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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Reader Nov 18. 2023

“살아봐야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책감상 l 모순_양귀자

1998년에 첫 출간된 책이나 여전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책이다. 즐겨 듣는 <편집자 K> 유튜브 방송에서 진행한 ‘구독자가 뽑은 내 인생 장편소설’ 1위에 뽑힌 소설이다. 공동 2위 중 하나인 ‘토지’를 제외하곤 나머지 일곱 권의 책들은 나도 다 읽고 좋아한 소설이었다. <편집자 K>의 구독자들과 취향이 비슷한 것 같은데 1위로 뽑힌 소설을 모르고 있어서 궁금해서라도 읽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사놓고 잠들기 전 누워서 읽는 책으로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하고 어느 날 문득 주인공 안진진이 아침에 일어나 이렇게 외친다. 아 하고 뭔가 아련한 것이 느껴진 건 나도 분명 이런 비슷한 외침을 안진진의 나이 이십 대에 외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소설도 읽는 시기마다 느껴지는 감동이 다 다른데 특히 성장소설류는 더 그렇다. 이십 대에 읽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그때 읽었더라면 아마도 내 인생소설이 되었을지도.


내 앞에 펼쳐진 거대하게만 보였던 삶 앞에 압도당해 어쩌지 못하고 주눅 들어 있었다. 젊기 때문에 그랬을까. 앞이 안 보이는 불투명한 미래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황하던 그런 나의 모습을 소설 속에서 만나는 일은 위안이 된다. 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뒤섞여 뱅뱅 맴돌기만 하고 나오지 못하는 생각과 말들을 작가가 주인공의 입을 빌려 고스란히 다 해주는 문장을 읽는 것은 달콤한 위로이고 동지애를 유발한다. 하지만 버겁고 어쩔 줄 모르던 미래를 다 살아내고 나면 문장이 아니고 몸으로 견디어 낸 자의 여유가 생긴다. 허무하리 만치 별거 아닌 인생에 애잔한 마음으로 소설 속에 뛰어들어 파묻히는 게 아니라 바라보는 이의 자세로 읽을 수 있어서 그것도 좋다. 안진진의 이야기가 그랬다.


부모도 구별 못할 만큼 똑같이 생긴 일란성쌍둥이 어머니와 이모는 성격도 똑같고 옷도 똑같이 입고 심지어 성적도 똑같을 정도로 한 사람분의 삶을 살았다. 결혼까지 같은 날 했지만 그때부터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정반대의 삶을 살게 된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가정적이나 심심하기 그지없는 남편과 사는 이모, 술만 마시면 집안의 모든 것을 때려 부수는 남편, 가출을 상습적으로 해서 집안의 경제까지 책임져야 하는 엄마. 이 쌍둥이들의 아주 다른 삶은 나이 든 그들의 얼굴조차 더 이상 닮지 않게 만들었다. 누가 봐도 더 힘든 삶을 사는 언니의 딸 안진진의 시선에서 이야기는 그려진다. ‘안진진’ 이름부터 모순이다. 원래는 참 ‘진’ 외자 이름이었는데 출생신고하러 간 아버지가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진진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런 이름을 한 번만 쓰면 무겁다고. 성이 ‘안’이라는 걸 미처 생각 못했다. 안진진. 참되지 않다. 두 번이나. 아이러니하게도 소설 속 인물들은 진진이를 부를 때 꼭 성까지 붙여 안진진 하고 부른다.


장편소설을 읽는 느낌이 전혀 안 들고 긴 단편 소설 같이 팽팽한 긴장감이 처음부터 끝까지 압도적이다. 필사하고 싶은 아포리즘 가득한 문장들이 가득한 이 소설을 끝까지 다 읽고 나면 작가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해진다. 두 개의 상반된 인생을 보여주기 위해 쌍둥이를 설정하고 안진진 역시 두 남자를 두고 누구를 선택할지 계속 고민하였듯 우리 인생의 이면을 생각해보게 한다. 단 한 번밖에 살 수없지만 이 삶 속에 가득한 다른 이면을 보는 눈이 뜨인다. 삶 속에 늘 존재하는 죽음.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고 정신과 육체는 따로 떼어져 생각할 수 없고, 극과 극이 함께 공존한다는 게 모순투성이의 우리의 삶이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행복한 삶 속의 주인공인 이모는 스스로는 가장 불행한 자 일수 있고 가장 처절하고 불행한 삶의 주인공인 엄마의 삶에도 행복이 존재한다. 어느 쪽이든 완벽히 한쪽만을 가질 수 없음이라는 평범항 진리를 마주하고 책을 덮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 해서 그리 크게 기뻐할 것도 아니며 나쁜 일도 크게 슬퍼하거나 좌절할 필요 없음을 깨달아 가는 일인 것 같다.. 어차피 다 지나갈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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