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쉰, 환갑 등 결코 만만치 않은 고비뿐이다. 최근 영포티(young-forty)라는 괴단어가 돌면서 사십 대가 희화화되던데, 포티면 포티지 굳이 영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난 그저 잘 늙고 싶다. 곱게 나이 먹고,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지금보다 어렸던 시절을 미련을 가지고 돌아봐서 뭐 하겠는가. 그냥 나아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난 이십 대엔 넘치는 혈기와 그에 반해 비루한 내 처지가 힘겨웠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갈피를 찾느라 방황한 날도 많았다. 지금 돌아보면 별 것도 아닌 걱정을 그땐 참 많이 했다. 더 방황했어도 좋았을 텐데 아쉽다. 누군가 내게 '이십대로 돌아가지 않을래?' 묻는다면, 난 '생각해 볼게요'라고 답할 것 같다.
그렇다고 뭐, 내 이십 대의 날들이 몹쓸 것 투성은 아니었다. 어떤 순간들은 아직도 해맑은 사진처럼 남아 있다. 나중에 세월이 더 지나서 제 나이도 재깍재깍 셈하지 못하는 때가 온다면 슬플 것이다.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어릴 적 빛나는 날들을 하나 둘 정리하는 게 좋겠다. 오늘은 내 스물셋 어느 날, 종로 3가에서 있었던 일을 적어보려 한다.
그 시절 '피아노 거리' 근처에는 타로, 사주, 궁합 따위를 봐주는 노점상이 많았다. 지금 그들은 대부분 탑골공원 근처로 자리를 옮긴 듯하다. 아무튼 그날 난 데이트를 하기 위해 피아노 거리에 있었다. 선선한 계절. 우린 저녁 먹을 장소를 찾다가 바람도 피할 겸 심심풀이로 사주, 궁합 계열의 노점상 한 곳에 들어갔다. 당시 여자친구는 나와의 궁합이 궁금했고, 난 내 사주란 것이 궁금하다고 했다. 노점 아주머니가 그렇게 하면 비용을 각각 지불해야 한다고 하길래, 그러지 마시고 그럼 주로 여자 것을 봐주되 제 것은 서비스로 가볍게 봐달라고 했다. 거래는 성공했다.
먼저 물어본 것은 여자친구가 궁금했던 우리의 궁합이었다. 친구가 물은 것은 우리 둘 사이의 궁합이었는데 어째 아주머니는 계속 엉뚱한 소리만 했다. 지금 두 사람은 이러저러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당신은 몇 년 뒤에 결혼 운이 있고,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어쩌고 저쩌고 기타 등등. 난 옆에서 재미로 듣다가 은근히 부아가 나서, “일단 저는 아니라는 말이네요?” 했다. “뭐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까지’ 만나고 있으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거지요-”, 라며 아주머니는 누가 봐도 부자연스럽게 대답했다.
화제를 돌리기에 적절했는지 아주머니는 곧 나에게 질문했다. 뭘 봐드릴까요?
난, 내가 몇 살까지 살 게 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노점 하면서 처음 받는 질문이라며, 그런 것이 왜 궁금하냐고 되물었다. 그때의 난 앞으로의 내 삶이 참 궁금했던 것 같다. 어떻게 살지, 나중에 뭘 해 먹고살지, 뭘 먹고는 살고 있을지, 언제까지 살지 등등. 아주머니는 잘 먹고 잘 살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서비스라고 너무 대충 봐주는 것 아니십니까 따졌더니, 중년 이후로 잘 풀릴 것이라고 했다. 거기에 덧붙여 내 과거(라고 해봤자 스물몇 해 된 녀석에 대해서 무슨 할 말이 있었을까)를 분석해 줬고 몇 번쯤 흠칫 놀란 순간도 있었다. 도합 4만 원. 이게 싼 거야? 노점을 나서며 우리 둘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아주머니가 신통방통한 사람이었는지 어쨌는지는 이제 알 도리가 없으나, 당시 만나던 친구와는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헤어졌다. 그리고 난 지금 뭔가를 해 먹고살고 있긴 하다.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마흔이 되었다. 중년이라기에 부족하지 않은 나이다. 영하지도 않고 아마도 중년이다. 젊은 건 그것대로 소중하게 간직했고 나이 듦도 긍정하고 있다. 노점상에서 들은 내 수명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다. 이제 올해부터 잘 풀릴 일만 남은 것이다.
*** '피아노 거리'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90년대 이후 출생자일 가능성이 높고, 젊다 할 수 있는 나이이므로 소소한 축하를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