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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어시인 Jun 10. 2021

신세계로부터의 초대

보기만 해도 소통이 되는 신기한 세상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몰랐던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간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그 세상은 바로 소리 없이 서로 바라보면서 수어로 소통하는 세계였다.      


 2018년 어느 여름이었다. 기초반에서 수어를 배우는 중이었는데, 선생님께서 농인 교회에서 하는 여름 캠프에 와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종교가 다르거나 없어도 되니 수어로 대화하는 농문화를 접해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지 가족 단위로 편안하게 참여해도 된다고 하셨다. 낯을 가리는 편이라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떻게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수어로 대화하는 그들을 보며 배우고 싶어서 참여하겠다고 했다.


 나는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입 모양을 꼭 보아야 구어(음성언어)로 서로 소통이 가능한데 수어로 진행되는 캠프에서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여름 캠프라서 수영장에서 물놀이하는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보청기를 쓸 수가 없기에 걱정이 앞서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지기도 했다.      



 출발 당일 가족들과 함께 집합 장소에 도착했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선생님을 제외하고 모두 처음 뵙는 농인들이었지만, 환하게 우리 가족을 맞아주었다. 내가 아직 수어가 어설퍼 원활하게 대화가 이루어지진 않았다. 내가 아는 만큼 초보 수어로 이름과 가족 소개만 했는데도 다행히 모두가 좋아해 주셨다.  


 캠프 장소에 도착하여 본격적으로 물놀이 프로그램을 시작하는데 보청기를 뺌과 동시에 불안감이 커져갔다. 매년 여름 워터파크에 아이들과 함께 갈 때마다 느끼던 그 불안감이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내가 아이들의 말을 들을 수 없어 혹시나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까 봐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물놀이를 다녀오는 날이면 집에 오는 순간 불안감과 긴장이 풀리고 쌓여있던 피로감이 확 몰려왔다. 나에게 물놀이는 불편한 행위였다. 물론 재미와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는 있었겠지만, 맘 편히 즐겨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경험을 가진 나는 불안감에 휩싸인 채 농인들이 있는 수영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이 생겨났다. 그들이 수어로 자유롭게 소통하고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하, 꼭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귀로 듣지 않아도 서로 눈으로 보면서 손으로 수어를 하면서 대화하면 되는 거구나!’


 그 순간 정말 신기하게도 불안과 걱정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수어를 배운 지 갓 2달이 넘은 상태여서 어설프고 대화하기엔 많이 부족하지만, 귀로 들을 필요 없이 그저 눈으로 집중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게 충분히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었기에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고 독특한 경험이었다.      


 이 캠프에서는 수어로 대화하면서 소통하면 되기에 구어로 대화할 때 필수인 보청기도 필요 없고 고장 날까 봐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그 캠프 안에서만큼은 말소리와 입 모양에 대한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물놀이가 끝나고 식사 시간, 레크리에이션 시간 등등 모든 프로그램에서도 전부 수어로 진행하기에 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날 때도 알람 들을 필요도 없이 먼저 일어난 사람이 옆 사람을 흔들어 깨우면서 하루가 시작되었다. 소리 없이 다채로운 수어로 소통하는 농인들이 너무나 부러웠고, 얼른 그 세상에 들어가 나도 수어로 그들과 함께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렇게 새로운 세상을 접한 나는 내 삶과 나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보청기를 끼고 상대방 입 모양을 보고 말소리를 들으며 상대방에게 맞추어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답게 나에게 맞춰서 살아가도 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구어이든 수어이든 문자이든 모든 방식에서 나는 보면서 소통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상대방의 입 모양과 표정이 필요했었나 보다. 스마트폰이 나온 이후에는 카톡 등 문자 형태로 대화하는 것이 전화 통화하는 것보다 훨씬 더 편안함을 느꼈다.


 수어를 배운 이후에는 영상 통화로 서로 얼굴을 보며 수어로 대화하는 것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잘 듣지 못해 나 자신을 외면하고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벗어나 내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것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음에 감사하고, 느려도 서툴러도 괜찮다고 나 자신을 아낄 수 있는 시간이 늘어갔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나를 만나고 내가 몰랐던 나의 마음도 알게 되었다. 내가 우주에 있는 것처럼 소리 없이 보는 세상 속에서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던 중, 한 단어가 내 머리에 확 떠올랐다. 바로 ‘시인’(視人, Seeing Person)이라는 단어를 종이에 적어봤는데, 보는 사람이라는 뜻을 나타냈다. 물론 내가 시(詩, Poem)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중적 의미로 보는 사람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어서 딱 내게 들어맞았다.      


‘그렇구나! 나는 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입 모양을, 수어를 그리고 글자를 보는 것을 통해 소통하는구나. 그래서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하는 상황 속에서 더욱 답답함을 느꼈던 것이구나.’      


 대화할 때 상대방의 입 모양이 안 보여서 나는 단 한 문장도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간단한 단어를 아무리 큰 소리로 말을 해주어도 입 모양이 안 보이면 전혀 소통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내겐 ‘소통 단절되기’가 되어버린 요즘 참 답답하고 씁쓸한 마음이 차오른다. 예전처럼 하루빨리 마스크 필요 없이 사람들의 입 모양도 보이고 서로 얼굴을 맘 편히 바라볼 수 있는 보이는 세상이 돌아오면 좋겠다. 새삼 잃어버렸던 일상이 다시 한번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누구나 보면서 수어로 함께 대화하는 세상이 와준다면 농인이든 청인이든 누구든지 청력의 유무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서로 소통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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