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어지럽다.
<안녕하세요? 이름은 김민재. 생일은 10월 6일이고요. 9살이고 2학년 1반이에요. 1시 40분에 태권도에 가야 합니다. 저를 보내주세요. 여기 있는 선생님 저를 보내주세요. 텀블링할 수 있나요? 못한다고요? 어쨌든 1시 40분에 저는 가야 합니다.>
요가 수업을 하려고 학교 안 꿈나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화이트보드에 열심히 쓰는 아이, 큰 소리로 그걸 읽는 아이 그리고 친구의 허리를 잡고 뱅글뱅글 도는 아이까지 아홉 살 남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놀고 있었다.
꿈나무실 담당 선생님께서 요가 선생님이 오셨다고 이야기했을 때, 다른 친구들은 인사했다. 하지만 얼굴이 하얗고, 파마머리, 마른 편이나 힘이 있어 보이고, 날렵해 보이는 화이트보드에 열심히 쓰고 있는 그 친구는 달랐다.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저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안녕?” 인사를 건네며 그 녀석에 다가갔다. 이름은 김민재. 태권도를 좋아하는 아이. 1시 40분에 가고 싶은 아이. 요가 수업은 2시 20분에 끝나는데.
수업을 하는 내내 민재는 얘기했다.
“네? 마음을 보라고요? 안 보이는데요?”
“이러다가 다리 찢어지는 거 아니에요?”
“선생님 태권도할 줄 알아요? 무슨 띠예요? 저는 부부 태권도 다녀요.”라며 쉴 새 없이 말하고 또 말했다. 1시 40분까지는 태권도에 가야 한다며 보내달라던 민재의 목소리는 1시 40분이 넘어가자 다급해졌다. “선생님 1시 40분 넘었는데요. 갈게요. 갈게요.” 마음이 온통 태권도에 가 있다는 사실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2시쯤 되니 “실패!”를 외치며 매트에 몸을 묻고 마음대로 움직였다.
시끌벅적한 아이들, 유독 수다스러운 민재 때문에 정신없이 첫 수업이 지났다.
힘들었다. 그런데 집에 오는 길에 자꾸 생각났다. 어쩐지 이 아이 덕분에 더 재미있는 수업이 될 수도 있겠다고.
<요가, 인사는 나마스텔라, 인도에서 시작됨. 숨 쉬라고? 하악하악. 1시 40분에 태권도 가야 함>
한 주가 지나고 교실에 들어서자 이렇게 쓰여있었다. '나마스텔라라니.' 인도의 인사말인 나마스테를 두고 하는 말이다. 피식 웃음이 났다.
요가 그림책을 읽어주었고, 같이 따라 해 보았다. 민재와 아이들은 자랑꾼들이다. 힘과 유연함을 뽐내려고 부단히 애썼다. 꼭 오버해서 문제지만
그렇게 2주 차, 3주 차 수업이 지났다. 시끌벅적 요가 수업. 마치면 목이 아픈 9세 남탕 요가 수업. 계속 말하고 산만하게 움직이는 민재가 있는 요가 수업. 다행인 건 열 살 아들을 둔 덕분인지 이 아이들이 보고 싶고 진 빠지게 만드는 민재가 밉지 않았다. 그렇게 수업 4주 차가 되던 날.
민재가 이상하다. 나한테 너무 관심이 많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요가에 관심이 많다. 좋아하는 태권도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오늘 뭐 배울 거예요?”, “저 봐봐요. 봐요. 이거 할 수 있어요.”라며 가르쳐 주지도 않은 누운 활자세 동작을 보여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야! 조용히 해! 선생님 말씀하시잖아!” 너무 놀라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소 분위기 메이커인 민재의 말에 장난치던 친구들도 민재의 말을 들어주었다.
그날의 수업은 단단하고 고요했다.
즐겁게 차분했다.
호흡에 집중해보자고 했다.
연꽃 자세
#연꽃 자세
• 두 다리를 양반다리처럼 꼬아 앉는 가부좌를 취한다.
• 척추를 곧게 세우고 양 손등을 무릎 위에 얹어둔다.
• 어깨에 힘을 빼고 눈을 지그시 감는다.
•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코로 숨을 내쉰다.
연꽃 자세에서 요기는 골반을 통해 자세를 고정시킨다. 척추는 연꽃 줄기처럼 유연하면서도 곧다. 천 개의 꽃잎을 가진 연꽃은 머리의 정상, 즉 정수리를 의미한다. 막 피어나기 시작한, 혹은 활짝 핀 연꽃은 씨앗에 담긴 가능성의 실현, 존재의 가능성의 실현을 상징한다. 요가 수행의 길에 접어든 이들 중 연꽃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싶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출처 : 요가, 몸으로 신화를 그리다)
그날의 민재
연꽃 자세를 하며 숨을 쉬고 있다. 민재의 이마 그리고 미간이 편안하고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의 입술은 부드럽게 다물어 있었다. 그렇게 민재는 단단히 연꽃을 피어 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너.
아름답다.
*사진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