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를 만든 결정적 순간

중 하나

by 하모니블렌더

23-24살쯤.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고 돌아와 방문을 닫고 울었던 적이 있다. 엉엉 울었는지, 조용히 울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 때의 감정만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초등학교 동창들과 다시 연락을 하고, 점점 자주 만나게 되었던 때였는데 10년 만에 만나 서로의 젊음을 어떻게 보내는지 시간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때 만났던 한 친구는 20대 시절을 최종 보스처럼 지내고 있는 느낌이었다. 유럽 유학파, 호텔리어, 대기업 임원 분들을 클라이언트로 두며 제너럴 매니저를 하기까지. 20대 중반에 이뤘다고 보기엔 너무 오버스펙인 인생을 살고 있었다.


아마 그때 내가 흘린 눈물은 분명 우린 비슷한 동네에서 시작했는데, 난 왜 이 모양일까. 그런 푸념에 가까웠을 것인데.. 그땐 그게 너무 너무 크게 느껴졌다. 격차. 격차를 느꼈던 것 같다. 20대 대학생활은 너나 할 것 없이 대외활동을 바쁘게 하고 있었는데,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 정도의 고민을 심각하게 하고는 있지만 그때 당시엔 '좋아하는 일이 뭘까. 잘 할 수 있는 일이 뭘까.'에 대해 과몰입해서 이것저것 도전은 해보는데 미래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시기라 뭐라도 손에 잡아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근데 그 바쁨이 수많은 대학생이 걷는 길 중 하나일 뿐이고.


자기만의 길을 완전히 다르게 걷는. 그것도 글로벌하게 이미 걷고 있는 친구를 보며 질투가 났다. 어떻게 하면 원하는 길을 탁탁 아는 거지? 저런 기회를 쟨 어떻게 얻은 거지? 그런 귀여운 선망과 질투를 하며 그 친구와 서서히 친해졌던 것 같다. 이후, 나는 그 친구와 많이 친해졌고, 그 영향력이 내 삶에 전반에 퍼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영어학원을 1년간 다녀보기로 결정한 것도, 캐나다에 가기로 결정한 것도, 남들과 똑같이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다 그 친구 덕이었다. 그 친구는 질투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사실상 내가 정말 닮고 싶고, 존경하는 대상이 되었다. 이후 첫 회사생활을 작은 스타트업에서 시작하게 된 것도 그 친구가 채용 공고를 보며 너에게 딱 맞는 자리 같다는 추천으로 가게 됐다. 그 친구 덕에 나는 아직까지 연락하는 인도네시안 찐친이 생겼고, 우리 집에 중국인 친구가 내가 캐나다에 가있는 동안 우리 집에서 가족과 함께 홈스테이를 하기도 했다. 엄마아빠는 아직도 그 중국인 친구를 너무 그리워한다.


그 친구를 통해 배웠던 건 개척정신. 살고싶은 삶을 저벅저벅 걸어들어가 사는 법. 어릴 때의 나는 너무 소심해서 아마도 그 개척정신이 제일 부러웠고, 배우고 싶었던 것 같다. '같이 해볼래?' 그 소리에는 늘 해도 될까에 대한 두려움이 같이 심겨지기도 했지만, '그래. 해보자'했을 땐 예상치 못한 경험들이 내 안에 내재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 외에도 나에게 영향을 끼친 어른들이 많아졌다. 그때 그 시절, 나에게 어른은 그 친구였다. 대범함, 배려, 도움, 몰입, 일에 대한 태도, 전문성..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 어깨 너머 이 단어가 뭘 의미하는지 생생하게 배웠던 것 같다.


결국 누구 옆에 내가 있냐. 친구 5명을 보면 나를 알 수 있다고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본다. 이 글의 결론을 뭐라고 내야할까. 그 친구는 나랑 너무 다른 성향이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 내 주변에도 그 친구와 비슷한 성향의 리더 또는 친구가 꽤 있다. 직설적으로 말하고, 삶을 거침 없이 살고, 끝까지 달리려고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이 친구와 나눈 우정 때문이지 않을까. 하나 덧붙이자면, 용기를 내야 할 때 낼 줄 아는 법도 배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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