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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어시인 Aug 17. 2022

3代 전통 대중 요리 예찬

누구에게나 인생 요리가 있다.

“오늘은 그거 해줄까?”     


 내가 어릴 적 엄마께서는 내가 입맛이 없거나 딱히 원하는 반찬이 없을 때, 항상 해주시는 메뉴가 있다. 계란간장밥.


 계란을 탁 깨뜨려 뜨거운 기름 위로 촤르륵 올리면 투명한 젤리 같던 흰자가 우윳빛 젤리처럼 서서히 익어간다. 그리고 중간 지점의 노른자까지 하얀빛으로 변하면 잽싸게 반대쪽으로 확 뒤집어준다.      


‘노른자가 터지지 않게 살살하면서도 힘 있게 뒤집는 기술은 어떻게 해서 배우신 걸까??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11살인 나에게 비친 엄마의 뒤집기는 마치 호텔 5성급 셰프만이 해내는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고급 기술이었다.     


 식욕을 자극하는 짜고 달달한 맛을 가진 검은 간장, 콧속까지 들어와 침을 꿀꺽 삼키게 하는 고소한 참기름을 넣어 계란과 비빈 밥은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었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고, 반찬도 하나만 있으면 되었다. 어느 날은 배추김치 하나, 다른 날에는 잘라놓은 김 하나만 있으면 충분했다. 20년을 넘게 먹어도 그거는 여전히 ‘최애’ 메뉴였다. 시간이 없을 때, 반찬이 없을 때, 가성비가 끝내주는 밥상을 뚝딱 차릴 수 있다. 먹을 때마다 항상 최고의 만족감을 느꼈다.     


 배고픔을 달래던 계란간장밥을 어느새 나도 만들 수 있는 때가 왔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든 그 밥은 엄마께서 해주신 맛을 내진 않지만, 비슷하게 흉내를 내며 여전히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했다. 결혼하고 만들어준 계란간장밥은 남편에게도 환영을 받는 최고의 메뉴였다. 하지만, 엄마께서 해주신 부드러운 목 넘김, 향긋한 따뜻함, 마음속이 촤아~~ 하고 풀리는 식감은 내가 한 것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여전히 엄마의 손을 통해야만 나타나는 고유한 특성이었고, 엄마께서는 지금도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고급 기술을 보유하신 것이 틀림없었다.       


 어느덧 내 아이가 커서 11살이 되었을 때, 내가 어릴 적 처음 계란간장밥을 해 본 것처럼 아이에게도 만드는 법을 가르쳐줬다. 생각보다 제법 잘 만들어서 대견했고, 내가 없어도 혼자 뚝딱 잘 챙겨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안심되었다. 엄마, 나 그리고 아이에게까지 3대에 걸쳐 계란간장밥은 그렇게 맥을 이어갔다.     


 가끔 혼자서 밥 먹을 때면, 계란 프라이를 후딱 만들어 간장 1 큰 술, 참기를 2 큰 술을 넣어 챱챱 비벼준다. 참기름 향을 좋아하는 나는 엄마의 레시피를 변형하여 나만의 레시피로 계란간장밥을 만들어 먹는다.      


 “ 음~~~~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어!! ”     


 고요한 식탁 위에 앉아 허겁지겁 해치우고 나서 왠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온다. 엄마께서 해주신 그 식감이 없어서일까, 맛이 있으면서도 없는 듯한 계란간장밥 한 끼를 먹고 나면 그 때가 그립다. 엄마의 빠른 손놀림으로 샥샥, 탱글탱글한 노른자가 반숙으로 된 상태를 톡 터뜨려 밥알을 노란빛으로 코팅한 그 요리, 모든 재료가 잘 어우러진 환상적인 그 맛이 떠오른다. 마치 엄마의 사랑이 밥알 한 알 한 알에 듬뿍 들어가 코팅되어서 내가 한 요리와는 맛이 다른 가보다. 언젠가 내 아이도 내가 만들어준 계란간장밥을 그리워하게 되지 않을까?     


 언젠가 예전에 내가 어렸을 때, 엄마께 여쭤본 적이 있었는데 이 요리는 엄마께서 개발한 메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에서만 먹는 특별한 메뉴인 줄로만 알았는데 커서 보니 생각보다 많은 집에서 먹던 메뉴였었다. 유일무이한 메뉴가 아닌, 대중적인 메뉴였었다. 요즘엔 계란간장밥을 위한 간장이 따로 제품으로 출시될 정도이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해 먹는 요리인지 짐작이 갔다. 김치처럼 집집마다 다 해 먹지만, 맛이 다르고 들어가는 속 양념이 조금씩 다른 것처럼 계란간장밥도 마찬가지 아닐까? 계란 익힘의 정도, 간장과 참기름의 배율, 집집마다 다른 쌀밥의 찰기, 비빌 때의 속도와 손맛 등이 다 다르니 고유의 집밥 메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집안 대대로 이어져 오는 전통적인 요리 문화와 대중적인 재료가 만나 누구나 쉽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이 계란간장밥이다.      

 아이도 커서 가정을 이루고 자신의 아이를 낳으면, 살짝 귀띔해줘야겠다.     



“이 계란간장밥 말이야, 사실 3대에 걸쳐서 전통 대중 요리로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거야. 너의 아이에게도 요리법을 가르쳐줘서 4대 전통 요리로 거듭날 수 있게 해 줘. 엄마가 너에게 사랑을 전해준 것처럼 너도 너의 아이에게 사랑을 전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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