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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ay 싸이 Feb 12. 2023

카오써이

내 영혼의 칼국수

라오스 음식 중 제일 좋아하는 것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카오써이를 꼽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루앙파방 왓샌 앞 가게의 카오써이다. 가게는 간판도 하나 없지만 왓샌 앞 카오써이집이라 하면 누구나 안다. 1991년에 매솜짠이 처음 문을 연 이래, 딸 나이나를 낳고 그 나이나가 또 엄마가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성업 중이다. 메뉴는 카오써이와 퍼 두 가지로 단출하다. 루앙파방의 유명한 볼거리인 새벽 탁발 행렬이 끝나는 무렵부터 문을 열어 점심때까지만 영업하고, 재료가 떨어지면 점심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문을 닫기도 한다.

카오써이 ເຂົ້າຊອຍ 는 직역하자면 '카오 ເຂົ້າ : 쌀 또는 밥, 쌀국수 등의 통칭'+'써이 ຊອຍ : 썰다', 즉 '(칼로) 썬 쌀국수'라는 뜻이다. 재료나 반죽을 만드는 과정은 조금 다르지만 마지막에 칼로 써는 건 같으니 칼국수로 부를 만하다. 여기에 보통 돼지뼈를 고은 육수를 붓고 다진 돼지고기, 토마토, 삭힌 콩과 마늘, 양파를 볶아 만든 고명, 즉 나카오써이 ຫນ້າເຂົ້າຊອຍ 를 올리면 완성되는 그리 어렵지 않은 요리다.

카오써이 맛을 좌우하는 건 이 나카오써이에 들어가는 삭힌 콩의 상태다. 이 삭힌 콩을 투아나오 ຖົ່ວເນົ່າ 라고 하는데, 마른 콩을 볶고, 삶고, 띄우고, 빻고, 고춧가루와 소금으로 양념하는 것까지, 우리 청국장이랑 만드는 방법이 거의 같다. 하지만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도 콩 자체 맛이나 이런저런 변수들 때문에 집집마다 청국장 맛이 다른 것처럼, 이 투아나오도 만드는 손에 따라 맛이 제각각이다. 루앙남타의 므앙싱, 씨앙쾅, 루앙파방 등 라오스 북부 지역에서 만든 투아나오가 유명하다.

https://youtu.be/GuVwTZ4O9E8

KrazyKAT's Fermented Soybean Paste *Toa Nowh*
투아나오 므앙싱, 투아나오팬, 동글납작하게 말린 투아나오팬은 요리 재료로도 쓰지만 바로 구워서 밥반찬으로 먹기도 한다

카오써이용 면, 센카오써이 ເສັ້ນເຂົ້າຊອຍ 는 퍼에 쓰이는 면, 센퍼 ເສັ້ນເຝີ 와 기본적으로는 같다. 쌀가루에 타피오카 전분을 섞은 반죽을 넓게 펴서 찌고 바로 자르면 날국수란 뜻의 센퍼솟 ເສັ້ນເຝີສົດ = 센카오써이가 되고, 말려서 가늘게 썰면 센퍼가 된다. 보통 퍼 가게에서 가는 면 센너이 ເສັ້ນນ້ອຍ, 넓은 면 센냐이 ເສັ້ນໃຫຍ່ 를 고를 수 있는데, 센카오써이는 센냐이랑 비슷하거나 조금 더 넓다.

쌀반죽물을 천을 팽팽하게 씌운 찜기에 넓게 펼쳐서 찐 다음, 돌돌 말아 썰면 센카오써이, 말려서 가늘게 자르면 센퍼가 된다.    센퍼는 자른 다음 더 바짝 말리기도 한다.

재밌는 건, 라오스랑 언어가 거의 비슷한 태국에도 치앙마이 같은 북부를 중심으로 카오써이 ข้าวซอย 란 똑같은 이름의 음식이 있는데, 이 태국 카오써이는 라오스와는 영 딴판이다. 면 자체부터 밀가루로 만든 에그누들을 주로 쓰는 데다, 국물에는 마사만 커리와 비슷하게 코코넛 밀크가 들어가고,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나 소고기를 쓴다. 쌀면+맑은국물+돼지고기고명 vs. 밀가루면+진한커리국물+닭/소고기고명인 셈.

태국 카오써이는 주로 닭다리나 소고기 덩어리, 튀긴 면이 고명으로 올라가고, 중국식 갓절임 쏸차이를 곁들여 준다

또 이 음식은 미얀마 샨 지방에서 유래했다는 샨 카욱쉐가 변형된 거라고 하는데, 오히려 샨 카욱쉐의 레시피를 찾아보면 라오스 카오써이 만드는 방법이랑 더 유사하다. 샨 카욱쉐는 국물 없는 비빔국수 버전과 국물 버전, 오노 카욱쉐라고 코코넛밀크 국물 버전까지 있다고 한다. 유튜브에서 중국 윈난 지역에도 토마토를 볶아 면과 섞어 먹는 요리가 있는 걸 확인했는데, 샤오즈미깐 紹子米干이라는 이게 윈난 누들이 아니라 샨 누들이라는 버마인의 댓글이 있었다.

https://youtu.be/_W245ixPNow 

윈난이 먼저인지 샨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이 지역 사람들이 민족적 뿌리가 같고, 16세기부터 버마와 지금의 라오스-태국 지역 간에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되었던 걸 생각하면, 오랜 기간 동안의 활발한 인적 물적 교류를 통해 미얀마 샨 지역, 태국 북부, 라오스 북부, 중국 윈난 지역에서 비슷한 음식을 공유하게 된 건 당연한 일이지 싶다. (아래는 내 맘대로 그려 본 카오써이 왕국 지도)

여기에 중국 무슬림 회족이 특별출연한다. 중국 본토에서 서역과의 무역을 담당했던 것처럼, 회족은 19세기 무렵부터 치앙마이를 거점으로 사얌과 중국을 잇는 새 무역로를 개척했고, 당연하게도 일부는 새 정착지에서 음식장사를 시작했다. 이들이 이미 지역에 퍼져 있던 카욱쉐 또는 윈난 누들을 무슬림 입맛과 타이인 입맛에 맞게 더 변형한 것이 아마 현대 태국 카오써이의 원조가 아니었을까. 북쪽 요리에 많이 쓰지 않던 코코넛밀크가 이 지역 카오써이의 주요 특징이 된 건, 코코넛 생산이 풍부해 마사만커리가 이미 자리 잡은 태국 남부 무슬림과의 교역을 통해서였을 테고. 그간 수입에 의존해 오던 밀을 20세기 초에 프래, 치앙마이 지방을 중심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것도 쌀면을 밀면으로 대체하게 된 계기가 됐을 것 같고.


샨 카욱쉐는 영국이 버마까지 식민지로 만들었을 당시, 왕래가 잦던 메몬 인들에 의해 파키스탄에까지 진출했다고 한다. 위의 카오써이 왕국 지도는 서쪽으로 더 확장돼야겠구먼...

https://youtu.be/Vm15BP4T68A


사실 이 글을 쓰려던 게 몇 년도 더 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게으름에 손을 놓고 있다가, 코로나가 터지고 미얀마 쿠데타도 터지고 하는 바람에 샨 카욱쉐와 샤오즈미깐을 좀 더 먹고 연구해 봐야겠다는 변명이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길래, 날이 한껏 더워져 나른하고 무료한 일요일 오후를 틈타 급히 마무리를 해 버렸다. 이렇게 인터넷에 돌아다닐 '낭설'이 하나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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