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감상 I 인생의 역사_신형철
원래 책 감상은 다 읽고 쓰는 게 나의 원칙인데 이 책은 시작하며 한 마디 하고 싶다. 다른 신형철의 책이 다 그렇듯이 이 책도 아주 오래오래 조금씩 읽게 될 것 같다. 내용의 깊이와 밀도 때문에 후루룩 읽어 낼 수가 없다. 음미하며 조금씩 한 문장 한 문장 줄 긋고 손가락 짚어가며 읽어야 한다. 그래도 내게는 많이 어려워 멈추고 한참을 곱씹어 생각을 해야 한다.
신형철이 말하는 좋은 글은 자기 생각과 감정을 정확한, 대체 불가능한 단어로 표현한 글이라고 한다. 그의 글도 그렇다. 그 정확한 단어 하나하나를 읽다 보면 숨을 참고 읽고 있는 듯하다. 한 번씩 큰 숨을 몰아쉬어야 한다.
특히 이 책의 글들은 문학의 장르 중 그야말로 다쳐내고 다 버리고 이것이 아니면 안 되는 그 단 하나의 단어들로만 쓰인 ‘시’을 다루고 있어서 그 빽빽한 밀도에 목이 졸리고 그 깊이에 빠져 죽을 것 같다. 그런데도 이런 숨 막힘은 전혀 고통스러운 게 아니고 즐거운 일이다. 마치 마조히스트들이 자신을 학대하며 성적 쾌감을 얻듯 이런 문장들을 읽으면 희열을 느낀다.
책을 읽으며 이어지는 누군가와(작가) 그의 사고와 연결되는 그 무한한 공감대를 나는 사랑한다. 신형철의 글을 읽거나 강의를 들으면 이 분은 틀림없이 내 속에 한번 들어갔다 나왔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떨 땐 공감을 넘어서 나보다 나를 더 잘 알아는 것 같다. 단지 책을 읽음으로 뒤엉켰던 생각들이 말끔히 정리가 되고 마음이 깨끗이 정화됨을 경험하는데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한겨레에 한 해 동안 연재한 ‘신형철의 격주 시화’를 정리하여 묶은 책이다. 책머리에 이 책을 서둘어 정리하게 만든 사람이 그해 초에 태어난 첫아들이라고 적혀있다. 아마도 첫돌 선물로 마음에 두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한용운의 “님만이 님이 아니라 기룬 (그리운) 것은 다 님이다” 에서 따온 신기룬이다.
인생은 불쌍한 것이지만 그래서 고귀한 것이라고 (못) 말하는 아주 작은 사람, 그런 그가 기루어서 나는 이 책을 엮는다. p9
프롤로그 ‘조심,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에 대하여’에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를 소개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차이 그리고 아이(즉 사랑을 필요로 하는)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 어떠해야 할지 이야기한다. 이십 년 전 내가 큰 딸을 막 출산 했을 때 들었던 그 마음(모든 부모의 마음이려나)이라 와락 눈물이 났다. 이런 시도 알지 못했고 그 마음을 글로 써놓지도 못했지만 ‘나는 이제 내 맘대로 죽지도 못하겠구나, 이 아이가 커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산후조리를 해주고 그 아이가 다 클 때까지 꼭 살아 버텨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아이를 사랑하지만 아이는 나를 필요로 한다.
나는 조심할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각오할 것이다. 빗방울조차도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죽지 않을게. 죽어도 죽지 않을게. p26
나는 신기룬씨가 자라서 이 책을 펼쳐 읽는 순간을 상상해 본다.
이런 부모의 마음을, 아버지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로 아들을 키울 것 인지 보지 않아도 안다. 이런 마음으로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와 긴 긴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베르톨트 브레히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