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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브 정 Jun 17. 2020

어쩌다 그림 - 베끼다

모방과 창조

'아를 여인' 반 고흐 - 모작

아크릴로 그린 첫 작품에 스스로 자신감을 얻고 나니,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그려 보라는 원장님의 주문이 들어 왔다. 대가의 그림을 그대로 따라서 그려 보는 것이 실력을 늘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도전 의식이 생겨났지만, 한편으로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동시에 들었다.

“원장님, 제 실력으로 그런 훌륭한 작품을 그려낼 수 있을까요? 하하.”

“잘 되든 못 되든 일단 해 보세요. 그대로 표현해 보려는 과정에서 많이 배우실 겁니다. 허허.”

말을 마치자 원장님께서는 벽돌처럼 무겁고 큰 책 한 권을 건네 주셨다. 유명 화가들 작품을 모아 놓은 책이라고 하였다. 나는 탁자 위에 그 책을 놓고 펼쳐 보기 시작했다. 누구나 들으면 알 만한 화가의 작품들이 전부 수록되어 있었다. 피카소, 르느와르, 모네, 램브란트, 고흐, 고갱 등등. 꽤 오랫동안 책을 찬찬히 살펴 보았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오는 그림이 하나 있었는데, ‘아를 여인’이라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이었다. 나는 이 그림을 그려 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 그림을 택했던 이유는, 강렬한 노란색이 마음에 끌렸고 구도가 단순해 보여서 부담이 덜할 것 같아서였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기 만만해 보여서 골랐던 것 같다. 그러나 따라 그리기 쉬울 거란 나의 기대는 오래가지 않아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학창 시절의 아픈 추억이 하나 떠올랐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때였던가, 미술시간에 과제가 하나 주어졌다. 아무 신문이나 손바닥 크기만큼을 찢어서 그걸 연필로 똑같이 그려오라는 것이었다. 단, 절대로 먹지(한쪽 또는 양쪽 면에 검은 칠이 되어 있는 얇은 종이로, 그림이나 글자를 똑같이 베껴내는 용도로 사용됨)를 대고 그려서는 안 된다고 선생님께서 단단히 이르셨다. 대입 준비로 바쁠 때였지만 미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어서 과제가 나오면 잠을 줄여 서라도 꼭 완성해 갔었다. 그날 주어진 미술 과제도 잘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왠지 모르지만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집에 가보니 아버지께서 다 보신 신문이 눈에 띄었다. 나는 ‘조선일보’의 타이틀 부분을 정성스럽게 찢어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그 당시 신문은 세로로 인쇄가 되어 발행 되었고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읽어 나가게 되어 있었다. 

다른 숙제들을 다 끝내고 미술 과제를 하기 시작했다. 자나 콤파스 등 도구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눈대중 만으로 크기, 위치 등을 잡아가며 그려야 했다. 찢어 놓은 신문과 스케치북을 번갈아 보며 똑같이 그려 보겠다고 안간힘을 썼다. 글자 하나까지 빠뜨리지 않고 옮겨 그렸다.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 하면서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갔다. 한참을 하다 보니 어깨가 아프고, 손가락이 저리고, 눈도 뻐근 해지기 시작 했다. 지금 생각 해보면 왜 그렇게 열심히 했는지 모르겠지만, 기어코 똑같이 그려내고 말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 같다. 잘 하면 상을 주는 경시대회도 아니고 누가 부탁해서 해 주고 대가를 받는 일도 아니었지만 잘해 보이고 싶었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타고난 ‘미적 완성에 대한 열정’이 아닐까 하고 지금에 와서야 거창하게 이름을 붙여 본다. 나는 새벽 2시가 넘어서까지 그 과제를 다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나는 미술시간이 기다려졌다. 선생님께 칭찬받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내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기를 바랐다. 드디어 미술시간이 되어 과제를 제출했다. 얼핏 보니 우리 반 삼분의 일은 과제를 안 해온 것 같았다. 하기야 공부하기도 바쁜데 중요 과목도 아니고 이런 과제는 미루기가 십상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제출한 과제를 일일이 검토 하시며 스케치북 밑에 사인과 함께 평가 점수를 써 넣으셨다. 나는 자습을 하면서 내 과제물을 언제 보시나 힐끔힐끔 선생님을 쳐다 보았다. 수업 시간 반 정도가 지났을까,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셨다. 나는 대답을 하고 환한 얼굴로 선생님께로 나아갔다. 

‘내가 너무 잘했나? 나만 부르시는 걸 보면, 헤헤.’ 하고 속으로 생각 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대뜸 하는 말씀이,

“야 너, 이거 네가 한 거 맞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머리를 망치로 한대 맞은 듯 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제가 어제 늦게까지 한 건데요.”

“뭐라고? 얘가 정말? 사실대로 말해, 이거 먹지 대고 베낀거 아냐!”

“선생님, 아니에요! 정말 제가한 거에요.”

“야, 일루 와서 봐봐. 연필로 꾹꾹 눌러서 뒷면이 볼록 튀어 나왔잔아! 안보여? 먹지 대고 그리면 이렇게 된다구, 이놈아.” 

정말 내가 그린 쪽의 뒷면을 보니 하도 힘을 줘 눌러 그려서 그런지 우둘투둘 튀어 나와 있는게 보였다. 하지만 나는 정말 억울했다. 나 혼자 끙끙대며 잠도 안 자고 새벽까지 과제한걸 생각 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얘, 누가 이걸 먹지 안대고 손으로 그렸다고 믿냐? 이렇게 꼭 같을 수가 있어? 함 봐봐!”

“선생님, 왜 그러세요? 정말 아니라니까요? 내가 왜 거짓말을 합니까? 진짜 너무 하는거 아니에요!”

나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눈을 부릅뜨고 대들 듯이 말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이놈이!’ 하면서 다짜고짜 내 뺨을 때리는 것이 아닌가! 눈 앞에 불이 번쩍하며 충격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쓰라린 뺨을 어루만졌다. 세상에 이렇게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 두 눈에 굵은 눈물이 흘러 내렸다. 나는 흐릿한 눈으로 선생님을 보고,

“됐어요, 됐다구! 빵점처리 하던가 맘대로 하세요!” 하고는 스케치북을 낚아채듯 가지고 자리로 돌아와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미술 선생님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 뒷일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충격이 너무 커서 였을까. 어렴풋이 선생님이 나를 다시 불러 달래 주었던 기억이 가물거린다. 학창 시절의 웃지 못할 슬픈 일이었다. 그때 생각을 하면 아직도 볼이 얼얼한 것 같다. 그런데 제자 말을 믿지 못하고 때리기까지 한 선생님을 생각 하면 지금도 울화가 치민다. 한편으로, 내가 얼마나 똑같이 그렸으면 선생님이 그런 오해를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 미술 과제물은 그 후 한참 동안 간직해 오다가 결혼을 하고 짐을 정리 하면서 버렸던 것 같다. 사진이라도 찍어 둘 걸 하는 후회가 남는다. 암튼 그날의 일은 잊혀지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모방으로 시작 했지만 결과는 창작이었다.

베끼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다..


‘아를 여인’을 그리기 위해 그림 사이즈와 비슷한 비율의 캔버스를 골랐다. 전체적인 구도를 잡고 여인의 얼굴, 어깨, 몸과 손, 의자 등 비율을 맞춰 가며 외곽선을 그려 갔다. 그런 다음 바탕색을 칠하기 시작 했다. 그런데 사진에 보여지는 색과 명암을 나타내기 위해서 어떤 색을 바탕에 깔고 색을 입혀가야 하는지 짐작이 안되었다. 고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색상을 나타냈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것은 고흐가 아닌 이상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나는 그 신문 베끼기 사건 때와 비슷한 욕심 또는 오기 같은 것이 스멀스멀 올라 오는 것을 느꼈다. 

‘아.. 어떻게 해야 이 색을 구현하지? 무슨 색을 섞어야 할까..’

붓을 잡아본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너무 어려운 숙제였다. 학원 원장님은 가끔 지나가며 한 마디씩만 던질 뿐이었다.

“여기가 너무 어둡지 않아요?” 또는, “얼굴이 너무 큰 것 같은데..”, “좀 더 과감하게 칠해봐요.”

이런 식이었다. 나는 팔레트에 이색, 저색 섞어가며 최선을 다해 비슷한 느낌을 내어 보려고 노력했다. 일주일에 한번 작업을 하다 보니 완성하는데 3 ~ 4주가 걸린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그림을 완성 했다. 그럭저럭 비슷한 분위기는 나타낸 것 같았다. 하지만 걱정했던 색상보다 원본과 다른 구도감이 더 문제였다. 특히 얼굴 부분이 너무 달랐다. 눈, 코, 입의 비율도 다르고 표정이 주는 느낌도 달랐다. 얼굴의 색깔도 더 이상 비슷하게 표현이 안되었다. 그 때까지 칠한 물감을 다 벗겨 내고 다시 칠하지 않는 이상 더 큰 변화를 주는데 한계가 온 것 같았다. 새로 할 엄두가 안나 어쩔 수 없이 거기서 멈췄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세계적인 대가의 그림을 완성 했다는 사실에 사뭇 뿌듯했다. 페인팅을 시작 한지도 얼마 되지 않은 초보자로서 이정도 그려낸 것에 만족스러웠다. 고흐 그림이라는걸 알아 봐주는 것만으로도 성공 아닌가 생각했다. 원장님의 말씀대로 따라 하는 과정에서 많은걸 배웠다. 이 색과 저 색을 섞으면 이런 색이 나오는구나. 입체감을 내려면 붓 놀림을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등. 예술은 모방으로부터 시작 한다는 문구가 생각이 났다. 그렇지만 내가 깨달은 더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완벽히 똑 같은 것은 존재 하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될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이 나와 똑같다면 일주일도 못 살테니까. 나는 결국 내 나름의 창작을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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