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감칠맛 폭발’이라는 말은 이렇게 들린다

by 릴리앤릴라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을 보다 보면

유독 자주 들리는 말이 있다.

“감칠맛이 폭발합니다.”

“이건 정말 직관적인 맛이에요.”


나는 이 말이 이렇게 들린다.

“이 향, 설명 안 해도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조향에서 감칠맛은 노트의 문제가 아니다.

탑이 화려해서도 아니고, 베이스가 무거워서도 아니다. 감칠맛 있는 향은 항상 레이어 사이에 있다.

어디 하나 튀지 않는데, 전체가 무너지지 않는 상태. 의도가 보이지 않는데, 완성은 느껴지는 상태.

조향적으로 말하면 감칠맛은 이런 순간에 생긴다.

달콤함이 주인공이 되기 직전, 우디가 너무 깊어지기 바로 전, 애니멀릭이 드러나기 직전

그 경계선에서 향이 스스로 멈출 때. 그 멈춤이 향을 안정시킨다.


그래서 감칠맛 있는 향은 흥분을 만들지 않는다.

“와, 예쁘다”도 아니고

“강렬하다”도 아니다.

대신

“괜찮다”

“편하다”

“계속 맡고 싶다”

라는 반응을 만든다.


이건 후각의 쾌락이 아니라 신경계의 동의에 가깝다.

조향을 하다 보면 어떤 향은 말을 건다.

“날 이해해.”

“날 설명해.”

“날 기억해.”

하지만 감칠맛 있는 향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피부 위에 남아 호흡 속으로 들어온다.

마치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이게 바로 흑백요리사에서 말하는 ‘직관적인 맛’과 닮아 있다.

분석하기 전에 몸이 먼저 고개를 끄덕이는 상태.

조향으로 치면 후각이 판단을 포기하는 순간이다.

좋고, 나쁘고를 묻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는 순간.

그래서 감칠맛 있는 향은 사람을 바꾸지 않는다.

기분을 끌어올리지도 않고 각성시키지도 않는다.

대신 지금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게 돕는다.

이건 향의 기능이라기보다 향의 태도에 가깝다.

내가

“이 향은 위로가 됩니다”라고 말할 때, 사실은 이런 뜻이다.

이 향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더 밝아지라고도, 더 나아지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여기 있어도 된다고 공간을 내어줄 뿐입니다.

감칠맛 있는 향은 완벽해서 기억에 남는 게 아니다.

조금 모자라서, 조금 애매해서, 조금 설명이 안 돼서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런 향만이 사람 곁에 오래 남는다.

어쩌면 요즘 우리가 감칠맛이라는 말을 이토록 자주 쓰는 이유는

맛 때문이 아니라 태도 때문일지도 모른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조향이 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일은 바로 그 상태를 조용히 만들어주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빌려둔 문장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