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통과하는 일 - 박소령
첫 회사를 7년 동안 다녔고, 그 끝에 사내벤처의 바지 사장이 되었었다. 인스타그램 채널을 하나 키우고, 커머스를 돌리며, 에이전시 대행도 드문드문 맡았다. 회사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라는 말이 스타트업에서는 언어 그대로 적용됐다. 회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된다. 갓 창업한 회사의 특성이었다. 신기하게도 약 2년에 한 번씩 내 손에 주어지는 일은 0 to 1에 가까웠다. 브랜드를 만들고 운영하는 일. 한창 와디즈가 성행했던 시절, 크라우드펀딩 졸업을 마친 신규 브랜드가 유통 업계에 본격적으로 팔리기 전 중간 역할을 하는 커머스. 그것이 대표님이 원하시던 일이었다. 막상 시작하고보니 예측했던 것과 시장이 돌아가지는 않았다. 이런 저런 시도를 하다가, 커머스를 한다면 우리 팀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다른 방향으로 커머스를 틀었다. 대표의 니즈에 맞춘 사업에서 팀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붙인다는 것. 그땐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규모의 경제도 잘 이해하지 못했던 초보 리더였다. 그저 브랜딩/마케팅 에이전시에서 꿈에 젖어 미래 가치의 무엇을 담보로 이 일을 벌리는지 모르는 채 그렇게 하나둘 일을 벌려갔던 것이다.
입사 6년 반 후, 나는 법적으로 정말 대표가 되어 있었다. 커머스로 정부지원사업을 따냈고, 데스크테리어 씬에서 커뮤니티에 도전하며 인스타그램 채널을 열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마지막 발악에 가까웠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팀을, 회사를 지탱하던 얇은 나침반이 점점 끝을 향해가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서로에 대한 고마움, 아쉬움, 나 자신에 대한 열받음, 후회들. 그럼에도 한 번 더 해보자고, 정부지원사업을 따내고 후회 없이 마지막 스퍼트를 달렸던 6개월. 그 6개월은 함께 일했던 디자이너가 가장 친한 동료가 될 만큼, 최선을 다했다. 분명 그 7년 간 나는 많이 성장도 했지만, 같은 자리에 멈춘 채 나를 갉아먹기도 했다. 수도 없이 실패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땐 일하는 우리 모두가 '무엇을 몰랐는지' '어떻게 사람을 써야 하는지' '무엇을 NO 해야 하는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우선순위는 무엇이었는지', 왜 '매출은 최대로, 비용은 최소로'라는 말이 전해져 오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처음 회사에 들어올 때 매료되었던 그 비전/미션에 심취해 너무 현실을 보지 못했다. 생각도 좁았다. 그 때의 난 희생한다, 힘들다, 이게 맞다.. 뭐 그런 단어들을 뱉었고.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해왔지만 무엇을 모르고, 무엇을 혁신하며 일해야 하는지 몰랐다.
2026년 3월, 이 책을 읽고 자영님과 최근에 진행한 내러티브 100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위에 잔뜩 적은 나의 실패의 순간들 속에 사실은 도전, 모험, 행복, 낭만,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확신 등 긍정적인 단어들도 담겨 있었다. 나 스스로 내가 일했던 순간들에 대해 진하게 회고도 했지만, 그 시간들에 대해 '고마움'이란 감정을 충분히 전해주지 못했던 것 같다. 더 큰 비즈니스 구조를 보지 않고 일했던 결과 같아서 내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누구든 '실패'를 한다. '대표'도 마찬가지. 20대 후반, 내가 원하는 일로 하고 싶다는 욕망과 함께 미군부대 안에서의 워홀 생활을 뿌리치고 나온 것도 나였다. 지금 돌아보면, 회사 안에서 믿고 따를 수 있는 대표와 동료를 두고 일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차가운 세상에 나와보니, 내가 있던 곳은 업무 동아리였구나란 생각이 들 정도니까.
여기까지가 나의 첫 회사 이야기.
두 번째 회사인 '가구 브랜드'로 넘어와 요즘은 아주 치열하고 빠르게 일하는 환경에 있다. 비슷하게 0 to 1 기획 업무도 하고 있지만, 매출이 다르다. 깨닫는다. 숫자를 만들어내는 영역에 왜 영업팀과 그로스팀이 붙어야 하는지.
더 길어지기 전에 나의 회사 생활에서 '실패'를 통과했던 일에 대해 갈무리를 짓는다. 사실 더 복잡한 감정들이 많지만, 이렇게 짧게 나의 일에 대한 회고를 남길 때마다 마음이 뭉클해진다.
'실패를 통과하는 일'이란 책에 나온 박소령 대표님의 언어를 보며, 지난 첫 회사 대표님의 뒷모습이 떠올라서 울 것 같았다. 머릿 속에 쇼룸 100개를 이미 열고 있다는 패기 넘치는 현 대표님도 떠오른다. 창업 과정을 거치고 있는 가장 가까운 친구, 동료도 생각난다. 그리고 바지 사장이지만, 월급과 4대 보험을 이체하며 대표가 어떤 자리인지 흐릿하게 실감했던 나의 괴로웠던 회사와의 마지막 이별의 순간도 저릿하게 스친다.
이 책을 3일 동안 읽으며 연필은 몇 번이고 닳았다. 얼마나 흡입력 있게 읽었는지. 과연 이 책에 '고통'과 '눈물'이란 단어는 몇 번이나 쓰인 걸까. 이 시간을 어떻게 통과해오신 걸까. 그리고 기록으로 한 번 더 남기며, 웃고 울고 치열했던 순간을 얼마나 떠올렸을까. 그런 감정적인 공감이 선행 되어 흡입력 있게 읽히면서도, 한편으론 또 한 페이지 넘겼을 때 또 어떤 실패를 마주했을지. 마지막으로 남은 팀원들과의 시간을 가늠해보며.. 한 장 한 장 읽었다.
읽고 느낀 점은 타이틀 그대로다.
'나의 실패는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인 누군가는 당연히 '실패'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실패를 통과하는 과정이야 말로 흔적으로 남아 나를 키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흔한 표현이 실패의 시간을 진하게 경험한 사람에게는,, "아 진짜 엄마구나" 싶을 정도로 구석구석 교훈을 준다. 과정은 쉽지 않지만, 모두의 실패는 쓰여져야 마땅하고, 피할 수 없다면 회피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통과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실패를 통과하는 태도도, 그 실패를 딛고 실패를 어떻게 해석해서 거름 삼아 나아가는가도 결국 나의 몫임을 기억하자.
P.S
'퍼블리'는 2030 사이에서 꽤 오랫동안 랜선 사수 콘텐츠로 유명했다. 이전 회사에서도 모두가 사수 없이 일하는 환경이었는데 매주 퍼블리에서 좋았던 글을 종종 팀원들과 쉐어하는 문화가 있었다. 말 그대로 랜선 사수가 되어주었던 프로덕트였다. 그리고 몇 년 후, 퍼블리가 매각되었단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콘텐츠 사업도 이제 사양 사업이 된 것인가. 그런 정도로 대충 넘어갔다. 이면에 이렇게 혹독하게 콘텐츠 미디어 사업을 키우셨을 줄이야..창업을 준비하게 되거나, 창업 전에 있는 친구들에게 이 책을 필수로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