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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현 Feb 28. 2020

번외 2. 코로나 : OTT 시대의 호러

그래요. 근데 그게 중요해요?

뭐 근황을 말씀드리자면 모 문화재단 정규직 최종면접에 갔다가 홀라당 떨어졌습니다. 두 달 걸렸는데 쒸익쒸익... 해서 그간 취업준비로 글을 별로 못썼습니다. 해서 간만에 번외편을 써볼까 합니다. 그리고 이 글은 절대 방역에 참여하고 있는 의료진과 공공기관 근무자를 폄훼하기 위한 목적이 아닙니다. 위험을 각오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이 글은 질병과 공포의 연관성에 대한 글입니다.


재난 관련 논문을 준비하고 있어서 코로나19에 대해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제 관심사는 질병의 위험 정도는 아닙니다. 관심사는 어떠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시스템이 어떻게 움직이고,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이게 어떻게 문학에 녹아드는지 하는 문제죠.


코로나 예방 뭐 이런 게 이 글의 주제가 아닙니다. 그건 질병관리본부에서 더 잘 설명해줄 겁니다.


신종플루, 사스, 메르스 등과 비교했을 때 코로나19의 특징을 정리해보자면


1) 치사율은 낮은데 비해 전염력이 매우 높다.

2) 확실한 치료법이나 백신은 개발되지 않았으나 거의 치료 가능하다.

3) 여러 의견이 많지만 동물로부터 변이되었다는 루트로 좁혀진다.


중국의 경우를 제외하고 국내로 범위를 좁혀보면 사망자는 대부분 기저질환을 가진 노년층이었습니다. 초기 확진자 중 '생각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는 환자는 '감기겠거니' 하고 돌아다녔던 사람들이죠. 20-40대의 사망소식이 종종 들리는 중국의 경우 의료업계 종사자거나 집중치료를 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감염자 스스로도 증상에 대해 심각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냥 전염력이 큰 독감 이라고 할 수 있겠죠. 사망자는 기저질환이 있거나, 과로로 인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경우였고, 태국 등에서는 혼합 항생제로 치료가 가능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해외 여러 매체에서도 지적되지만 한국은 선별테스트 비용이나 감염자에 대한 지원이 굉장히 잘 되어있는 편이죠. 미국에서는 감염 여부 테스트만 400만원이 든다는데, 한국은 거의 무상이거나 10~20만원으로 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경증상자는 집에 자가 격리하고 적당히 항생제 먹으면 괜찮아진다고 가이드라인을 안내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공포감과 공황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역병의사 마스크를 쓴 카니발 참가자(...) 출처는 로이터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북미나 유럽은 대부분 크리스트교 문화를 큰 틀에서 공유합니다. '원인 모를 질병에 사람이 죽는다'라는 서사는 예로부터 공포의 중심이었죠. 성경에서는 종말의 때에 나타나는 '묵시록의 네 기사' 중 '청황색 말을 탄 기사'가 등장하면, '죽음'이 세상을 휩쓰는데, 학자들은 이 죽음의 원인을 흑사병으로 분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교 쪽은 제 전공이 아니라 잘 모릅니다만 성경의 그것보다는 무게감이 현저히 낮은 편입니다. 이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추측해보자면, 크리스트교는 현재를 심판하는 날이 오고, 그 심판의 순간(시간)에 올바른 형태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다는 큰 전제가 있는 셈입니다. 반면 불교 쪽은 대체적으로 죽음-구원으로 이어지는 '때(시간)'를 규정하기보다는, 윤회(순환)라는 큰 과정의 하나에서는 시간조차도 딱히 의미 없는 개념이라서, 심판(묵시)의 순간도 큰 의미가 없는 걸로 형성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러니까 죽음이고 뭐고 그냥 큰 순환체계에 속해 있는 거니까 그 원인 중 하나인 질병 정도야 불교적인 입장에서는 '그래, 근데 그게 중요해?' 정도가 되는 셈이겠죠.


부처님, 마스크 쓰시고 가급적 손은 입과 눈 등에서 멀리(...)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근대인은 '시간'의 개념에 익숙해졌습니다. 이 시기는 뭐 대체적으로 동서양 가릴 것 없이 비슷하겠습니다. 여담이지만 여러 사람들이 근대적 시간을 감각할 수 있는 ‘시계탑’이 한국에 등장한 건 식민지 시기로 추정됩니다. 그 전에는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로 요약할 수 있는, 해 뜨면 낮이고 해 지면 밤인 개념이었죠. 1분 1초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냥 “진시(07시~09시) 쯤 되었으니 아침 먹읍시다”였겠죠.


묵시적인 세계관, 즉 '위기와 종말'이라는 서사는 헐리우드를 통해 20세기 이후 아주 효과적(?)으로 전 세계에 배급되었습니다. 예컨대 <어벤져스>를 생각해봅시다. 헐리우드의 수많은 블록버스터는 질병이 되었건 전쟁이 되었건 '죽음에 가까운 위기(질병, 재난 등)'에서 '영웅(미국적인)'이 세계를 구한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죠. 심지어 최근 중국 영화도 이런 이야기 테마를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2019년 <유랑지구>가 딱 그런 내용입니다.


하지만 아이언맨이 와도 한국은 못 구합니다


그러니까, 개인의 능력으로 대체할 수 없는 문제(질병, 재난 등)에 대해 사람들은 역사적으로도, 전통적으로도 불안감을 공유해왔고, 이 불안감은 OTT시대의 영상물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했다는 게 제 가설입니다. 이걸 좀 더 논증하려면 사례와 함께 여러 이론가들을 끌어와야겠지만 그냥 논문 쓰기 전 워밍업으로 쓰고 있는 뻘글이고 지하철이 오고 있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출처는 야밤의 공대생 만화입니다


'시간선(타임라인)'은 명확하게 원인, 과정, 결과가 각각의 때가 이어지는 개념입니다. 현대인 특히 2040은 그 어느 때보다 이 '타임라인'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다고 봅니다. TV 세대인 50대 이상도 공유하는 감각이겠죠. 코로나19는 건 정확히 발생한 시간과 원인(박쥐냐 천산갑이냐 하는)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기에 현대인이 영화 등을 통해 익숙해진 종말론적 세계관(문법)과 더해지면서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동년배덜께서는 1990년대 휴거 논란과 1999년 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론을 생각해봅시다... 그땐 뉴스 생방송에 종말론이 보도되고 난리도 아니었죠.


그런데 20세기와 21세기의 가장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일상생활의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인터페이스적으로 2010년대 이후 사람들은 스스로가 '시간'을 조정하는 습관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다 유-투부 보면서 알아서 스킵하고 건너뛰고 하잖아요? 스크롤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글을 읽다 지겨우면 스크롤 내리면 됩니다. 그러니까 대상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스킵'할 수 있는 능력-감각(취사선택)이 현저히 발달하고 있다는 거죠.



그런데 말입니다(...) 재난과 질병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거든요.


뭐 자연재해와 달리 질병은 눈에 보이고 안보이고, 이건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1900년대 이후 한국 문학에서 보면 '질병'은 큰 관심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재난도 그랬습니다. 그렇다고 1900년대 초에 질병이 없었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스페인독감' 사망자는 5천만~1억 정도로 추산됩니다. 조선 역시 영향권에 있었다는 게 연구자들의 추정입니다. 그런데, 동아시아 문학 쪽에서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질병, 재난 등에 대해 대중적인 관심이 생기는 건 1950년대 태풍 사라 이후입니다. 유럽은 조금 빠르다고 볼 수 있겠는데, 앞서 말한 크리스트교와 관련한 영향도 있겠고요, 무엇보다 ‘흑사병(페스트)’이 묵시록 문학의 주요 소재였거든요. 1947년 까뮈의 『페스트』가 출간되었는데, 무튼 제가 준비 중인 논문의 중점은 1950년 이후입니다. 이 좁은 판에서도 표절이 많아서 세부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영화 쪽도 비슷합니다. 한국에서는 2013년 <감기>이전에 딱히 그 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할리우드도 비슷하죠. 1995년 <아웃브레이크> 전에는 질병과 관련해 공포심을 자극하는 영화는 없었다고 봐도 될 겁니다. 차라리 좀비물이 그 역사(?)가 깊다고 볼 수 있겠는데, 좀비물까지 언급하자면 글이 너무 늘어지니 다음에 기회가 되면 쓰는 걸로 하고요.


무려 9년 전 영화입니다. 지금의 상황을 정확하게 꼬집고 있죠.


논문을 쓰고 있는 중이라서 중간 검증과정은 건너뛰겠습니다. 결론만 말해서 지금의 세계적 공황과 공포의 원인을 딱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으면... 제가 노벨문학상 후보 정도는 되겠쥬? 요약하기는 굉장히 어렵지만


1) 타국에서 온 정체불명의 대상(질병/이민자 등)으로 인해 집(국가)이 위협받는다.

2)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으로 대응체계(시스템)가 무너지고 생존이 위협받는다.

3) 심지어 이 대상의 기원조차 알 수 없다.

4) 현대인은 원인-과정-결과라는 시간 개념에 익숙해졌다. 

근데 코로나19는 이걸 다 박살냄(...)

5) 나도 국가도 통제가 안 됨. ㅎㄷㄷ


해서 요런 것들이 복합적으로다가 결합되면서 패닉에 빠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뭐, 제가 박사를 할지 안할지는 모르것지만 나중에 시간 좀 지나면 관련 문학 작품이 나올 수도 있고... 그러면 연구 주제로 잡겠죠 언젠가는.


어제 양꼬치 먹는데 창 밖으로 이런 걸 쓴 사람들이 지나가더라고요


끝으로 가만히 생각해보면 미세먼지가 더 무섭지 않나요? 한국에서만 76만명이 감염되었던 신종플루도 유행 지나고 사라졌고, 사스/메르스 역시 마찬가지였거든요. 코로나19도 때 되면 사라지겠죠. 그렇지만 미세먼지는 거의 1년 중 반 년 넘게 지속되잖아요? 심지어 얼마나 누적된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지 제대로 검증되질 않았죠. 코로나19랑 다를 게... 백신도 없거든요.


삶에는 코로나19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훨씬 무서운 호환 마마 같은 게 있을 겁니다. 더 무서운 건 그게 우리 주변에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할뿐더러, 사회와 국가와 기업은 딱히 거기에 관심도 없습니다. 다들 호주 산불 봤잖아요... 옥시 파동도 마찬가지였고요...


이제 우리 다 빙하 녹아서 주옥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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