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린정원 Jul 04. 2021

나의 유언장 쓰기

마지막을 생각하며

#공심재 #신나는글쓰기4기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게 되겠죠.

고통스럽게 죽어가느냐,

비교적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느냐

그런 선택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중략)

연명치료에 대한 여러분의 현명한 생각을 듣고 싶어요.





이번 주제는 연명치료에 대한 것이지만 좀더 넓게, 죽음의 순간을 미리 생각해봤던 경험에 대해 쓰고 싶다.





작년 추석, 가족들과 근교 카페에 갔다. 며칠 전부터 미리 "유언장을 쓰는 시간을 가질 것이니 생각해오세요"라고 공지를 했다. 쉽게 꺼낼 주제는 아니지만 꼭 미리 서로에게 공유해야 할 부분이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만약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가족 중 누군가가 연명치료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본인이 아무리 거부하고 싶었더라도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환자를 두고 가족들이 먼저 산소호흡기를 떼는 결정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부모님 앞에서 차마 먼저 꺼내기 어렵기 때문에 더 회피해왔던 시신에 대한 처리방법, 재산이나 물품 등을 어떻게 하기 원하는지 등 죽음 이후에 대한 것들을 수면 위로 꺼내보았다.



얼마간 각자의 유언장을 작성한 후 부연설명까지 곁들였다. 그동안 애써 피해왔던 주제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나의 유언장 초안ㅋ


내 인생 첫 유언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각막은 이식해주오.

- 아직 다른 장기에 대해서는 마음의 결정을 못 내렸기에.


둘째, 모든 재산은 언니에게 연락하시오.

- 결혼 후에는 상속의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도 있소.

- 만약 빚이 있다면 상속을 포기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지.


셋째, 의미없는 연명치료는 받지 않겠소.

- 혹여나 미안함을 느끼지는 않아도 된다오.


넷째, 화장 후 수목장으로 해주오.

- 평소 자연을 좋아하니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소.


다섯째, 심장 등 장기는 기증하겠소.

- 유언장을 쓰면서 용기가 생겼소.


여섯째, 모든 소지품은 불태워 주시오.

(단, 모스이끼는 불에 타지 않으니 주의ㅋ)

- 취미용으로 잔뜩 사놓은 모스이끼가 있는데 불연성이 장점이라 이건 그냥 버려주오.





약간은 장난스럽게 시작했지만 막상 이렇게 직접 쓰고 나니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기에 돈이나 물건은 정말 잠시 지나가는 거구나. 조금이라도 내 생의, 내 존재의 의미를 찾고 싶은 마음에 각막이든 장기든 누군가에게 소용이 되는 것들은 나누고 싶다는 바람도 생겼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서 더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땅에서 나라는 사람을 기억해주는 가족(특히 자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첫 유언장을 만들었으니 앞으로 조금씩 다듬어갈 생각이다. 아무도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장담할 수 없기에 더욱 잘 준비하고 싶다.




스스로 자신의 시신(屍身)을 거둘 수 없음 ㅡ 그것이 슬픔의 뿌리인지 모른다.

- 이성복 아포리즘 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길, 굽이굽이 그러나 멈추지 않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