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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 Dec 16. 2022

우리는 어떻게 특별한 사이가 될 수 있을까?

인간관계, 사랑이 힘든 과학적 이유

타인이라는 복잡계


매우 많은 요소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서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 시스템을 복잡계라고 합니다. 용어는 낯설지 모르지만, 예시를 따로 들 필요가 없을 정도로 현실 세계의 거의 모든 시스템이 복잡계예요. 금융, 경제, 사회, 문화, 실험실을 떠난 거의 모든 것, 아니 그렇게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한 사람의 인간 역시 복잡계입니다. 우리의 몸도 복잡하고 정신도 복잡한데, 실은 그 두 가지가 분리되지도 않죠.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매우 복잡한 존재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경험을 했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많은 생각을 하니까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상황도 항상 특별하고 고유한 것 같아요. 하지만 타인에 대해 생각할 때는 꽤 단순한 태도를 취하곤 해요.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기적인 사람, 이타적인 사람. 대충 이러저러한 요소를 가지고 있으니 뻔히 이러저러한 사람이겠지 생각하곤 해요. 우리 자신의 마음과 상태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남의 생각을 대체로 읽을 수 있다고 착각하곤 합니다. 때로는 단순한 말 몇 마디와 행동 몇 가지로 타인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우리 자신도 쉽게 바꾸지 못하면서 말이에요. 타인은 몹시 복잡한 존재이고, 우리는 상대의 생각을 절대 읽을 수 없으며, 쉽게 바꿀 수도 없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왜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느끼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이 단순한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깊어요.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회적인 관계를 맺으며 번영해왔어요. 사회적 관계가 우리에게 유용하고 꼭 필요했습니다. 이런 관계를 맺기 위해서, 그리고 그 관계 안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관계의 질을 판단하기 위해서, 우리는 상대의 내면 안에 있는 정보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너무 당연하게도, 육체적 경계 너머로 서로의 정신을 직접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또 상대방 스스로도 자신을 잘 모를 때가 있고,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상대의 말을 그대로 믿는 대신, 행동과 표정, 말투와 어휘, 그 모든 것들을 세심히 관찰하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이 판단 과정에서 어떤 자료를 가져다 쓸까요? 우리는 우리의 정신 안에 있는 자료들로 상대의 행동을 해석하고 시도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감정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에 감정이 주는 지속적인 자극을 무시하고 생각할 수 없어요. 이 지점에서 굉장한 오해들이 발생합니다. 전혀 믿을만하지 않은 사람을 철석같이 믿어버릴 수도 있고, 진실된 사람을 의심스럽게 여길 수도 있죠. 게다가 우리는 상대방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데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기 때문에 실제보다 훨씬 단순한 존재로 일반화해서 생각하게 돼요. 물론 상대도 우리를 그렇게 바라보고요. 우리는 서로를 오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깊이 이해하는 관계가 좋은 관계일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좋은 관계를 가지기 매우 힘들 겁니다.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을 때만 겨우 상대를 조금 이해할 수 있거든요. 상대를 오롯이 알고 이해해야만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다면, 좋은 관계를 가지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집니다.



특별함은 그냥 생겨난다


복잡계에서 서로 다른 요소들이 얽혀 새로운 성질이 만들어지는 것을 창발이라고 해요. 전체에는 단순히 하위 위 요소들의 합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물 분자는 수소와 산소로 이루어져 있지만, 물의 성질은 수소와 산소의 성질의 합이 아닌 것처럼요. 인간과 인간이 만난다면 어떨까요? 그 관계의 성질 역시 단순히 두 사람의 성질의 합이 아닐 겁니다. 조합 안에서 새롭고 특별한 무언가 발생해요. 매우 미세한 자극들을 무의식의 차원에서 주고받고, 서로의 경험과 성향과 감정에 따라 상대의 행동과 말을 적극적으로 오해하기도 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고유한 느낌들이 창발 합니다. 어떻게 생겨났는지 완벽히 이해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어요. 그런 과정을 거쳐 관계가 형성됩니다. 이 모든 과정이 이해와는 거리가 멀어 보여요. 아주 좋은 관계도, 아주 나쁜 관계도 적절한 오해와 적절한 이해의 조화 안에서 만들어집니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관계, 스트레스가 되고 자극적인 관계, 미묘하게 위화감이 드는 관계,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을 주는 관계들. 모든 관계에는 고유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느낌들은 우리의 통제 바깥에서 그냥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두 복잡계가 특정한 순간 얽히면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재현될 수 없습니다.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어요. 그러니 특별함을 주는 관계가 있다면 소중히 여겨야겠죠.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조절할 수 있지만, 관계를 통제할 수는 없어요.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의도대로 전달될 가능성조차 별로 없습니다. 의도대로 전달된다 해도 그게 좋은 일이지는 모르는 일이에요. 애초에 그 의도조차 상대에 대한 오해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거든요. 그러니 우리는 좋은 느낌을 주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 너무 노력할 필요 없어요. 그리고 그런 관계가 사라질까 봐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라진다 해도 너무 자책할 필요 역시 없어요. 생각보다 우리의 통제 바깥에 있는 문제거든요. 복잡계인 현실 세계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그냥, 일어납니다.

통제할 수 없다는 것, 재현할 수 없다는 것, 다소 절망적으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만큼 또 새로운 가능성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와 결이 맞는 사람, 위로가 되는 사람, 자극이 되는 사람, 특별함을 주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겁니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다가와서 따듯함을 주고 오래도록 머물러줄 거예요. 때로 특별함은 우리의 의도 바깥에서 그냥 생겨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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