히 담을 새도 없이 짧게나마 눈으로 기억한 노을은 그 날 후로 계속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언제까지 이 도시에 살지 모르는 불안정함이 멋진 풍경을 한 번이라도 더 눈에 담아야 한다는 욕심을 건드려 고맙게도 무거운 엉덩이를 이틀째 뗄 수 있게 됐다. 유효기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는 부지런함이기는 하지만.


오늘도 그 날의 노을을 볼 수 있는 행운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겨우 이틀 째 하늘을 관찰하고 있지만 같은, 아니 비슷한 노을을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란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예쁜 노을을 보는 운이란 하늘에 있는 구름의 양, 위치, 모양, 습도 등등이 모두 한마음으로 힘을 써 줘야 만날 수 있는 것인데, 그야말로 100개의 하늘은 100개의 서로 다른 노을을 만드는 것이다. 나는 그 일요일에 진심으로 운이 좋았다. 심지어 운전을 하던 사람은 보지 못한 풍경이었지 않나. 이 노을을 보려고 삼십이 훌쩍 넘는 평생 운전면허를 따지 않은 것일까 까지 감상이 넘쳐흐르다 그건 그냥 게으름 때문이라는 정답을 쉽게 얻고 다시 부지런히 눈 앞의 노을을 감상했다.


완벽한 노을이 아니면 어떤가. 100가지 노을에는 100개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을. 다시 그 완벽한 노을을 본다면 로또라도 사야 할 만큼 행운이 임한 것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앞으로 적어도 20개의 다른 아름다움을 가진 노을을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부지런함이 20일 이상 힘을 써 줄 때의 이야기이다.


저 멀리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보며 내가 뉴욕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이 신기한 도시는 그 안에서 섞여 살아가는 동안은 나 또한 그 안에 있다는 것을 잊게 만든다. 어쩌면 이제는 그저 익숙한 일상이 되어 망각하고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며 살지 않는 것처럼. 그러다 가끔 브루클린과 뉴욕을 잊는 다리를 건너는 차 안에서, 이렇게 밖에서 맨해튼을 바라보는 순간들 속에서 ‘아, 내가 뉴욕에 있지’라는 당연한 깨달음이 격렬하게 피부를 찌른다. 곧바로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 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기어 올라오긴 하지만. 이방인의 삶은 섞이지 않고 물 위에 뜬 기름 같아서 안간힘을 내어 휘저어야 잠시 섞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내 분리된 기름은 물 위에 금세 둥둥 떠오르기 일쑤다. 뉴욕살이가 벌써 5년이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이 질문은 맨해튼을 바라볼 때마다 계속 떠오를 것 같다. 애를 써 휘저어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 기름처럼. 100일이 넘게 거의 집에 갇혀있다시피 하는 사는 와중에 이 질문은 나를 더 집요하게 괴롭힌다. 코로나와의 지난한 싸움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는 무력감과 앞으로 절대 예전과 같은 일상으론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절망은 질문에 더욱 불을 지핀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하며 끊임없는 고민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겠지. 나이가 들면 어느 부분에서는 삶이 쉬워지지만 그것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는 몇 배 이상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려워지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어려우니 우선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게 유일한 답일지도 모르겠다. 이 순간들 마저도 시간이 흐르면 그리워질 테고 시간은 대부분의 것들을 실제보다 보기 좋게 보정해주니까. 시간의 힘에 기대어 속절없이 흘러가는 이 아쉬운 여름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눈에 담고 기록해야겠다.

그러니 지금은 저 아름다운 노을을 실컷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