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프로젝트, 그곳에 담긴 사랑

by 서하

대학교 입학할 때, 지방에서 올라오는 입학생들은 학교 기숙사를 신청할 수 있었다. 부산 출신인 나 역시 당연히 기숙사만을 믿고 당첨을 기다렸는데, 웬걸. 우리 과 친구들은 다 붙었는데 나만 탈락 소식을 받았다. 꼭 이런 뽑기 운은 지지리도 없더라.


급하게 살 집을 알아봐야 했다. 부모님은 학교 바로 앞은 술판이 벌어지기 십상이라며, 적당히 거리가 있으면서도 안전한 동네를 제안하셨다. 그렇게 찾아낸 곳이 아현과 공덕 사이의 애오개라는 동네였다. 지하철역 대로변의 오피스텔이었는데, 1980년대에 지어진 낡은 빌딩이라 시세가 굉장히 저렴했다. 4년 내내 월세를 내느라 돈을 버리느니 작은 원룸을 사서 지내는 게 낫겠다 싶어, 대학 시절 나의 요새가 될 공간을 마련했다. 낡았어도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니 혼자 지내기엔 충분히 깨끗하고 아늑했다.


진짜 프로젝트는 졸업을 앞두고 이 집을 정리하기로 하면서 시작되었다. 문제는 집이 너무 낡아 매물이 잘 안 나간다는 것이었다. 부동산에서는 창문부터 화장실까지 싹 수리해야 집이 팔린다며 이방과 같은 방들은 인테리어 업체에 맡기면 보통 1,000만 원은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직접 개입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샷시나 화장실처럼 전문가가 필요한 공정은 따로 부르고, 나머지는 셀프로 진행하기로 했다. 견적을 뽑아보니 총 500만 원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한 달간의 원룸 수리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현관 타일을 직접 깔고 페인트를 칠했다. 부엌 타일과 수전을 교체하고, 화장실 집기들은 인터넷으로 주문해 전문가에게 설치만 요청했다. 답답했던 작은 창문은 큰 창으로 교체해 개방감을 줬고, 그 아래 남는 공간엔 수납장을 짜 넣었다. 마지막 도배 후 걸레받이까지 내 손으로 직접 붙이고 나니, 한 달 만에 집이 완전히 탈바꿈했다. 내 대학 시절 그 모든 기쁨과 회환을 함께 한 정든 집이 좋은 주인을 만나길 기도하면서 수리한 덕분이었을까. 신기하게도 완성 직후 바로 계약이 성사되었다. 500만 원을 아꼈다는 뿌듯함보다, 주인이 직접 개입해 조율하면 합리적인 가격으로 원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귀중한 배움을 얻은 시간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는 한옥 개조였다. 카페로 만들어보자는 다짐으로 오래된 한옥을 1년에 걸쳐 수리했는데 작업자들과 세세하게 조율하는 과정이 얼마나 큰 인내를 요구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인테리어 업체에 통째로 맡기지 않았기에 시간은 더 걸렸지만, 덕분에 엄마와 나의 감성이 고스란히 녹아든 공간이 탄생했다. 지금은 가장 애착이 가는 공간이자, 편안한 시골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듯한 따뜻한 우리만의 색채가 담긴 요새가 되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공간을 고치고 꾸미는 일에 자신감과 흥미가 생겼다. 일상에서 공간이 주는 에너지가 얼마나 큰지 알기에 늘 인테리어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마당에 비해 집 내부가 너무 좁고 답답한 부모님 댁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낡은 화장실과 주방, 그리고 집을 더 좁게 만드는 큰 베란다까지... 사실 그곳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아빠가 건강을 회복하며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치유의 거점'이었기에 좀 더 쾌적하고 따뜻한 공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아빠가 건강 회복을 위해 잠시 집을 비우게 되면서 3주의 시간이 생겼다. 나는 이때다 싶어 서울에서 일하면서도 원격 수리를 감행했다. 몸은 타지에 있었지만 내 마음은 부모님 집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었다. 밤새 후기를 읽으며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섭외했고, 화장실 전체 수리부터 거실 확장까지 꼼꼼하게 계획을 세웠다.

아빠가 가장 좋아하시는 마당 정원을 집 안에서도 마음껏 누리실 수 있도록, 거실 벽을 틔워 커다란 통창을 달았다. 작은 집이 몰라보게 넓어지며 쏟아지는 햇살을 보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모든 자재는 내가 직접 밤을 새워가며 주문했다. 수전 하나, 타일 한 장에도 아빠의 발걸음이 편안하길, 엄마의 손길이 닿는 곳이 아름답길 바라는 기도를 담았다. 전문가분들과 수백 번의 문자와 전화를 주고받으며 쏟아부은 나의 에너지는 단순히 수리가 아니라 간절한 '사랑' 그 자체였다.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만 발휘되는 나의 슈퍼파워. 비용은 부모님이 주셔서 내가 선물로 드렸다고 할 수 없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을 부모님께 드렸다. 이제 아빠의 새로운 놀이터가 된 그 집에서, 내가 심어놓은 사랑의 기운을 받으며 두 분이 항상 건강하게, 쾌적하게 지내시길 바랄 뿐이다.


이 세 번의 프로젝트를 거치며 나는 확신했다. 내게 공간을 수리하는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낡고 지친 장소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이라는 것을 말이다. 타일 한 장의 무늬를 고민하고, 창의 크기를 맞추는 모든 과정은 그곳에 머물 사람의 '내일'을 설계하는 일이었다.


사실 나는 이 일을 직업적인 전문가로서 해내겠다는 거창한 포부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앞으로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내가 머물게 될 소중한 공간을 위해 내 마음을 기꺼이 내어주고 싶을 뿐이다. 낡은 구석을 닦아내고 내 힘으로 공간을 고쳐가는 과정 속에서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사랑의 에너지를 그들이 느끼면서 편안하길 바란다.


내가 매만진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이 나와 같이 깊은 힐링을 얻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치유의 힘을 얻는 것. 그것이 내가 공간을 고치며 꿈꾸는 진짜 목적이다. 공간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는 믿음, 그 기적이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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