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질문을 받는건 상대의 공간에 나를 초대하는 것이다.
요즘 들어 6학년이 된 딸은 세상에 대한 눈을 점점 더 크게 뜨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단순히 보이던 것, 들리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던 아이가 이제는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궁금해하고, 왜 그런지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의 호기심은 때로는 놀랍고, 때로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제는 단순히 “이건 뭐야?”에서 그치지 않고,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로 질문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 질문 속에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가치관과 태도를 배우려는 아이의 마음이 느껴진다.
어느 날, 딸이, “엄마, 설탕은 몸에 안 좋다면서 왜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먹을까?엄마 생각은 어때?” 또 다른 날에는 “엄마, 커피도 약물 중 하나인 거 알아?사람들이 많이 마시는 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다. 순간 대답하기 전에 잠시 멈칫했다. 나도 커피를 하루에 두잔이상 마시는 사람 중 한명이라 단순히 나를 옹호하는 말을 해야할지 딸의 생각에 동의한다고 해야할지 선뜻 입이 열리지 않았다.
최근에 이런 질문들을 들으면서 단순히 세상에 대한 지식의 확장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세상 속에서 자기만의 위치를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부모의 생각을 물으며 그 안에서 자신이 닮고 싶은 부분을 찾기도 하고, 때로는 “왜 엄마는 그렇게 생각해?”라며 의아해한다. 이제 이 아이는 더 이상 내가 가르쳐주는 대로만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나와 동등하게 생각하고 대화하는 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
어제는 축구 연습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또 하나의 질문이 던져졌다. “엄마, 우리반에도 자기 성을 여자 남자가 아니라 다르게 부르고 바꾸는 애들이 있어. 세상이 그런 사람들도 인정하고 존중받아야 하는데,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 단순히 이름의 일부를 바꾸는 문제 같지만, 그 안에는 정체성, 가족, 사회적 인식, 그리고 개인의 선택이라는 복합적인 주제가 숨어 있었다. 잠시 침묵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생각에 동의해. 엄마 생각은, 그건 아주 개인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해. 어떤 이유로든 자기 이름이나 성을 바꾸고 싶다는 건,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거나, 자신을 더 잘 표현하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지.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스스로의 선택을 책임질 수 있는 용기야.”
대답을 잘 한건지 모르겠다. 부모는 아이에게 답을 주려고 하지만, 사실 아이의 질문은 나로 하여금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고, 스스로의 가치관을 점검하게 한다. 아이가 자라면서 세상에 대한 시야를 넓혀가듯, 나 역시 그 아이 덕분에 세상을 새롭게 배워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질문과 대답은 내가 일하는 고등학교에서도 다르지 않다. 학생들과 커리어 상담이나 진로 지도를 하다 보면,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한 질문뿐만 아니라 내 생각과 가치관을 묻는 질문들도 자주 받는다. “상담사님은 이 전공이 정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부모님 기대 때문에 이 길을 가고 있는데, 상담사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와 같은 질문들이다. 이럴 때마다 나는 학생들이 단순히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고등학생들은 아직 세상을 경험하는 중이지만, 이미 자신만의 관점을 세우고 싶어 한다. 그들의 질문은 때로는 순수한 호기심에서 나오지만, 그 안에는 스스로의 삶을 설계하려는 진지한 고민이 깔려 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한 정답을 주기보다는,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되묻는다. 그 대화 속에서 학생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내가 던지는 질문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관을 조금씩 세워간다. 그런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교육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함께 생각을 키워가는 과정’임을 다시 느낀다.
대학에서 만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20대 중반부터 50대 전후의 학생들 역시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다만, 그들의 질문에는 삶의 경험이 더해진 깊이가 있다. “선생님, 지금이라도 커리어를 완전히 바꾸는 게 무모할까요?”, “가족이 반대하는 선택을 해도 괜찮을까요?”라는 질문 속에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현실적인 책임감과 두려움, 그리고 자기 확신에 대한 갈망이 섞여 있다.
나의 대답들이 그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기지만 되도록이면 진심으로 답하려 노력한다. “정답은 없어요. 다만 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부터 찾아야 해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 자신도 다시금 묻게 된다,
나는 어떤 가치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가치를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가.
경험을 통해 느낀건 나이를 불문하고 생각을 묻는 질문들은 모두 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 속에서 자신의 방향을 찾고자 하는 인간적인 탐색이다.
“엄마, 이건 어떻게 생각해?”
“상담사님의 생각은 어떠세요?”
"강사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내가 누군가에게 질문을 한다는 건 상대의 생각을 내 안에 받아들이겠다는 일종의 초대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런 질문을 누군가에게서 받는다면 그들의 공간에 나를 초대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 초대를 나이불문, 장소불문하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받는 특권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러니 내 생각과 가치관을 매일 다듬고 정리하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