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멈춰 섰다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by 느린 아빠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통보받았다.

생각보다 담담하게 나왔지만, 안에서는 무너지고 있었다.

햇빛이 너무 맑아서, 그날이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날은 평소보다 조금 조용했다.


회의실로 불려갔고, 자리에 앉자마자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인력 조정 대상에 포함되셨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 말을 듣고 나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 자리를 나왔다.



밖으로 나왔는데, 햇빛이 눈부셨다.
아이러니하게도 날씨는 참 맑았다.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가방도 풀지 않은 채, 그대로 멍하니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아내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한번 들었다가, 다시 숙였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날 밤은 이상하리만큼 길었다.
잠은 오지 않았고, 생각은 쉬지 않았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다시 일할 수 있을까.
지금 가진 걸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며칠 후, 명절이 찾아왔다.
아이들과 함께 친가에 갔다.
사람들은 다정했고, 음식은 여전했다.


그런데 나만 자꾸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형이 내게 물었다.
“요즘 일은 어때?”


나는 물을 들이키며,
“그럭저럭.”이라고 답했다.
그게 최선이었다.



아무도 모른다.
우리 집 통장 잔고가 지금 얼마인지,
월세 대신 대출 이자가 나가고 있다는 걸,
며칠 전 학원비 결제 문자를 받고
한참을 핸드폰만 바라봤다는 걸.



아이들은 집에 아빠가 있으니 좋다고 말한다.
아침마다 함께 먹는 밥이 좋다고도 했다.


나는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아빠로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는
자책이 따라왔다.



하루는 너무 길고,
밤은 더 무겁다.


시간이 많아진 줄 알았는데,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나는 괜찮은 가장인가?’
이 질문이 자꾸 마음속을 맴돈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뭘 해야 할지는 몰랐다.


거창한 변화는 없었고,
계획 같은 것도 세워지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아주 작게,
아주 조용히 나를 붙잡아보려 했다.



뭘 해야 할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하루,
나는 이대로
버텨본다.


오늘 하루를 이렇게 지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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