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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텍이 Dec 20. 2021

인생의 그래프에 그려진 언덕

삶기술학교 뉴스레터 제삶지대 69호 2021. 11. 26. Fri

오늘의 BGM - 아이유의 '아이와 나의 바다'

독자님, 최근에 비즈니스 외의 명목으로 무언가를 같이 할 ‘친구 / 동료’로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 적 있으신가요? 저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지 않았는데 근 몇 개월 동안 친구 목록을 바삐 업데이트한 듯해요. 태생부터 집순이에 바깥 모임을 좋아하지 않아서, 동아리도 안 들어가고 늘 집 구석에만 있었는데, 삶기술학교에 와서 많은 경험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답니다. 


새로운 집단에 들어가 새로운 사람을 사귄다는 것, 그 세계로 다이빙한다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내면의 변화를 위한 한 발걸음이고 더 넓은 세계로의 도약이죠. 새로운 도전을 얼마나 잘 견디느냐, 무엇을 목표로 하느냐 같은 디테일한 부분은 사람마다의 차이는 있을테지만, 도전을 한다는 것 그리고 원하는 바를 향해 시간과 노력을 쏟고 견디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이 드는 일이겠죠?


제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대학 교양 수업이 하나 있는데요. 그 수업은 간단하게 화학의 역사를 훑으면서, 거기서 배운 개념으로 우리 사는 세상을 다시 돌아보는 그런 수업이었어요. 그 수업에서 ‘전이상태’라는 것을 배웠는데요. 전이상태라는 건, 물질 A가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전혀 다른 물질 B가 되는 과정에서, 에너지적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가는 방법을 거칠 때 필요한 <가장 높은 에너지 상태>를 뜻해요.

그러니까 A에서 B로 갈 때, 변화를 위해서 무조건 에너지가 쓰이는데 어느 일정 이상의 에너지를 써야만 (=활성화 에너지) 화학적 반응이 일어난다는거죠. 그런데 문제는 에너지를 마구 써서 전이 상태에 닿았는데,  전이 상태에 진입한 순간부터 가장 느린 반응속도를 낸다는 거에요. 장벽이 분명히 존재하고, 이걸 넘겨야 하는게 어려운 것이죠.


이 개념이 아마 화학 실험에만 적용되는 개념은 아닐거에요. 우리가 사는 방식에 대입을 해본다면, 우리 각자만의 목표를 위해 가는 길 위에,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내 마음과는 다르게 슬로우 걸린 변화들은 우리를 지치게 할거에요. 그리고 또! 한순간 걸린 슬로우만이 문제일까요? 문제는 이게 한 번이 아니라는 거죠. 우리는 수없이 많은 언덕을 만나고, 무한한 변화를 겪어요.


그렇지만.. 그 전이상태의 장벽을 넘는다면, A라는 물질은 B라는 물질이 되어 에너지적으로 좀 더 안정적인 상태가 되어요. B가 된 상황에서 A로 역변화하기엔, A에서 B로 올 때 쓴 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하므로 다시 쉽게 돌아가지 않고요. 우리가 지금 많은 전이 상태를 지난 물질이라 생각한다면, 무언가 도전 후 ‘쓸 데 없는 일이다’ ‘아무리 해도 원점으로 돌아온다’는 생각은 틀린겁니다. 무언가를 도전하고 그 이전으로 돌릴 수 없는 새로운 내가 된 것이니까요. 

여기서 만난 것들은 모두 다 처음이었고, 다 제각각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사람들! 삶기술학교로 모인 사람들은 단 한 명도 겹치지 않고 전부 다 다르더라고요.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변화를 맞이하기 위해 제 발로 걸어들어온 사람들’이었어요. 제가 위에서 말한 전이상태를 기꺼이 맞이하려고 온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누군가는 삶기술학교에 오기를 선택하는 것 자체가 전이상태를 넘을 만큼 큰 에너지를 쓰는 일 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이 정도쯤이야’라는 생각으로 가뿐하게 올 수도 있는 것이지만.. 다들 무언가 새로움을 바라고 들어온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얘기에요. 그리고 그 기대만큼 분명 이 공동체에 속하게 된다는 것은 둘도 없을 경험을 하는 거라 굳게 믿고 있어요. 

분명히 경험이 새로운 변화로 가는 길에 있을 수도, 이 자체로 어떤 변화 과정의 에너지 장벽을 낮추는 촉매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요. 무엇이 되었든 응원하고자 합니다. 독자님은 어떠신가요?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독자님께서 이곳에 오시지 않더라도, 지금 계신 그곳에서 변화를 기꺼이 맞이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만약 변화 한가운데에서 힘들어하고 계시다면, 혹시 지금 본인이 전이상태일 거라는 생각으로 다시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은 어떠실까요?

독자님 모든 게 어렵고 벅차게 느껴지는 시기를 마주할 수 있죠. 2021년이 끝나가는 이 대목에 많은 분들이 허무함 같은  감정을 겪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어요. 그때에 삶기술학교에 이번 주에 새로운 8/9기들이 왔고, 그들을 보며 삶기술학교에 처음 왔을 때 그 마음이 떠올라 오늘 편지를 쓰게 되었어요. 


여러 번의 전이 상태를 넘었다는 걸 마음에 품고 있으면, 다음 도약으로의 도전을 이전보단 덜 두렵게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감정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매일 같은 날을 다르게 살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생각하니, 독자님과 이 감정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자님 어떠신가요? 마음속으로 인생 그래프를 그리며, 오늘이 아니더라도 유독 힘든 날들엔 내가 전이상태에 있다는 생각을 해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그동안 숱한 도전을 하고 변화를 겪어온 지난날의 독자님을 응원해 주며 동시에 다음 계절의 내 모습을 그리며 남은 올해를 정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어요.


오늘도 독자님을 응원하며, 이번 레터의 본문을 이쯤에서 마무리하려고 해요. 독자님! 이번 주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벌써 금요일인데, 주말을 만끽하시길 바라요. 다음 주에 뵐게요, 건강 조심하시고요!


- 삶기술학교 YON


제삶지대 인터뷰  | 더 큰 나를 마주하기 위해 한산에 온 사람
- 삶기술학교 8기 제이

욘 : 삶기술학교에 오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제이 : 이유가 복합적이에요, 제가 다니는 MTA는 커리큘럼상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데, 제가 해외에 있을 당시 코로나가 터져서 활동을 자제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매우 바쁘게 살았거든요. 그때 학교의 리오 코치가 삶기술학교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어요. 


그동안 학교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하고, 혼자 라이프스타일 측면에서 늘 도전을 해오며 일직선으로 이루어진 경제보다는 선순환을 이루는 원형 경제에 스스로가 끌린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런 원형 경제는 도시에 비해서는 오히려 덜 발달된 지역이 그 경제를 이루고 있다 생각했는데요.


삶기술학교가 있는 한산이 기존에 제가 갖고 있던 좀 더 이상적인 경제를 이루는 지역 이미지에 맞닿아 있기도 하고, MTA의 러닝저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삶기술학교를 만난 적이 있던 게 생각났어요. 여기서 무언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렇게 한산에 오게 되었어요.


욘: 어렸을 때부터 여러 나라에서 유학하며 지낸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 성장과정을 거친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는 되려 나가고 싶지 않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제이는 그에 비해 한국에 오자마자 한산행을 택한 것으로 보아 타지를 가는 것을 꺼려 하지 않는 듯해 보이거든요.



제이 : 그건 아니에요. 과거부터 정착에 대한 욕심이 있었는데, 유학 중에는 특히 더 그랬어요. 인도네시아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부모님은 말레이시아에 계실 때 ‘내가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돌아갈 곳은 어디인지’ 혼란이 왔어요.


부모님이 사는 지역인지, 내 자취방이 있는 곳인지, 한국에서 할머니가 계신 곳인지 같은..


그런데 집 / 정착에 대한 욕심과는 별개로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해야 하는 성격이긴 해요. 그래서 한산에 오게 된 것도 원래 성격대로라면 안 왔을 텐데, 여러 상황이 맞물리면서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발동하게 되어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욘: 제이의 얘기를 듣다보니 개인적으로 부모님이 이끄셔서 제이가 여러 문화권에서 생활하게 되었겠지만, 저는 제이의 행보를 보면서 ‘도전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맞나요? 


남들과 비교했을 땐 많이 도전적인 성격은 아닌 것 같긴해요. 


일 년 이상은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못했어요. 완벽주의 성향이 있기도 하고, 시작은 늘 잘하는데 실증을 잘 내는 편이기도 하고요. 또 시작해서 더 깊은 단계로 가기까지 남들과 같은 과정을 걷는데 제가 특히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MTA라는 학교를 선택하게 되기까지 더 도전적이신 부모님의 도전을 따르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그 이후로는 부모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성격이 점차 바뀌고 있는 중이에요.

제이에게 용기를 준 음악  '새소년 - 자유'

욘: 그렇다면, 부모님의 선택을 많이 따랐다고 하니 제이가 선택한 ‘인생에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일까요? 결정하기까지 정말 힘들었는데, 막상 하고 나니까 내가 바뀌었다- 하는 일이 있을지요?


제이 : 혼자 고민하던 일이 있었는데, 그 고민을 MTA에서 만난 친구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어요. 사실 그 고민은 예전부터 어딘가에 소속되길 원했고 소속감에서 안정을 찾던 제가, 저 스스로를 가두면서 생긴 고민이었어요. 그런데 그날 만난 친구에게 고민을 이야기했고, 그 친구가 자세히 들어주어서 그 대화 후로 “내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나는 나다”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됐어요.


내가 나를 굳이 가두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그 대화 이후로 세상을 좀 능글맞게 바라볼 수 있게 됐어요. 이전에 무겁게 다가오던 일들을 가뿐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욘 : 그날을 기점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하니 다행이에요. 역시 고민을 털어놓든, 무엇을 하든 개인적인 의미에서 도전을 했고 그것으로 무언갈 얻어냈으면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그런 의미에서, 삶기술학교에 온 것도 제이가 말하는 것으로 보아 도전인데.. 여기서 얻고 싶은 것이 있을까요?


제이:  여기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요. 많은 지역을 거치면서 ‘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산다’는 것을 직접 보고 배우는 것들이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환경을 바꾸고 싶은 마음에 찾아온 한산에서, 사람들을 보고 배우며 용기와 끈기를 얻어 가고 싶어요.

“여기서 이 악물고 해보자. 나도 끝까지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이거든요. 한 달 동안 잘 마치고, 끈기를 얻기를 – 또 나도 할 수 있다고 내게 용기를 줄 수 있는 ‘나’를 얻기를 바라고 있어요. 

제이에게 영감을 준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인터뷰를 마치며..


사람은 사는 공간에 대한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사는 곳을 바꾼 다는 것은 곧 내 삶의 모습을 한 번 바꾼다는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이 변화를 단순히 ‘이사’라는 이벤트 정도로 생각해도 힘이 들기는 매한가지죠. 그 과정을 제이는 수도 없이 거쳐왔다고 생각하니, 씩씩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선택들이 온전히 자기가 한 것이 아닌 부모님의 추천에서 비롯된 것이며, 스스로가 도전적이지 않다고 하지만, 제이가 한 활동들을 보면 개인의 용기 없이는 어려운 일들을 한 것 같아요. 흔하지 않은 형태의 대학을 선택한 것도, 한산을 제이의 선택을 오게 된 것도 그런 것 아닐까요? 


독자님, 변화를 찾아 나선 제이의 이야기 어떠셨어요? 제이는 여기서 사는 사람들 (주민, 같은 삶지니들 모두)을 보며 많이 배워가고 싶다고 했는데요. 제이와 인터뷰하는 저 순간에, 제가 제이에게 무언가 배우고 새로움을 배워간 것처럼 삶기술학교 안에서 제이도 스스로를 이끌 수 있는 많은 에너지를 얻어 갔으면 해요. 그리고 이 인터뷰를 읽어주신 독자자님의 세계도 제이의 목소리를 만나, 조금 더 넓어졌으면 좋겠어요. 

독자님과 제이의 세계에 활력이 넘치길 바라며-  다음 인터뷰를 기약할게요.


소개하고 싶은 것들
인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장면을 놓치지 말기로 해요
:  영화 - 원더풀라이프 (1998)

오래된 관공서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듭니다. 나이와 성별이 전부 제각각인 사람들이에요. 이곳은 림보, 죽은 사람들이 일주일간 머무르며 자신의 가장 소중한 기억을 고르는 곳입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선택하면 거기에 있는 스태프들이 최선을 다해 그 장면을 영화로 만들고, 그 장면을 보며 영원으로 가게 되는데요.


비행을 하며 자유를 느꼈을 때의 장면을 고른 조종사, 아내와 영화를 보고 난 후 공원 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고른 사람, 애인이 전쟁에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던 때를 고른 누군가.. 


그렇게 슬프거나 극단적으로 감동적인 장면이 아닌데도, 영화를 보며 내내 눈물이 나던데요. ‘과연 내가 마지막에 보고 싶은 장면은 뭘까?’라고 스스로 던진 질문에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해서 일까요. 사는 건 늘 후회일 뿐이라고 생각해와서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을 수도 있는 장면을 지나쳐 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정확한 이유는 꼽기 어렵지만, 분명한 건 이 영화를 통해 앞으로는 후회하며 자책하지 말고 내가 겪는 순간을 잘 보듬어 안고 가자는 목표를 얻게 되었어요. 도전하지 않은 것에 후회말고, 도전을 멀리하지 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요. 앞으로 만날 장면들이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장면으로 만들겠다 되뇌이게 되었답니다.

님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 인생의 단 한 장면만 볼 수 있다면 무얼 고르시겠어요?
그 순간이 바로 떠오르시나요? 


스스로를 믿는 마음에서 스며나온 가사 : 아이와 나의 바다 

배움 없는 길은 없고

변화 없는 사람은 없다는 걸 생각해보면

내 마음만큼 잘 따라주지 않는 나 자신도

내가 바뀌고자 결심했던 그 순간의 나보다는 더 성장한,

그때와는 다른 내가 된 거라는 걸 알수 있어요. 


당연한 것 같은 이 말이,

살다 보면 잘 떠오르지 않고

스스로에게 더디다며 자책의 한마디를 쉽게 던지게 되는 듯해서요.


이 곡에서는 이미 이 과정을 견디고 생각을 가사에 녹여낸 듯해요




그럼에도 여전히 가끔은

삶에게 지는 날들도 있겠지

또다시 헤맬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아


오늘 이 곡으로 뉴스레터를 마무리해 보는 것은 어떠세요?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뵐게요.


- 사랑을 담아 삶기술학교 YON


편지를 보낸 삶기술학교@한산캠퍼스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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