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마이애미 2

드디어 키웨스트에 왔습니다만. 여행 첫날 첫 번째 이야기

by 해야



정말이지 이렇게 정신없이 가도 되는 걸까 싶게 행기표와 호텔 예약이 급하게 시작됐다. 키웨스트와 마이애미 중 어디를 먼저 들를지에 따라 비행기표 가격이 달라지고 당연히 가능한 숙소와 숙박료도 달라진다. 제일 중요한 건 날씨. 각 지역에 날씨가 좋을 때에 방문해야 하니 인 앤 아웃 도시가 달라지는 변수에는 날씨도 큰 몫을 했다. 너무 많은 변수에 엑셀을 띠워 여러 시나리오별로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우선 항공료가 더 싼 루트에 따라 키웨스트를 먼저 들리고 키웨스트에서 마이애미로 버스 이동, 마이애미에서 뉴욕으로 돌아오기로 정하고 비행기를 예매했다. 비행기 예매는 나은 편이었다. 본격적으로 머리가 아픈 지점은 숙소 정하기에 있었다. 키웨스트의 숙소값은 상상을 초월했다. 1박에 200달러 중반 정도이니 하룻밤 자는데 30만 원인 셈이다. 어떻게든 싼 숙소를 찾고 찾아도 이것저것 다 고려해 봐도 각이 안 나온다. 어렸을 때처럼 모르는 사람들과 도미토리에서 맘 편히 자기엔 이제 몸도 편하지 않고 속세의 편함에 익숙해져 버렸다. (어릴 땐 짐을 락커에 두지도 않고 어떻게 걱정도 없이 돌아다녔는지 모르겠다.) 혼자 여행은 돈이 많이 든다는 걸 이번에 크게 배웠다. 친구와 함께 갔다면 숙소값이 반 정도로 확 줄텐데 말이다. 그리고 키웨스트는 소박한 시골 도시가 아니었다. 철저한 관광도시, 그것도 아주 비싼 관광지였던 것이다! 이것 또한 큰 깨달음이었다.



키웨스트 숙소는 가능한 옵션이 몇 개 없었지만 (방값이 후들후들해 결제까지 오래 걸렸던 것이 더 크지만) 마이애미 숙소 예약은 결정 장애인 나에게 큰 시련이었다. 시내를 구경할 것인지, 바닷가에 있을 것인지에 따라 숙소를 나눠 예약하는 것이 이동에 효율적이었다. 그 말인즉슨 당장 큰 동선을 당장 짜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었는데 마이애미 여행은 더욱더 날씨가 핵심이었다. 그 와중에 숙소는 왜 이렇게 많은지, 리뷰들은 왜 이리 들쑥날쑥 이은 지. 최종적으로 예매한 숙소를 취소하고 새 숙소로 다시 예매하기까지... 그렇게 이삼일을 비행기표와 숙소 예약에 온종일 쓴 것 같다. 그 와중에 여행 준비물이 하나도 없잖아! 서둘러 아마존에서 싸고 나쁘지 않은 수영복과 클렌징 오일을 주문했다. 출발 전에 겨우 도착이다. 음, 또 뭘 가져가면 좋을까.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가져가야겠다. 생각만 해도 감성이 넘친다. 그런데 필름이 다 떨어져 간다. 그렇게 출발 전날 맨해튼에 나가 급하게 필름까지 샀다.



모든 예약을 마치고 준비물도 얼추 다 준비하고 이제 짐만 싸면 되는 마지막 단계다. 그런데 이게 웬걸. 비행기표를 예약할 때만 해도 맑았던 마이애미와 키웨스트가 출발 당일이 다가오자 구름과 비로 변했다. 그것도 여행인 일주일 내내. 추운 뉴욕을 떠나, 따뜻한 곳에서 2024년의 힘들었던 기억을 다 떨쳐버리려 떠나는 마이애미이건만 가을의 서늘한 날씨라니. 훌러덩 벗고 다닐 뜨거운 햇볕을 기대했는데 몹시 당황스럽다. 재킷을 가져가야 하나 긴 바지를 챙겨야 하나 레깅스를 들고 가야 하나. 재킷은 오버 아닌가 명색이 마이애미인데... 그렇게 출발 전날 새벽까지 옷을 넣었다 뺏다 반복하며 반바지, 민소매티, 반팔, 마이애미에서 꼭 입고 싶었던 선홍색 민소매 롱원피스를 챙기고 미심쩍어하며 얇은 재킷도 챙겼다.



1월 11일. 옷장을 다 뒤집고 거실을 개판으로 만든 채 출발 당일이 됐다. 아침 9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마저 챙기지 못한 짐들을 다시 챙기고 정리했다. 뉴욕은 한겨울이니 패딩 속에 레깅스와 스웻셔츠를 입고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차림으로 여행 내내 돌아다니게 될 것은 상상도 못 한 채 말이다. 옷을 챙겨도 어쩜 이렇게 날씨에 1도 맞지 않게 챙겨갔는지 여행 내내 후회하면서. 차가운 겨울바람을 비집고 바퀴가 고장 난 건지 호들갑스럽게 덜그럭거리는 기내용 캐리어를 들고 공항으로 향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 거의 이십 년 만이라는 사실 자체가 설렘과 떨림을 주기엔 충분했다. 여행의 설렘보단 헤어짐의 아픔을 공항과 비행에 더 많이 간직한 나는 공항에 가는 일 자체가 고통스럽게 느껴져 왔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참말로 오랜만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혼자 떠난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 혼자라는 사실 때문에 불안감은 있었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나이가 점점 들면 혼자 놀기가 주었던 재미의 자리를 두려움과 외로움에 빼앗겨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나처럼. 그렇게 나이를 먹다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반가움인지 모르겠다. 이번 여행은 내게 힘든 작년과 제대로 작별하는 중요한 의식인 셈이었다.



그렇게 공항에 도착하고 델타항공에 오른 지 세 시간 만에 키웨스트에 도착했다. 키웨스트. 이름이 입 안에 울리면 마음이 괜히 간질간질해지는 것만 같은 지명이다. 일단 여기까지는 무사히 왔다는 안도감을 안고 작고 소박한 키웨스트 공항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벌써 이럴 수가. 첫 광경이 구름 가득한 우중충한 회색 하늘에 미친 듯이 휘날리는 야자수 잎사귀들이라니. 설마 정말 내내 비가 오는 건 아니겠지? 이번 여행, 왠지 예감이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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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펄럭거리는 야자수 밑에서 택시를 기다리며.. 그 와중에 콘치는 꼭 먹고 가야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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