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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 Aug 20. 2020

실력 없이 성공한 사람들

운도 실력이라는 말의 숨은 의미

친구에게 추천받은 책의 서평을 찾아보다가 ‘이렇게 실력이 부족한 작가가 책을 몇 권씩이나 내는 걸 보니 독자들의 수준이 참 낮은 것 같다’는 내용의 글을 봤다. 사실 실력 없이 성공한 사람들을 꼬집는 말은 꽤 흔하다. ‘저 사람은 다 운빨이야’, ‘실력에 비해 너무 높은 자리에 올라갔어’, 살면서 수십 번은 들어본 말이다. 평소라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을 텐데, 오늘따라 정말 그럴까 의문이 들었다. 이토록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정말 실력 없이 운으로만 성공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왜 그럴까. 운도 실력이라는 말에 압축된 의미들을 들여다보기 위해 실력이 모자란 채로 작가가 되는 상상을 해봤다.


실력이 부족한데 출간을 꿈꾸고 있다면 첫 단계에서 뭐가 필요할까. 이건 답이 쉽다. 자신감이다. 완성도 높은 글을 썼다 해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게 부끄럽다면 첫 계단을 오를 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글이라도 세상에 나올 수 없는 거다.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그걸 덮을만한 매력이 있다는 자신감, 사람들이 내 글을 좋아할 거라는 자신감,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 할지라도 그게 있어야 첫 발을 내딛는다.


다음으론 끈기가 필요하다. 투고가 출판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당연히 실력과 비례한다. 좋은 글을 가지고도 출판사의 문턱을 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전 세계를 사로잡은 원고를 가지고도 열두 번이나 출판을 거절당한 조앤 케이 롤링의 일화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부족한 글로 그 문턱을 넘었다는 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부지런하게, 지치지도 않고, 상처 받지도, 좌절하지도 않고, 계속 문을 두드렸다는 거다. 게다가 출판사가 상품가치 없다고 판단한 글을 계약했을 리 없다. 시의성이 남다르든, 독특한 개성을 지녔든, 뭔가 셀링포인트가 있었기에 출간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책이 나온 뒤에는 무엇보다 비평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해진다. 세상에 나와 다른 책들과 경쟁하다 보면 글의 부족한 부분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독서는 참 사적인 활동이라 읽는 사람의 주관이 많이 반영된다. 비평의 영역은 바다처럼 드넓다. 그렇다 보니 명성 있는 작가들 조차 '이 사람은 왜 유명한지 모르겠다', '거품이 심하다'와 같은 부정적인 비평을 피할 수 없다. 나 역시 읽는 시기에 따라 같은 책을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였던 경험이 있다. 그러니 명성도 없고 내용도 특출 나지 않은 글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관심과 비판을 함께 받게 된다. 그때 비판에 너무 매몰되지도, 좋은 부분만 받아들이지도 않고,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부분을 현명하게 골라 자양분으로 삼아야 한다. 많은 이들이 실패로부터 배우라고 조언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비판을 통해,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은 원래 뼈 아프고, 그래서 특별하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을 다 겪어내고 다음 책이 나왔다는 건 두 가지를 의미한다. 글 쓰는 일에 그만큼 진심이라는 것,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 누가 뭐래도 전 작품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어야, 다음 작품이 전 작품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 새 책이 나온다. 내용이 평범해도 유려한 문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수 있고, 문장이 별로라도 콘텐츠가 명확해 매력적일 수 있다. 빛을 보지 못한 책들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별로 유명하지 않아 서평도 발견하기 힘든 책에서 감동을 느꼈던 적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그 역은 성립한다. 빛을 본 책은 어떤 이유에서든 독자를 만족시켰다는 뜻이다.


자신감, 끈기, 비판 수용력, 진심과 매력. 정리해놓고 보니 다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모두 쉽게 갖추기 어려운 삶의 강력한 무기들이다. 물론 여기에 실력까지 갖추고 있으면 더 높은 확률로 성공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실력 없이 얻었다는 누군가의 성공도 다른 수많은 요소를 만족시켰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실력이 있어도 재야에서 빛을 보지 못하거나, 운으로 실력에 비해 큰 성공을 거두는 경우도 분명 있을 수밖에 없다. 비평하는 입장에서 충분히 이를 꼬집을 수 있다. 그런 당연한 현실을 부정하면서 모든 결과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요소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러나 무언가 시도하려는 입장이라면 다른 해석법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인생이 나보다 더 쉬울 거라는, 상대의 성취가 운이라는 생각에는 얻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남의 성공이나 시도 자체에 엄격한 기준을 세우다 보면 자신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게 된다. 작은 시도에도 큰 용기가 필요해진다. 그렇게 망설이는 동안, 시도하는 사람들은 실패할 기회를 얻는다. 실패한 사람들은 그로부터만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얻고 더 성장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행동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완벽주의를 걷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게 완벽해졌을 때 시작하려 하다간 그때가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결국 추천받은 에세이를 읽었다. 문장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글 안에 담긴 감정의 깊이가 느껴졌고, 읽는 사람을 다독이려 하는 작가의 따듯한 마음이 엿보였다. 몇 년 전 재미있게 본 영화를 친구에게 추천했던 적이 있다. 친구는 대번에 자신은 그 영화가 너무 별로였다고 말했다. 왜 인지 물어보니 이유가 술술 나온다. 듣고 보니 정말 어떤 소재는 마무리가 제대로 안되었고, 어떤 부분은 확실히 개연성이 떨어졌다. 친구가 실망한 포인트들이 다 이해가 갔다. 이처럼 같은 작품을 보고도 어떤 요소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러니 역으로 생각해보면, 실력 없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내가 실력이라고 인정하지 않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방면에 특출난 것일 확률이 높다. 어쩌면 용기라는 건, 세상에 다양한 관점이 있다는 걸 온전히 받아들여야 얻을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실력이라는 건, 그런 용기를 바탕으로 자신을 믿고 한 발짝씩 나아가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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