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흩어집니다. 누군가는 “뭐야 뭐야?” 하며 이미 하고 있는 놀이 속으로 들어가고, 누군가는 다른 친구를 찾아 자리를 옮깁니다. 그렇게 장면은 금방 흘러갑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는 그 자리에서 한 번 멈춥니다. “왜 어제처럼 나랑 안 놀지…” 그 생각이 마음에 남습니다. 겉으로 보면 그 아이도 그냥 지나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괜히 다른 걸 하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움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하나의 해석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생각은 그날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음 날에도 비슷한 장면이 생기면 “어제도 그랬는데…”라는 생각이 붙습니다. 장면은 비슷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조금씩 더 확신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같은 상황을 보면서도 어떤 아이는 그대로 지나치고, 어떤 아이는 다른 친구를 찾아 움직이고, 어떤 아이는 그 생각을 마음에 남겨둡니다. 인지적 유연성의 차이는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납니다.
인지적 유연성이라는 말은 어렵게 들릴 수 있지만, 하나의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가능성을 함께 둘 수 있는 힘이라고 보면 됩니다. 하나의 장면을 하나의 의미로만 붙잡는 것이 아니라, 그 옆에 다른 해석을 놓아둘 수 있는 상태입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이의 행동은 그 앞에 있는 해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나를 안 불렀다”는 장면이 “나랑 안 놀려고 한다”로 이어지면, 그다음 행동도 그 해석을 따라 움직입니다. 그래서 인지적 유연성은 생각을 완전히 바꾸는 능력이라기보다, 그 해석이 하나로 굳어지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힘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이 힘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습니다. 설명을 한 번 들었다고 생기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작은 경험에서 시작됩니다. 같은 장면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경험, 하나의 해석 옆에 다른 가능성을 잠깐이라도 놓아보는 경험, 그리고 그 경험이 사라지지 않고 다시 떠올려지는 과정이 반복될 때 조금씩 만들어집니다.
“다른 친구가 불렀겠지.” “그럴 수도 있지.” 이 짧은 말은 아이의 생각을 없애지 않습니다. 대신 그 생각 옆에 하나를 더 놓아줍니다. 처음에는 옆에 놓여진 생각이 어색하고, 잘 떠오르지 않지만, 같은 장면에서 몇 번이고 다시 만나게 되면 그 생각은 점점 덜 낯설어집니다.
그래서 아이는 어느 순간 아주 짧게 멈추게 됩니다. 예전처럼 바로 결론으로 가기 전에, “그냥 그렇게 된 걸 수도 있지…” 하고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 짧은 멈춤이 바로 인지적 유연성이 만들어지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훈련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지속적인 도움 속에서 자연스럽게 쌓이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처음에는 어른의 질문으로 시작되지만, 같은 경험이 반복되면서 아이의 머릿속에는 다른 길이 하나 더 생깁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가 스스로 그 길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더 적극적으로 만들려고 하기보다, 그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돕습니다. “나랑 왜 안 놀지...” 그 생각이 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이 하루를 다 가져가지 않도록, 다음 행동까지 묶어버리지 않도록, 그 사이에 작은 틈이 생기도록 돕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그 틈이 생기면 아이는 늘 같은 방식으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어떤 날은 그냥 어깨를 으쓱하고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나도 할래” 하며 친구 옆에 가 앉기도 하고, 어떤 날은 잠깐 서 있다가 슬쩍 다가가 보기도 합니다. 그날그날 조금씩 다르게 움직입니다. 그렇게 아이에게 선택이 생깁니다.
이 선택은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설명으로 생기지도 않습니다. 같은 장면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경험, 그 경험이 반복되면서 아이의 머릿속에는 조금씩 다른 길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이것은 훈련이라기보다 지속적인 도움 속에서 자연스럽게 쌓이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완벽하게 달라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저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조금 다르게 움직여보는 경험이 쌓이면 됩니다. 그렇게 아이의 생각은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조금씩 넓어집니다.
그리고 이 힘은 그 순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친구 관계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서도 사람과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의 행동을 고치기보다 아이의 해석이 하나로 굳어지지 않도록 돕습니다. 그 작은 틈이 아이에게는 다른 선택을, 그리고 조금 더 넓은 세상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덧말 : 인지적 유연성은 하나의 해석에 고정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다른 가능성을 함께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사회적 상황에서 아동의 행동은 단서에 대한 해석과 의도 추론을 거쳐 결정되며, 해석이 하나로 고정될수록 반응 역시 경직되기 쉽다. 반대로 여러 해석을 동시에 둘 수 있을 때 정서 반응은 완화되고 행동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이러한 유연성은 설명이나 지시만으로 형성되기보다, 반복적인 재해석 경험과 성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점진적으로 발달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Crick & Dodge, 1994; Diamond,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