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왔다. 새해의 첫 곡은 신경 쓰지 않지만 새해의 첫 책은 신중하게 고른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고심해 고르기도 하지만 가끔은 내가 어떤 것에 빠져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어렴풋한 마음으로 책을 찾는다. 몇 년째 이어하고 있는 온라인 독서모임 ‘밑줄농부단’의 농부들(모임 참여자들을 부르는 호칭)에게 2025년 첫 책과 그 책을 고른 이유를 물었다. 추천받아 골랐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새 마음을 다잡기 위해 특별히 골랐다는 의견도 있었다.
코로나로 힘들었던 시기에도 집에 박혀서 신문을 읽었던 게 기억나는 걸 보면 못해도 3년 이상 매일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일요일과 공휴일을 빼고) 신문을 읽었다. 글이 될 만한 아주 작은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또 관심 없는 분야의 이야기도 고루고루 읽으며 균형 감각을 얻기 위해서였다. 신문 읽기는 많이들 추천하는 습관이라던데 개인적으로는 이 습관의 중요성을 크게 깨닫지 못했다.
꾸준히 읽는 힘을 기를 수 있었고 알아둬도 특별히 쓸 데는 없지만 알고 있으면 재밌는 이야기도 많이 주웠지만 모르는 분야(이를 테면 경제)는 몇 년을 읽어도 '여전히 모름' 상태로 남아 있었고 아침에 세상 돌아가는 꼴을 읽는 게 기분에도 별로 좋지 않았다. 기껏 달리기로 고양시킨 기분이 신문을 볼 때마다 뚝 떨어졌다. '오늘도 어제처럼 사람들은 싸우고 죽고 화내고 다투는군… 내일도 오늘과 비슷하겠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매일 신문을 읽었던 이유 중 하나를 '빠르고 정확한 정보 파악'이라고 생각했지만 몇 년쯤 읽다 보니 내가 빠르게 알아야 할 정보가 그렇게나 많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요 1년간 내게 가장 시급하게 도달했어야 하는 이야기는 계엄 선포였지만 정작 나는 자느라 몰랐다…. 세상 중요한 일이 나를 비껴 가는 것을 몰랐다 한들 지금 같은 식으로 괜찮을 것이며, 정말로 내게 필요한 이야기라면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도달할 것이다.
고민 끝에 몇 년간 지켜오던 신문 읽는 습관을 없애는 대신 일주일에 한 번 발행하는 시사 잡지를 읽기 시작했다. 조금 늦게 소식을 접하더라도 내용이 풍부하며 기자의 고민과 분석이 돋보이는 잡지글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앞으로 읽을 뉴스를 어떻게 소화하면 좋을지를 고민하다가 <뉴스의 시대>라는 책을 올해의 첫 책으로 골랐다. 뉴스를, 나아가 이야기를 어떻게 읽고 소비하며 체득해야 할까. 내가 올해 계속 이어서 할 질문을 담은 선택이었다. 해갈되지 않는 질문은 책 <고통 구경하는 사회>로 이어졌다. 나는 뉴스를 읽고 있는가, 소비하고 있는가? 내가 뉴스를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구경하기 위해서인가, 목격하기 위해서인가? 뉴스를 볼 때마다 느끼는 절망을 그대로 두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뉴스의 시대>에서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행동 변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느꼈다면 <고통 구경하는 사회>에서는 뉴스를 어떻게 발신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현직자의 고민을 읽어낼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책 한 권으로 이 질문을 모두 해결할 수는 없었다. 나는 전보다 뉴스를 덜 보려고 애쓴다. 내용과 제목이 동떨어져 있는 무의미한 낚시성 기사를 클릭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이야기에 대한 관심은 놓지 않으려 하는 요즘의 시도가 어떻게 굴러갈지는 알 수 없다. 때마다 고른 책들이 내가 가고 싶어 하는 방향의 실마리를 조금이라도 제시해 주기를 기대하며 그저 읽고 또 읽을 뿐.
-알랭 드 보통, 뉴스의 시대 (링크)
-김인정, 고통 구경하는 사회(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