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차 응애 개발자의 회고
개발자들이 말하는 '가장 어려운 업무’는 이름 짓기다. 코딩은 수 십명의 인물을 만들어 각자 엄청 쉬운 일을 시키는 것이다. 명절 때 내 이름을 헷갈려하던 이모처럼, 일 시키기 전에 얘네 이름 짓다 보면 진이 다 빠진다. 비단 코딩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세 개의 IT 스타트업을 거치며, 나는 작은 기능, 새로운 서비스, 그리고 하나의 회사 이름까지 지었다. (내가 대표는 아니지만 그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증도 나왔다!) 무언가를 세상에 나오게 하고, 다른 이들이 그를 부를 이름까지 지었으니, 얘들은 정말이지 ‘내새끼’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창조의 마지막 단계다. 물론 이름을 미리 지어놓고 뭔가를 만들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름만 있는 ‘무언가’란 없다. 지칭의 대상이 존재하고, 그 대상을 사람들이 알기에 그 이름이 남아있다. 이게 뭐라고 찌르르 할 때가 있다. 나는 무언가를 창조하고, 그 이름을 짓고, 세상에 내놓고 있다.
게으름은 개발자에게 참 도움이 된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누군가가 하는 일을 보고, ‘우와, 이걸 다 직접? 진짜 귀찮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건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이다. 내가 이 팀의 개발자니까. 고객의 입장에 대입해보기도 쉽다. 새 버전을 테스트 해보다가, ‘그냥 이거 좀 귀찮은데요’라고 자주 말한다. 이따위 피드백도 이해해주고 반영해준다! 우리팀 앱 개발자들에게 늘 고맙다. 사랑해요...
남을 돕겠다거나, 누군가의 삶을 윤택하게 하겠다거나 하는 거창하고 봉사적인 정신이 아니다. 그냥 나도 귀찮으니까, 남의 귀찮음에 꽤 쉽게 공감이 될 뿐이다. 그리고 내 게으름이 누군가를 편하게 만드는데 조금 기여한다. 나는 누군가의 퇴근을 몇 분 정도 앞당겼을지 몰라.
사무실에 들어가면 셋 중 하나는 디자이너고, 셋 중 하나는 개발자다. 입사하고 얼마 안 됐을 때, 디자이너의 모니터를 보고 ‘우와 진짜 예쁘네요’한 적이 있다. 내 딴에는 칭찬이니 못할 것 없다고 생각했는데, 헐 못할 것이었다. 나중에 디자이너와 이야기 해보니, 디자인은 중간 산출물을 한 눈에 평가할 수 있고, 그게 불편하다고 했다.
물론 개발도 삽질 중인지 아닌지는 알 수 있다. 똑같은 걸 테스트 하고 있다거나, 에러를 그대로 복사해다가 구글에 쳐보고 있다거나, 그런 것들. (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자의 모니터를 딱 보고 무얼 하고 있는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난 10명이 오가는 통로에 앉아 있지만 그게 크게 신경쓰이지는 않는다. 안 그래도 집중력 낮은 내가, 중간 과정이 다 드러나는 직업이었다면 자주 괴로웠을 것이다.
음, 팀장님이 보시면 비웃으실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