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동거를 한 지 벌써 9년이 지났다. 태어날 때부터 원체 몸이 약했던 나는 누군가와 실수로 살짝 부딪히기라도 할까 항상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했다. 누구와 조금이라도 스치지 않게 몸을 사리며 살아야 하는 것은 원치 않는 태생적 운명이었다. 손이 거친 안이라도 다행히 나를 대할 때만큼은 그녀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심성을 발휘해 주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창가에서 움직이지 않는 생활은 다소 지루했지만 안전은 보장되었다. 안이 가끔 꽃을 사 와 내 몸에 물을 채우고 어설프게 자른 꽃다발을 내게 꼽는 일이 시작되면 그날을 시작으로 이틀에 한 번 꼴로 화장실이나 부엌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한 자리에 오래 서 있다가 갑자기 공중으로 들려지면 순간 천장이 나를 집어삼키는 것 같은 현기증이 몰려온다. 그 정도의 어지러움을 참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매일 똑같은 창 밖을 하루 종일 지켜보는 일이 길어지면 가만히 있어도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해가 뜨고 지고 다시 해가 뜨는 날들을 계속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미쳐버리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난다. 내가 미쳤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미치광이로 살아간다는 사실은 내게 가장 큰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나는 아무 변화를 느끼지 못하지만 타인에게 그저 머리가 돌아버린 존재가 되어 공포와 얼마간의 연민을 주는 존재로 살아갈지 모른다는 미래를 생각하면 나의 연약한 자존감은 이미 박살이 나 버리는 것 같다. 내가 미쳐버린다면 안이 나를 바닥에 던져 산산조각 내 재활용 쓰레기통에 버려주길 바라지만 한 번도 이런 얘기를 입 밖에 꺼낸 적은 없었다.
스스로가 미쳐버릴 것 같은 공포는 일 년 전 즈음에 생긴 큰 사고를 기점으로 더 자주 찾아온다. 항상 조심하고 주위를 경계하며 살아왔음에도 나 역시도 크게 죽을 고비를 맞은 것이다. 그날 안은 시들어버린 꽃을 버리고 날 화장실에 데려가 내 몸에 고인 오래된 물을 버리고 몸을 씻겨주던 참이었다. 찬 물로 시원하게 닦여진 나는 잠시 세면대 바닥에 서있었는데 순식간에 화장실의 풍경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냉수마찰 때문이었을까 세면대 바닥의 물기가 문제였을까.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고 눈을 뜨니 흰색 페인트가 칠해진 화장실 천장이 점점 또렷이 보였다. 차갑고 축축한 세면대에서 전해지는 한기가 등골을 타고 내려갔다. 몸은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고 간신히 눈알만 굴릴 뿐이었다.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내 옆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머리통의 큼지막한 조각이었다. 심약한 나는 그대로 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눈을 다시 떴을 때 나는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항상 서 있던 창가에 서 있었다. 끔찍한 꿈을 꿨다는 결론을 내린 순간 뒤통수가 지끈거렸다. 불길한 마음으로 머리를 더듬으니 미끌거리고 두툼한 무언가가 내 뒤통수를 감싸고 있었다. 창문에 비춰보며 한 참을 미간을 찌푸린 채 노려본 후에야 무식하게 생긴 박스 테이프가 뒤통수를 감싸고 있음을 알아챘다. 끔찍한 꿈이 아니라 끔찍한 사고였고, 잘려나간 머리통의 일부가 테이프로 봉합이 되어 겉보기에는 꽤 멀쩡하게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수습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순간 살았다는 안도감보다 내가 아직 미치광이가 되지는 않았다는 확신으로 온몸의 긴장이 확 풀려버렸다. 못생긴 테이프로 감았을지언정 쓰레기통에 처박히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내가 정신을 온전히 유지하며 꽃병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나.
나는 그날 이후로도 똑같은 자리를 지키며 같은 창문을 보고 365일 변함없는 앞 건물의 천장의 벽돌의 수나 세며 지내고 있다. 다만 앞서 말했다시피 어느 순간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는 머리를 다친 뒤로 빈번하게 찾아오기 시작했다. 조금 다행이라고 하면 안 역시 꽃을 사는 빈도가 눈에 띄게 잦아졌다는 것이다. 심경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인지 내가 알 길은 없다.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 살았지만 시시콜콜하게 속 이야기를 할 정도의 사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오랜 관찰의 결과 꽃을 사는 빈도와 그녀가 하루 종일 움직이지 않고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비례하다는 것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꽃을 자주 살 수록 거실의 탁자에는 물건들이 쌓여갔고 신발장의 신발이 거실까지 굴러다녔다. 바닥에 널브러진 월세 고지서를 줍지 않은 채로 안은 바닥에 헝클어진 잡동사니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걸어 다녔다. 왜 꽃을 살 수록 집이 더러워지는지 인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면 집이 더러워질수록 꽃을 사야만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매일 혼자서 미쳐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보다 집이 계속 더러워지는 편이 내 정신건강에는 이로웠으니 더러운 집을 불평할 권리가 나에겐 없었다.
한편으로는 내게 찾아오는 공포가 꽃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꽃과 함께 있는 시간이 덜 외로운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싱싱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천천히 숨이 다하는 것을 매번 지켜봐야 하는 일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 누레지는 꽃잎을 보면서 나는 어느 순간을 죽음이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뿌리에서 잘려 나온 순간일까 아니면 누렇다 못해 바스락거리기 직전까지 말라비틀어져 안에게 송두리째 꺼내져 쓰레기봉투에 머리부터 거꾸로 처박힐 때 일까. 작았던 꽃봉오리가 점점 벌어져 가장 크고 화사한 얼굴들이 되었다가 꽃잎의 가장자리부터 누렇게 변하다 그 곱던 용모가 점점 쪼그라들어 모든 영혼이 다 빠져나가는 일주일 내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지만 아직까지 답을 내리지 못했다. 차마 꽃들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는 없는 예민한 질문이기에 혼자 고민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생각을 하다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러다 미쳐버릴지 모른다는 불안이 다시 불쑥 찾아오면 고개를 창 밖으로 돌리고 다시 하염없이 벽돌을 세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