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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현 Jul 09. 2019

5. 이런 의미 없음을 사랑하면서

PCT 이야기를 해봅니다. PCT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의 약자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PCT 관련 브런치 작가분이 있으니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세요. 히맨(https://brunch.co.kr/@he-man#info)


PCT는 미국에서 4,300km를 걷는 코스입니다. 평균 6개월이 소요되고, 보통 늦겨울에 시작해서 다시 겨울이 시작될 무렵 끝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2015년 영화 <와일드>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늑대도 나오고 곰도 나온답니다. 라오스에서 급성 장염에 걸려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오던 길 비행기에서 영화를 봤습니다. 2015년이었죠. 그래서 마음먹었습니다. 언젠가는 죽기 전에 PCT를 가자. 인생 3대 목표입니다. 두 개는 이뤘습니다. 제주 올레길 완주했고, 산티아고 순례길 다녀왔으니까요. 물론 소소한 목표로 큐슈 올레 완주와 산티아고 포르투갈길을 다녀오는 게 있습니다만, 최종 목표는 PCT입니다.


친구들은 내게 초상권을 허락했으니 알아서 씁니다. 맨 우측에 선글라스를 낀 아저씨가 제로니모 아저씨입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겁니다. 우리는 줄여서 제롬이라고 불렀습니다. 제롬 옆에 까를로가 있네요. 왼쪽에서부터 순서대로 루카스, 이보, 데이빗, 글로리아, 라모나입니다. 라모나 옆은 누구인지 기억이 나질 않네요.


어쨌거나 제롬은 첫 날 피레네 산맥을 넘어 론세스바예스 성당 알베르게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영어가 서툰 스페인 북부 사람인데, 수다를 떨고 있던 우리에게 대뜸 화를 냈죠. 왓 타임 이즈 잇! 까를로는 처음에 시간을 묻는 줄 알고 11시라고 답했습니다. 제롬이 한 번 더 말합니다. 왓 타임! 그제서야 우리는 그의 속내를 알아듣습니다. 쏘리, 쏘리. 밤이 늦었으니 침대로 돌아갑니다.


제롬은 빨리 걷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함께 만난 수백 명의 사람들 중 가장 빠를 겁니다. 2월 말 생장에서 출발한 그룹들 중에 까를로와 제가 걷는 속도가 제일 빠른 편이었는데, 제롬은 우리보다 빨랐습니다. 함께 출발했지만 무려 5일이나 먼저 피니스테레에 도착했습니다. 사진은 산티아고 대성당 근처의 어느 레스토랑인데, 제롬은 이미 피니스테레를 다녀온 다음이었습니다. 스무 살인 독일 친구 루카스와 함께 다녔는데, 루카스는 발바닥이 다 벗겨져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제롬을 따라다녔습니다. 대단한 두 사람입니다.


제롬은 더 대단합니다. 어깨, 고관절, 무릎 모두 인공관절을 달았거나 큰 수술을 했습니다. 본래 건설업자였는데, 모두 일하다가 고장난 것 같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빨리 걷냐 물으니, 5월에 PCT를 가는데 연습 삼아 빨리 걷는 중이랍니다. 단짝인 루디 할배랑 같이 걷는데, 루디는 76살, 제롬은 60대 중반입니다. 할배들이 축지법이라도 쓰는지, 무지막지하게 걷습니다.


하늘은 강철로 된 무지개. 아니다. 제롬은 강철 같은 사람입니다. 걸음이 불편해 뒤에서 보고 있으면 조금 뒤뚱뒤뚱 걷습니다. 헌데 누구보다 빠릅니다. 저와 까를로를 더러 스토롱 맨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늘 그건 당신이잖아! 이렇게 외칩니다. 제롬이 제대로 나온 사진이 없네요. 이제 PCT를 시작하고 두 달 정도 됐을 텐데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저 사진을 볼 때마다 제롬이 생각납니다. 사진을 볼 때마다 제롬의 땀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립습니다.


제롬은 영어를 잘 못합니다. 그래서 나는 늘 구글 번역기를 들고 제롬과 대화했습니다. 나는 영어로, 제롬은 스페인어로 말하면 번역기가 대신 말을 들려줍니다. 가장 인간적이지 않은 학문이 과학처럼 느껴지는데, 과학이 사람을 연결해준다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 정확히는 공학이겠지만 뭐,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제롬은 PCT에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미 비행기도 예매했답니다. 왜 가냐고 물으면, 특유의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을 못 합니다. 영어가 너무 어렵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도 모릅니다. 제롬이 왜 PCT라는 험난한 길을 가려고 하는지. 물론 나도 모릅니다. 왜 PCT에 가고 싶은지.


걷다보면 내게 질문을 던집니다. 가끔은 20km를 가도 편의점은 커녕 자판기도 없습니다. 너무 목이 마르면 그나마 깨끗해 보이는 강물을 마십니다. 레온 이후부터는 수도 시설이 좋지 않다고 함부로 물을 마시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물도 마시지 못합니다. 3월의 스페인 북부는 본래 겨울이지만, 2019년은 유난히도 따뜻한 겨울이었습니다. 해는 뜨겁습니다. 평균 고도가 800m를 넘어가니, 은지원이 말한 산으로 갈수록 해에 가까워져서 덥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그는 천재입니다.


자판기 하니까 생각나는 사진입니다. 무려 24시간 섹스라고 되어 있어서 까를로, 앨런, 크리스와 함께 한참 동안 저 간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서있었습니다. 30분 가까이 정체를 토론했는데, 걷다보니 자판기 하나가 나옵니다. 자판기에서 음료와 함께 무려 콘돔을 팔고 있습니다. 우리는 깔깔거립니다. 저세상 텐션의 홍보입니다.


제롬은 루디 할배와 함께 걷습니다. 루디는 어느 대학교의 교수였다고 합니다만 전공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루디는 190cm에 가까운 장신입니다. 한 쪽 눈이 좋지 않아서 의안을 했다가, 지금은 없습니다. 성당에서 기도를 할 때마다 눈알이 자꾸 빠져서, 데굴데굴 굴러가서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방해하는 바람에 의안을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롬과 함께 인조인간 쌍두마차였을 텐데, 아쉽습니다.


그들의 장애를 우스꽝스럽게 말하는 것은 나쁩니까? 두 사람은 우리보다 더 건강하고 우리보다 더 빨리 걷습니다. 우리보다 한참 어른이지만, 늘 우리와 함께 걷고, 밥을 먹고, 웃습니다. 물과 술을 많이 마시게, 그게 탈수를 막아줄 거라네. 제롬은 루디를 보고 매드-맨이라고 합니다. 루디는 제롬을 더러 니가 더 지독한 인간이라고 받아칩니다. 그리고 껄껄거립니다. 무엇이 정상입니까? 건강하다는 것은 좋은 인간의 지표입니까? 인공관절을 넣고 의안을 사용한다는 것이 슬픈 일입니까? 그건 아무 일도 아닙니다. 그건 그들의 신체 일부이거나 혹은 그렇지 않을 뿐입니다. 루디는 눈을 잃고 의안을 쓰다 또 쓰지 않기로 했으니 두 번 눈을 잃은 셈입니까? 우리는 스틱을 사용해 걷습니다. 그러면 스틱들은 우리의 두 발이 되고, 우리는 네 발로 걷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네 발로 걷는 짐승입니까? 짐승은 질문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웃고 떠들고 살아갈 뿐입니다.


루디는 부르고스가 고향입니다. 부르고스는 레온에 도착하기 전 팜플로냐와 함께 스페인 프랑스길의 손꼽히는 대도시입니다. 부르고스에서 우리는 저녁을 함께 먹습니다.


왓-더-뻑? 레온에 도착한 까를로와 나와 크리스와 앨런은 경악합니다. 레온 대성당 앞 굿-즈 샵에는 저런 인형들을 팔고 있습니다. 앨런은 소름끼친다며 크리피- 크리피! 라고 외칩니다. 손가락 마디 크기부터 사람 크기까지 다양합니다. 북미 사람들인 까를로와 크리스는 KKK단을 떠올립니다. 덴마크 사람인 앨런도 저런 건 본 적이 없다며 사진을 찍습니다.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 저 복장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부활 당시 로마 교회 주변의 소나무를 형상화한 복장이라고 합니다. 스페인에서는 부활절에 저런 복장을 입는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에서도 흔한 복장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알 방법이 없고, 그저 경악합니다. 그러나 레온 대성당 앞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합니다. 쿠 클럭스 클랜에서는 본래 두건만 썼는데, 그게 변형되어 위 복장이 KKK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웃지 못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본다, 는 것에 대해 다시 의문을 가집니다. 이건 기표와 기의의 문제인데, 설명하면 골치 아프니까 넘어가도록 합니다. 그냥 간략히 말하면, 우리가 보는 것이 '기표'라면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기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신 이 사이에 약속이 들어갑니다. '개'라고 적으면 사람들은 왈왈 개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인들의 약속입니다. 개라고 백 번을 적어봐야 비 한국어권 사용자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복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유럽 라틴 문화권에서 위 복장은 부활절에 사용되는 신성한 의복이지만, 북미 문화권에서는 KKK단을 떠올리게 됩니다. 인종과 나이와 성별에 상관 없이 친구가 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오해를 살 일입니다만, 이건 약속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중요한 것은 약속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약속은 늘 어긋납니다. 저는 천주교 신자이지만 성당에 거의 가지 않습니다. 일 년에 두어 번 가서 기도를 할 뿐입니다. 다만 여행에서는 다릅니다. 성당이나 절이 있으면 꼭 들어가보는 편입니다. 태국 치앙마이에서는 숙소에서 나와 다음 숙소로 걸어갈 때까지 보이는 모든 절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기도'라는 형식이 중요할까요. 저는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은 삶의 다른 형식들을 주고, 그 형식을 변화시키면서 삶에 균열이 생기고, 변화가 온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형식일 뿐이고, 기도하는 과정에서 나는 다른 친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나의 기도에는 '나'가 없습니다. 죄다 누구를 아프지 않게 하고, 다치지 않게 하고, 안전히 여행이 끝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나는 필요할 때만 신을 찾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완벽한 존재가 있다면 나의 이러한 선택적 신앙도 너그러이 이해해줄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나는 천국을 믿지 않습니다. 순례길은 종교적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걸을 뿐입니다. 걸음은 형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만이 걷는 것은 아닙니다. 길에는 소가 있고, 양이 있고, 말이 있고, 가끔은 여우도 있습니다. 내 발 아래 개미들이 걸어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걷는다는 것은 인간만의 믿음입니다. 그들은 두 발을 딛고 세상에 서있다는 사실을 걷는다 혹은 서있다고 말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앉는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앉고, 서는 문제는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물종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겁니다. 그들은 그들이 지구를 들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한때 인간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고, 더 오래 전에는 신이 지구를 들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신이 하늘을 들고 있다고 생각했죠.


바바예투예투예 저작권은 시드마이어에 있습니다. 우리는 아틀라스를 생각할 때마다 위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사실 지구가 둥글지 않고 납작하고, 세상 끝은 단절되어 있다는 믿음은 중세가 되어서야 유행하는데, 지식인들은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하는 편이었습니다. 중요한 건 둥그런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과 별이 도는지, 아니면 태양을 지구가 도는지 하는 문제였습니다.


가끔 해외여행을 다니면 비행기 밖 풍경이 시뮬레이션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비행기에 탄 척 하고, 비행기는 날지 않았는데, 그냥 대기업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있는 척 하고 돈을 홀랑 먹는 게 아닐까 하고요. 물론 이런 공상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구가 둥글지 않다는 의심은 가끔 해봅니다. 나는 달에서 지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말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보는 경험은 매우 드문데, 한라산이나 설악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봐도 지구가 둥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가끔 산에 가는데, 그러면 세계가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지구가 둥글다는 말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합니다. 본 것이 아니지만 믿을 수 있다는 것. 이건 다시 약속의 문제입니다. 신을 보지 않은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믿는 것처럼, 지구가 둥글다는 걸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지구가 둥글다는 걸 믿는 것과 비슷합니다. 지구라는 별은 있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지구는 둥급니까? 우리는 구글을 켜고 '지구'의 이미지들을 검색해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지만, 사실 정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본' 사람들은 세계에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한 번도 내리지 않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아본 사람들도 드물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속처럼 둥근 지구의 이미지를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믿음이 문제인 겁니다. 쿠 클럭스 클랜처럼요.


다시 제롬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제롬은 PCT를 떠났을까요? 그는 약속처럼 PCT를 말하곤 했습니다. 아마 PCT에 갔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게 중요한 문제일까요? 제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를 통해 의지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제롬이나 루디 할배의 나이가 되어도 그들처럼 세계를 여행하고, 낯선 이들에게 친절하자고 생각했습니다. 나에게는 이것이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구가 납작하거나 둥글거나, 고작 두 발을 디딜 수 있는 한 평도 되지 않는 작은 땅이 인간인 내게 더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나에게 중요한 것들은 사소하지만 큰 약속의 문제들입니다.


여기는 어디일까요. 다녀온 사람들만 알 수 있습니다. 여기는 몽마르뜨입니다. 진짜 지랄 맞게 가는 길에 마실 것을 파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이게 왠 일인지, 내가 올라가는 길에는 편의점 하나도 없습니다. 폼나게 샌드위치 하나를 포장했는데 커피는 커녕 물 살 곳도 없습니다. 진짜 목이 말라 뒤지겠습니다. 알고보니 나는 관광객이 가지 않는, 현지인들의 거주지역을 거쳐 언덕에 올라갔던 거였습니다. 마치 파리지앵처럼 코스프레를 하고 혼자 샌드위치를 먹습니다.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파리에 갔으니 파리 사람들의 생활 형식을 따라해본 다는 것. 그게 중요합니다. 허영의 문제는 아닙니다. 작가들은 산책에 익숙했습니다. 위대한 작가들은 모두 걷는 일에 익숙했습니다. 칸트가 그랬고, 괴테가 그랬고, 보들레르가 그랬습니다. 이들은 걸어가면서 생각했고,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마차를 탈 돈이 없어서였는지 아닌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전까지, 그 정지된 형식의 작은 움직임, 겨우 손을 움직이고 고개를 돌리고 하는 것으로는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형식을 파괴해봄으로써 다른 세상을 생각했습니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한 것도 어쩌면 다른 삶의 형식을 경험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상상력들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걷는다는 것, 이동한다는 것, 움직인다는 것이 내게 다른 상상들을 가능하고, 가능한 다른 세계들을 마주할 수 있게 도와주는 덕분입니다.


그리고 내가 보는 것들이 나의 믿음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이것은 다시 기표와 기의의 문제입니다만 용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아주 작은 삶의 일부분들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엉망으로 만듭니다. 때로는 정말 나쁜 곳으로 우리를 끌고 갑니다. 여기서는 신도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아, 고양이들이 울고 있네요.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의 울음소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저 안고, 털을 빗겨주고, 장난을 칠 뿐입니다. 함께 살아간다는 건 그런 일인 것 같습니다. 나의 믿음을 다른 존재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 그들이 무엇을 믿더라도 그들의 믿음에 개의치 않고, 다만 나의 믿음을 의심하고, 내가 잘못되지 않았는지 전제해볼 것. 나는 이것이 철학이고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은 거창한 곳에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의심하고, 점검하고, 반성하는 과정에서 나의 믿음들은 영원히 변화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행을 갑니다.


PCT를 가면 내가 나에게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이 좀 더 많아지겠죠. 이런 글처럼, 나는 세상에 무용합니다. 그러나 무용하다는 것이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무용하다는 것은 인간적인 기준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무용한 일을 계속해보는 것이 때로 세상을 조금 바꿀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바깥 풍경을 보는데 유리 시트지에 기포가 껴 있습니다. 얼룩들은 세상의 풍경을 어그러지게 만듭니다. 약속들은 세상을 얼룩처럼 가리고 있습니다. 나는 약속 너머의 것들을 보기 위해 애쓰지만 그건 늘 어렵습니다. 이 사진 한 장이 내가 보는 세계를 설명해주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아프기도 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나에게는 아직 두 개의 눈이 남아있고, 루디와 제롬에게서 배운 것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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