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산, 이상, 하선임, 헛헛JD / 2017 제이펍
나는 학부는 신문방송을 전공했고 2010년부터 대학원에서 HCI를 공부(했다기보다 관련 산학을 열심히)하여 2012년에 SI회사에 입사, 현재 만 5년 차의 UX 디자이너다. 학문적 깊이가 그리 두텁지 못해 UX 디자이너 일을 하면서도 '그래서 UX가 뭔데'라고 하면 위키백과에 나와있는 문장을 그대로 읊으며 '그게 UX야' 하기도 하고, 기획과 디자인 중간쯤을 가리키며 '저게 내가 하는 일이야'라고 말하곤 했다.
본격적으로 회사에서 UX 디자인을 하면서도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던 물음은, '나를 포함하여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UX 디자이너를 자처하는데 이렇게 진입장벽이 낮은 전문가가 과연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와 더불어 '소위 UX 전문가들이 내고 있는 산출물이 과연 업계에서 UX 산출물로서 마땅히 대우받을 수 있을까'라는 약간은 오지랖 넓은 걱정(불만이 약간 포함된)이었다. -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리서치와 마케팅이라는 배경에 UI/GUI, 프로토타이핑까지 업무 범위를 넓히려고 그동안 부단히 노력했던 것도 위의 이유에서 비롯한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 책은 내가 가지고 있던 불만에 대한 사이다 같은 책이다. 또한 나 혼자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면에서 한편 안심이 된다. 앞으로 UX필드에서 일하고 싶은, 혹은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일독을 권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서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했으면 좋겠다.
책 내용의 요약은 앞뒤를 자르고 나 스스로 인상 깊었던 부분을 발췌한 것이기에 한 문장만 봐서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으며 곡해되기 쉽다. 관심 있는 사람은 꼭 책을 구매해서 봤으면 좋겠다. (저자와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임을 미리 밝힌다.)
1. 대한민국의 UX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급속도로 확장되기 시작했던 국내 UX 인력의 수요
다학제적 속성을 위시하여 너도나도 UX 전문가로 탈바꿈, 무분별한 인력 확장
그렇게 만들어지기 시작한 제품들, 옴니아와 아레나폰
덕분에 제조사들이 경험 관점에서 제품과 사용자를 분석하기 시작
딱 저 시기에 S전자 무선사업부 산학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 시기를 옆에서 생생히 지켜본 사람으로서 내용에 대해 크게 공감하며 그때 다른 기업들의 상황에 대해 읽어보는 것은 쏠쏠한 재미를 느끼게 한다. 하나 아쉬운 점은 처음부터 완벽한 제품은 없을진대, 제품의 실패가 곧 UX의 실패처럼 퉁치는 느낌은 조금은 거북했다. 나름 그 제품에서도 경험적으로 성공한 요소들은 있지 않았을까.
2. UX의 명암
세 가지 전문가 유형(신체적, 전략적, 지식)에 비춰보는 UX 전문가 양성 교육과정에 관한 문제
다학제적이라는 말의 함정, UX는 유행 또는 기업의 필요에 의해 수입된 단어
조직적 관점에서의 UX, 타 조직(상품기획, 마케팅)과의 차별성을 드러내야 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학과 디자인 사이, 얇디얇은 UX의 학문적 배경
결국 대기업에서 UX조직은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하게 됨(기업 정치구조에 포함)
정치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UX는 '이전과 다름'을 보여주는 데에만 집중
그 과정에서 의미 있는 결과물의 도출은 뒷전
우리 조직이 만들어진 뒤 1년 후 신입으로 입사하면서 조직이 성장해가는 과정도 또 옆에서 생생히 지켜보았다. 우리 회사 사람이 쓴 것인가를 의심할 정도로 유사한 상황이 묘사되어 있고 그것이 비단 우리 회사만의 현상은 아니라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다만 상품기획, 마케팅과 UX의 구분점을 설명하는 부분은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 마케팅에서도 단순히 소비자만이 아닌 사용자를 고려한다. 사게 만들고 그 뒤는 아 몰랑 하는 부서는 아니다. (요것은 기업에 따라 약간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UX라는 것은 하나의 직군을 나타낸다기보다는 상품 기획 전반에 걸친 사상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3. UX는 정말 필요 없는가
제품 개발에 있어 그래도 한 번은 더 사용자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듦
디자인 연구, 제품 디자인에 있어 사용자를 고려하는 깊이가 생김
디자이너가 상품기획과 출시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됨
갑의 위치가 스펙을 주무르는 제조자에서 다시 소비자로 바뀌게 됨(산업혁명 이전으로 회귀)
개념적 측면에서의 정의되지 않은 'UX'
'사용자가 시스템, 제품, 서비스, 느끼는 총체적인 경험'은 그저 '사용자 경험'이라는 단어를 풀어쓴 것에 지나지 않은 빈약한 정의
돈 노먼의 UX 담론에 대한 비판 (이 부분 진짜 핵 사이다임)
UX / UI / 인터랙션 디자이너, 마케터, 서비스 매니지먼트 각 역할자 간 차이
빈약한, 얇디얇은 UX라는 것에 일백프로 동의한다. 특히 언제나 그래서 어쩌라고? 알아서 잘하라는 이야긴가?로 점철되던 노먼 아재 깔 때는 통쾌함도 느껴진다. 그러나 여전히 역할자 간의 구분은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 당연한 느낌일지도 모른다. 언급된 5개의 직군은 동일 레벨이 아니다. UX라는 것이 전체를 감싸고 있는 상 하위 개념들의 집합이다. 그렇기에 '이거는 UI 디자이너의 일이고, 이거는 UX 디자이너의 일이야'라고 선을 긋는 순간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4. UX의 미래
UX 조직이 제대로 된 기능을 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 1) 유사 조직과의 차별성, 2) 조직 권한 설정, 3) 기존 인력의 재평가
너도 나도 UX 전문가라고 하는 순간, 가장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람이 가장 전문가처럼 보이게 됨
상품기획자와 UX 디자이너는 스스로 나는 프로젝트 매니저인지, 디자이너인지를 결정해야 함
인간의 창의적 활동을 무시한 채, UX 디자인 활동을 표준화시키려고 해서는 안됨
가장 쉽게 현재 인력을 검증하는 방법
1) 제품이나 서비스와 같은 결과물이 존재하는가?
2) 결과물을 직접 만들었는가? 혹은 얼마나 기여했는가?
3) 결과물이 시장에서 얼마나 성공했는가?
4) 지금 당장 이 자리에 동일한 품질로 직접 다시 만들 수 있는가?
현재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UX업계를 구하기 위한 한 방법이 인력의 재편성, "진짜 UX 디자이너는 누구냐?"에 대한 답을 내려야 함
'가장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람이 가장 전문가인척 한다'에서 물개 박수!!. UX 디자인 관점이 아닌 Usability Engineering 관점에서의 표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함. 무엇보다 이 책에서 듣고 싶은 말이 책의 마지막 문장에 쓰여 있는데,
대한민국 UX의 현실은 암담하지만 기존의 대기업 중심의 보여주기 식 업무를 떠나 실제 결과물을 만들고, 사용자들의 심판을 받으며, 그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 책을 마친다.
이게 핵심이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