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디플레이어

SONY CDP NE830

by B급선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요새는 음악을 듣는 시간이 별로 없다. 출퇴근 운전하는 도중에 무언가를 듣긴 하는데 대부분 경제 관련 팟캐스트들이다. 물론 음악을 켜놓을 때도 있지만 가삿말은 스쳐 지나갈 뿐 백색소음처럼 운전을 돕는 보조수단이 되고 만다. 그래서 때로는 일부러 음악을 들으려고 한다. 그리고 일부러 음악을 들을 땐 번거롭게 들으려고 한다. 어떤 행위에 들어가는 수고만큼 돌아오는 만족감이 크기 때문이다. 아이폰의 음원 스트리밍 대신 CD를 꺼내서 구닥다리 휴대용 시디플레이어에 얹는다. 무선 이어폰 대신에 유선 헤드폰을 귀에 꽂고 재생버튼을 누르면 드르륵 CD 읽는 소리가 정겹다. 예전에 듣던 익숙한 멜로디와 함께 잠시 상념에 든다.


고등학생이었던 때부터 이미 CD 플레이어에서 MP3 플레이어로 유행은 변하고 있었다. 나도 코원의 G3라는 MP3P를 가지고 있었지만 CDP가 그렇게도 가지고 싶었다. 왜냐하면 아날로그적인 물성에 대한 낭만이 있었고, 한편으로 기술적인 면에서 MP3P에는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다.


MP3P로 음악을 들으면 트랙이 바뀔 때 아주 잠시 끊김이 발생한다. 이른바 갭(gap)이 발생하는 것이다. 잘 가다가 툭 끊기는,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 그것이 난 참 거슬렸다. 마치 노래방에서 가수가 된 양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어떤 놈이 리모컨을 잘못(또는 일부러) 누르는 바람에 노래가 끊기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CDP에서는 대부분 갭리스(gapless) 기능을 지원하고 있어서 끊김 없이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라이브 앨범이나 컨셉트 앨범처럼 음악가가 의도한 바에 호응하려면 필요한 중요한 기능이다. MP3P를 장만하는데도 몇 달 걸렸는데 다시 용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기어코 구매했다.


살면서 겪는 여러 과정들이 내 바람과는 다른 순간에 단절되면서 갭이 생길 때가 종종 있었다. 기대와 어긋나버리는 관계, 예상보다 더딘 성취, 뜻밖의 행운은 가끔 생긴다. 멀리서 보면 동떨어진 삶의 각 지점들이 어느 순간 연결된 걸 발견할 때도 있다. 매끄럽지 않은 현실을 넉넉히 받아들이는 방법도 있지만, 그래도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난 갭 없이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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