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매드랜드>를 보고
어느 날 갑자기 노매드의 삶을 살게 된 '펀'. 영화 속 그녀의 여정을 따라가며 내가 만약 저 상황이라면 어떨까 여러 번 되물었다. '펀'에게는 벤 하나가 있고, 아직은 일할 수 있는 체력이 있다. 집은 없지만 아마존에서 물건 포장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고, 그러다 친구의 소개로 노매드들이 모인 곳에 찾아가게 된다. 거기서 만난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며 아픔과 슬픔을 서로 위로해주게 되는데..
한동안 내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나는 디지털노마드로 살 거야"였다. 어딘가 정해진 물리적 장소에 구속되지 않고,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온라인으로 돈을 벌고, 가고 싶은 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유유자적하는 삶, 그것이 내가 바라던 삶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봄의 햇살 같기만 했던 노마드의 겨울을 실감나게 마주하게 되었다.
영화 속의 '노매드'들은 처음엔 낭만적인 여행족의 모습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모두가 자기만의 아픔과 사연을 가진 채 유목민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일자리를 잃고 집세를 감당할 수 없어서,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인생의 남은 날 동안 감격스러운 풍경들을 마주하며 지내고 싶어서 저마다의 벤을 타고 내일은 오늘과 다른 곳으로 떠난다. 그러다가 또 어딘가에서 만나고 함께 하고 헤어지고.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무겁지 않게 '안녕'이라는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이들. 어떤 면에서 보면 자유로웠고, 또 다른 면에서 보면 위태로웠다.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지평선을 보며 저무는 해를 바라보는 것이 일상이 될 수 있고, 밤에는 캄캄한 하늘에서 계절의 별자리도 찾아볼 수 있다. 멋진 산과 바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계곡에서 홀딱 벗고 물 속에 들어가 자연에 몸을 맡길 수도 있다. 비슷한 삶의 방향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모여 음식과 술을 나눌 수 있고, 밤에는 모닥불 앞에서 신나게 춤을 추는 일이 일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파티 같던 시간은 금세 지나고, 어디든 달려갈 수 있는 벤이 있다고 해도 밤마다 무료로 차를 댈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하고, 계절이 바뀌면 벤 안에서 추위와 싸우기도 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벤의 이곳저곳이 삐걱거려 큰 돈을 들여 수리를 해야 할 때도 있고, 스페어 타이어 없이 인적 드문 곳을 달리는 것은 생명을 건 무모한 일이 되기도 한다. 이따금씩 다시 만나게 되는 반가운 얼굴들도 있지만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위험에 처했을 때 혼자 해결해야만 하는 위급한 순간도 더러 있다.
영화 속 '펀'은 다행히 급할 때 돈을 빌릴 언니가 있었다. 정착해서 함께 살자고 권하는 언니를 뒤로 하고 떠나는 그녀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어딘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이 '펀'의 삶을 멀리서 관찰하던 나에게도 안도감을 줄 만큼 큰 위안이었다.
노매드의 삶은 집토끼인 내가 가장 바라는 자유의 모습이었지만 닻을 내릴 정박지 없이 표류하는 배와 같이 끊임없이 흔들리는 삶이기도 하다. 어떤 날은 잔잔한 호수 같다가도 또 어떤 날은 성난 바다 위에서 수없이 부서지는 파도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고독한 싸움.
과연 내가 노매드로 살아야 한다면? 이제는 쉽사리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되었다. 여행은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에 떠나는 과정이 설레듯, 우리네 삶도 매일 눈 뜨고 눈 감는 아늑한 그곳이 있을 때 비로소 떠남이 기대되는 일일 것이다.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는 일상이라 하더라도 나를 맞아주는 사람들과 안전한 일상을 누릴 수 있을 때 그것은 진정한 '집'으로서 나를 지탱해주지 않을까. 영화 <노매드랜드>는 나에게 '과연 당신이 돌아갈 집은 어디인가요?'라고 묻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