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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선 Apr 05. 2022

회사에서 까치산역처럼 사는 사람





2호선 노선도


2022년 4월을 기해 차장이 되었다. 집에도 안 가고 맨날맨날 야근하고 일 많이하는 미혼 / 여자 / 차장이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어떤 대명사라는 것을 모른 채 나는 대비도 없이 차장'되어졌다'. 원래 나는 세상 물정과 남의 시선에 큰 관심이 없다... 나 자신의 문제로도 사는 게 넘 벅차서 계절이 가는 것도 시간이 가는 것도 잘 몰랐다. 정신병에 걸려있거나 수영을 하거나 술을 먹거나 누워서 책을 보다보니 시간이 흘러흘러 책팔이 13년차가 되고 말았네... 아이고


입사 때부터 문학 담당 MD 책팔이를 했다.  해엔 소설 전체를 팔았고, 2011년부터 한국문학(소설/)맡아 계속 같은 업무를 한다. 업무 내적인 상황에 대해선 이제  안다. 작년에 벌어진 일을 알고 있고, 재작년에 벌어진 일도 알고 있다. 업무에 있어선 ' 잡는 느낌'(수영에서 말하는) 갖고 있다. 나는 히스토리를 알고 툴을 안다. 충분히 많은 사고를 겪었고 대응을 해보았다. 도저히  문제는   없을  같다는 난해함을, 요즘의 나는 크게 느끼지 않는다.


업무 외적인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해서도 경험이 쌓였다. 발도 굴러봤고 잉잉대기도 했지만 내가 있는 이 역엔 내선순환 열차가 오지 않는다. 오지 않을 열차를 기다리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고 비로소 기다리던 평화를 얻었다. 13년이나 했는데 누군가한테 도와달라는 것도 남 우세스러운 일이다. 내 일의 맥락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아무도 나를 돕지 못한다. 나라는 책팔이가 머무는 외진 까치산역의 역장은 나.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해주지 않고, 나 자신의 안정을 챙길 수 있는 사람 역시 나밖에 없다. 일이 던져지면 처리하는 공식을 아니까 그 공식대로 뚝딱뚝딱 해내는 것이다. 나는 이제 개입을 원하지 않는다. 조언도 도움도 없이 그냥 모든 걸 혼자 한다. 간이역 역장처럼 뚝딱뚝딱…


기나긴 재택근무와 비대면 시국을 거치며 업무 바깥의 것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어 까치산역적인 태도가 심화된다. 한때는 나도 내선순환 열차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치고지나가는 것들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던 적도 있지만, 남는 건 나 자신의 정신병뿐이라는 걸 언제부턴가 깨달았다. 정신병 걸려봐서 그것이 오는 느낌을 안다는 것도 다행한 일이다. 이제 오기 전에 알아챌 수 있다. 누군가 건드리지 않는 외진 곳에 내가 있다는 게 어떤 면으로는 복이라는 것도 이젠 안다.


나는 까치산역에서 내 몫의 열차를 기다린다. 내가 올라설 차례가 되면 열차를 타고 하루하루의 통근을 서핑하듯 즐긴다. 누군가는 이 업계에서 내선순환 외선순환 열차를 타고 다정하게 돌며 왁자지껄 즐겁게 지내고 있겠지만, 신도림역에서 환승하지 않으면 어떤 이야기들은 내게 도달할 수 없고, 나는 그런 내 처지의 평화로움이 퍽 마음에 든다.



최치원의 재가야산독서당을 옮겨본다.

처음 이 시를 배우던 고등학생 때도 나는 저 가야산에 살고 싶었다.

지금 내가 도달한 까치산역 같은 직장생활의 처지는 가야산과 다를 게 없고,

나는 요즘의 나의 삶이, 골방에서의 주경야독이 퍽 마음에 든다!


狂奔疊石吼重巒 첩첩한 바위에 무겁게 달려 겹겹한 산이 울려

人語難分咫尺間 지척에서도 사람들의 말 분간하기 어려워.

常恐是非聲到耳 항상 시비의 소리 귀에 닿을까 두려워

故敎流水盡籠山 일부러 흐르는 물로 다 산을 둘렀네.


『孤雲集』 卷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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