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성은 기술이 아니라 해석이다

by 전이야

우리는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사회성을 보여주는 행동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아기가 손을 흔들며 “빠이빠이”를 배우는 순간부터다. 엄마는 아이의 손을 잡고 흔들어 보이고, 아빠는 “인사해야지” 하고 웃으며 말한다.


빠이빠이를 가르치면 아이들은 곧 따라 한다. 손을 흔드는 행동은 비교적 단순하다.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고, 상대도 대부분 웃으며 반응해 준다. 아이는 몇 번의 반복만으로도 이 행동을 익힌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인사’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세요.” “안녕.” “잘 가.” 대상과 상황에 따라 말이 달라진다. 어른에게 하는 인사와 친구에게 하는 인사가 다르고, 집에서 나갈 때와 돌아올 때의 표현도 다르다. 같은 ‘인사’라도 맥락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


그래서 아이들은 한동안 이 표현들을 헷갈려 한다. 집에 들어오며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거나, 어른에게 “잘 가”라고 인사하기도 한다. 어른에게는 사소해 보이는 차이지만, 아이에게는 아직 구분되지 않은 채로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중요한 힌트를 준다. 우리가 가르치는 것은 ‘인사’라는 하나의 행동이지만, 아이에게는 그 안에 여러 상황과 관계, 기대가 함께 묶여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사회성을 행동으로 이해하는 데 익숙하다. 인사하기, 차례 지키기, 기다리기, 거절하기, 부탁하기. 그래서 사회성 지도는 대개 ‘어떤 행동을 가르칠 것인가’의 목록으로 시작된다. 아이가 인사를 하지 않거나 차례를 지키지 못하면 연습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반복하면 나아질 것이라 기대한다.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아이에게 사회적 기술을 훈련시키는 일은 그래서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당연한 선택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현장에서 아이들을 보다 보면, 이렇게 배운 행동들이 상황이 달라지는 순간 쉽게 무너지는 장면을 자주 만나게 된다. 상담실에서는 인사를 잘하던 아이가 학교 현관에서는 고개를 숙인 채 지나가고, 역할놀이에서는 차례를 기다리던 아이가 놀이터에서는 갑자기 끼어들며 다툼을 만든다. 인사는 아는데 하지 못하고, 기다리는 방법은 알지만 그 순간에는 쓰지 못한다.


그때부터 질문이 생긴다.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기술일까.


아이들은 사회적 상황을 어른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어른에게는 한 번에 묶여 보이는 장면이 아이에게는 여러 조각으로 흩어져 들어온다. 누가 있는지, 지금 어떤 분위기인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지금 나에게 기대되는 행동이 무엇인지. 이 정보들을 동시에 처리하고 그중에서 중요한 것을 골라 하나의 행동으로 연결하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한 작업이다.


아이들 중 일부는 이 과정에서 자주 막힌다. 중요한 정보와 덜 중요한 정보를 구분하기 어렵고, 한 번 떠올린 해석에서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행동이 늦어지고, 반응이 어색해지고, 알고 있는 행동을 그 순간에는 쓰지 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런 장면이다. 아이가 친구에게 인사를 했는데 상대가 대답하지 않는다. 그 순간 아이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해석은 ‘나를 무시했다’는 생각이다. 그 이후에 들어오는 정보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친구가 다른 친구와 이야기 중이었을 가능성, 주변이 시끄러워서 못 들었을 가능성, 조금 늦게 반응했을 가능성은 아이의 해석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이미 만들어진 하나의 의미가 그 장면 전체를 설명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는 다시 인사하지 않고, 다가가지 않고, 표정을 굳히거나 자리를 피한다. 겉으로 보면 소극적인 행동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상황을 해석한 하나의 결론이 있다.


사회성은 기술이 아니다. 사회성은 해석이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누군가는 여러 가능성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한 가지 의미에 머문다. 어떤 아이는 분위기를 읽고, 어떤 아이는 눈앞의 한 단서에만 집중한다. 누군가는 상황을 넓게 읽고, 누군가는 한 조각 정보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같은 상황을 보고도 아이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그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차이가 행동의 차이로 드러난다.


그래서 사회성을 행동의 목록으로만 다루면 우리는 늘 결과만 보게 된다. 인사를 했는지, 기다렸는지, 차례를 지켰는지. 그러나 사회성을 인지적 해석의 과정으로 보면 우리는 그 행동이 만들어지기 전의 구조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이 아이는 무엇을 먼저 보았을까. 어디에서 의미를 단정했을까. 무엇을 놓쳤을까.


질문은 아이를 덜 판단하게 만들고, 행동을 덜 비판하게 만든다. 대신 아이의 이해를 넓히는 쪽으로 시선을 옮기게 한다. 사회성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장면을 읽는 힘을 키워가는 방향으로.


상황, 의도, 가능성을 읽는 힘을 키워갈 때, 그때 비로소 행동은 따라온다.



덧말: 이 장에서 사용한 ‘사회성은 해석이다’라는 관점은 사회적 행동을 단순한 기술 습득의 결과로 보기보다,상황을 인식하고 의미를 구성하는 인지적 해석 과정의 산물로 이해하는 입장에 기반한다.

특히 사회적 행동의 차이를 성격이나 기질의 문제로 환원하기보다, 사회적 단서를 선택하고 해석하는 인지적 경로의 차이로 설명하려는 관점에 이론적 근거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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