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모든 글들이 나로 향해있다는 부끄러움과 그런 글조차도 제대로 쓸 수 없다는 부끄러움이 더해져 결국은 아무것도 쓰지 않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고작 그럴싸한 핑계로 게으름을 포장하는 스스로는 더욱 경멸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내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 그것이 요즘 부쩍 나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네가 감히 날 잘 안다고? 정말 오만하네." 나를 힘겹게 하는 낯선 마음을 부둥켜안고 통과하는 2019년의 여름 역시 꽤 낯설다. 이 나이가 되어도 마음이란 놈이 한번 탈선을 시작하면 도무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분명 처음도 아닌데 내 마음에 뒤통수 맞는 일에 덤덤해지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인 듯 싶다. 냉장고에서 오늘 꺼내 먹는 김치의 맛에서 내일 먹을 김치의 맛도 비슷함을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예측이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어제의 마음과 오늘의 마음, 그리고 내일의 마음이 같다면, 아니 감당할 수 있는 오차 범위에서 엎치락뒤치락해주기만 한다면 인생이란 얼마나 안락할까. 나이를 더 먹으면 그래도 덤덤하게 받아들일까. "또 반항기가 시작되었나? 그래 여기 뒤통수 있다. 신나게 갈기렴. “하고 또냐는 듯이 익숙하게 드라마나 볼 수 있을까. 내가 잘 아는 내가 낯선 나로 도치될 때 일어나는 감정소모는 생각보다 상당해서 퇴근 후에는 매일 좀비처럼 침대에 누워있다. 퇴근을 하자마자 잽싸게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종일 유튜브 영상들 사이를 배회하거나 타인이 써놓은 텍스트 속으로 도피하는 일 따위를 하며 말이다. 그렇게 내 의식을 마음에서 억지로 떼어놓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동안에도 문득문득 내 마음인데 왜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것인지 형상도 없는 대상에 대한 미움이 욱 하고 솟구친다. 그러다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함을 상기하고 또다시 시무룩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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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의 글을 보다가 2023년의 여름과 다르지 않음에 놀랍다. 마음 이 새끼... 아니, 나 새끼가 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