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아요.
맞지 않은 공간에 남겨진 기분으로
회사에 다닐 땐, 일을 꽤 열심히 하는 직원이었다. 뭔가 욕심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승진하고 싶다거나, 이 분야에서 능력을 키워 전문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만 얼마만큼의 인내력과 책임감 덕분에 그럭저럭 좋은 직원으로 지낼 수 있었을 뿐이다.
이삼 년 회사에 다니다 보니 주위에서 승진할 마음이 있는지 슬슬 물어왔다. 승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 본 적이 없었다. 관심이 없으니 정보를 찾아보지 않았고, 진급하면 급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뭐가 더 좋아지는 지도 잘 몰랐다. 솔직하게 전혀 생각이 없다고 대답하곤 했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속으론 준비하고 있을 거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 듯했다. 그러나 나로선 오히려 승진을 목표로 자격증을 따고 공부하는 이들이 더 신기했다. 그런 열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회사에서 열정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을 종종 본다. 회사 생활이 꽤 즐겁다고 말하는 사람, 이곳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거나, 성장하는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이들을 볼 때면 부러운 만큼 불안하기도 하다. 어쩌면 나만 엉뚱한 곳에서 인내력을 발휘하고 있는 게 아닐까. 지금보다는 더 즐겁게, 긍정적으로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물 밖에 나온 물고기가 된 기분으로, 낮에 깨어있는 올빼미가 된 기분으로, 알맞지 않은 공간에 남겨진 기분으로, 영혼 없이 책상 앞에 앉아 파일을 여닫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그런 마음이 점점 심해졌다. 오늘도 그럭저럭 참을만하고, 이번 달도 괜찮고, 올해도 문제없지만, 어쩌면 몇 년은 더 이렇게 지낼 수 있겠지만, 끝내는 어떻게 될까. 앞으로 몇십 년 동안 이런 마음으로 버틸 수 있을 것인가를 떠올리면 답답해졌다.
회사에서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다. 회사는 돈 벌러 나오는 곳이니 열정씩이나 가질 필요 없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비슷한 위로를 많이 건넸다. 하지만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을 찾고자 하는 것도 사람의 본성인 듯하다. 잘하고 싶은 것을 잘하게 되는 보람을 느끼고 싶었다. 시도하지 못한 일들이 아른거렸다. 너무 이른 나이에 평생이 결정된 기분이었다. 시간이 무의미하게 흐르는 듯 했다. 이곳은 내가 잘하고 싶은 곳도, 자라고 싶은 곳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