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한국인은 화가 많아야

1/3 목

by 해야

요즘 나는 화가 많다. 오만 것들에 다 화가 난다. 화가 나야 할 것들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에 화가 난다는 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지하철 역에서 내 앞에 걸어가는 여자의 엉덩이가 커서 화가 난다. (몸매에 대한 기준이나 선입견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냥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화가 나는 식이다) 지하철 맞은편에 앉아있는 아저씨의 선글라스에 화가 난다. 옆에 앉아있는 어린 딸 아이의 머리카락의 허리까지 오는 머리카락이 낙지 다리같아서 화가 난다. 어물쩡거리면서 걷는 속도를 방해하는 누군가에 화가 나고 플랫폼에서 격정적으로 키스를 하는 남녀를 보면 화가 치민다. 손에 힘을 잃어버린 것인지 주방에서 계속 물건을 떨구는 상황에 화가 나고 회사를 그만 둔지 이주일이 되었지만 그 때 망가진 몸이 전혀 회복되지 않을 만큼 엉망진창이 되었음에 극도의 분노가 치솟는다. 또 뭐가 있더라.


화의 원인을 추측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생리 직전이다.

나는 생리때 짜증이나 특별한 감정 변화가 없는 사람이었는데 작년부터였나 갑자기 우울해지고 슬픈 감정이 극대화되는 형태로 생리 전 증후군이 생기더니 몇 달 전부터는 알 수 없는 화가 나는 형태로 바뀌어버렸다. 가슴도 붓기 시작하고 온 몸이 생리가 임박했음을 외치는데 예정일인 오늘이 지났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이렇게 계속 화가 나느니 빨리 터져버리고 끝나는게 낫겠다.


2. 밀가루와 설탕을 끊은지 5주가 되었다.

3주차까지는 감정의 변화가 없다가 4주차에 접어들면서 화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온유함은 탄수화물과 돈에서 나온다는 것을 내 몸에 실험함으로써 증명한 것이다. 나는 밀가루도 먹지 않고 돈도 없기에 화가 많아진 것은 과학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3. 생리 직전이고 밀가루도 먹지 못해서이다.

이 상황에서 화가 나지 않는 인간이 이상한 것 아닌가.


그렇다고 타인에게 화를 분출하는 것은 아니다. 화는 언제나 머릿 속으로만 뿜어내기에 내 화로 스스로를 그을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화를 억지로 멈출 생각은 없다. 미친 듯이 화를 내다가 이 시기 또한 지나가겠지. 화와 별개로 일상은 정리되지 않은 채로 꾸역꾸역 굴러간다. 그게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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