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금요일 저녁, 특별한 약속은 없었다. 밀린 집안일을 처리하기에 적당한 날이었다. 개수대를 가득 채운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재활용이 되는 것과 되지 않는 쓰레기들을 분리해서 정리한 후에, 끝으로 종이상자 여러 개를 뜯어서 포개 두었다. 건조대에 널어둔 세탁물들은 얼마나 오래된 것인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손으로 매만져 보았다. 볕 대신 계절의 건조함을 가득 삼킨 수건들은 충분히 말라있었다.
건조대에 걸린 수건을 하나씩 걷었다. 최근에 어떤 행사의 사은품으로 받은 수건은 아무런 장식이 없이 깔끔하다. 나머지 서울 본가로부터 챙겨 온 오래된 수건들은 저마다 이름이 있고 사연이 있다. 서울 어느 구청 구민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수건, 무슨 의미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문양을 가득 새긴 수건들. 그리고 우리 집 오래된 수건. 해진 수건에서 손길이 멈춘다. 처음 걷어 개는 수건도 아니건만, 무미건조한 손놀림이 잠시 멈췄다. 가남물산. 수건 생산공장의 이름이다.
가남물산은 나의 어머니가 지금보다 많이 젊었던 시절에 일한 곳이다. 그리고 이 수건은 IMF가 터지고 나서 어머니가 급여 대신에 받아온 수건이다. 조그만 소기업 근로자의 월급이라는 것이 아무리 박하더라도 수건 한 두 개로 대체될 리는 없었기에 그 시절 우리 가족 작은집엔 수건상자가 방 한 켠에 수북이 쌓이고 있었다. IMF 시기에 생산된 가남물산 수건들은 개성 넘치는 문양을 가득 띠고서 팔려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는 내 주변에 IMF를 삶으로 겪은 사람들보다 근현대사 교과서로 배운 사람들이 많다.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조차도 대부분 잊은 것 같다. IMF에 대한 기억은 자산 역전의 찬스로 변형되어서 감염병의 공포가 한국을 덮쳤을 때 많은 이를 투기의 길로 인도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월급을 대신한 이 애증 어린 물건 덕분에 어릴 적 마음을 조금이나마 지키고 있다. 겨울 냉기에 차갑게 말라버린 수건은 봄볕을 머금은 수건과 달리 거친 편이지만 그 시절 내 어머니의 손결과 닮아서 안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