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이는 늘 ‘조금’이라는 단어와 함께 자라왔다.
조금 느리고,
조금 서툴고,
조금 여리고,
그리고 솔직히 말해 조금 귀엽기까지 한 아이.
그런데 겉은 느린데 속은 또 유난히 급했다.
천천히 걷다가도 마음이 앞서 휙 움직이고,
시키는 일에는 느릿느릿하더니
갑자기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면 번개처럼 해내고,
숙제라는 마을을 걷는 듯 보이더니,
잠시 후엔 미지의 세계로 고속 이동해 버리는 그런 아이였다.
학교에서는 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규칙은 머릿속에 넣어두지만 가끔은 ‘선택적 적용’이 되고,
친구들과 잘 지내다가도 갑자기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고,
책상은 늘 엉망이어서,
마치 탐험가가 다음 탐험을 위해 그대로 둔 베이스캠프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엄마인 나는 자연스럽게 ‘지원군 1호’가 되었다.
내 일정과 취미와 사생활은
그때그때 유연하게 조정되었고(지나치게 유연했지만),
아이 뒤에서 조용히 정리하고 챙기고 밀어주며
우리만의 속도로 살아왔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가끔은 정신이 없고,
가끔은 웃음이 나오고,
가끔은 ‘이게 뭐지?’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꽤 괜찮은 모험이었다.
이제 아이는 어른이 되어
자기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든든한지,
엄마인 나는 조용히 뒤에서 미소 짓는다.
넘어지면 일어나는 법을 알고,
실수하면 고치는 법을 아는 아이가 자랑스럽다.
이 글은 특별하거나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조금 다른 아이와
조금 많이 움직인 엄마가
조금씩 잘 살아온 기록이다.
내 아이가 이 글을 읽는다면,
속상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 나 진짜 귀여웠네.”
“엄마랑 꽤 재미있게 지냈구나.”
그 정도의 가벼운 미소가 지어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맞아, 이런 날이 있지’ 하고 잔잔히 웃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급해도, 서둘러도, 멈칫해도, 잠시 주저앉아도 괜찮다.
우리는 결국, 다들 자기 속도로 잘 자라니까.
무엇보다
‘조금’이라는 단어가
누군가의 부족함이 아니라
그 아이만의 결을 설명하는 따뜻한 수식어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아이를 키우며 배웠다.
이 이야기는
정답을 전하는 게 아니다.
그저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작은 허락을 건네는 이야기이다.
느리지만 급한 아이,
그리고 그 아이 덕분에 조금 더 깊어지고 단단해진
엄마의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