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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형 Mar 01. 2018

4개월 만에 재이직을 결심한 이유.

핀테크 UX 디자이너는 개뿔

2017년은 UX 디자인을 하는 사람으로서 적지 않은 나이에 점점 줄어드는 자신감과 부실한 포트폴리오로 그 어느 때보다 '과연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 혼란스러웠던 시기로 기억한다. 그래서 10월 즈음, 진짜 고객이 있는 회사에서 UX 디자인을 하겠다며 잘 다니던 곳을 나와 다른 곳으로 이직했다. 


그런데 그 답을 찾기도 전에(정확히는 4개월 반 만에) 다른 곳으로 이직을 결심했다. 조금은 빠르게 커리어의 2번째 직장을 마무리하며 그 과정에서 보고 겪은 것을 공유하면 이직을 고민하는 다른 UX 디자이너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글을 작성해본다. 


첫 이직을 결심한 이유_성장하기 어려운 조건


내가 처음 입사한 곳은 넘나 안정적인 모그룹에 B2B IT 서비스(ERP, 물류, 제조 등)를 수의계약형태로 제공하고 있는 회사였다. 이미 안정적으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사업이 있기에 현상 유지만 해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었다. 그렇기에 입으로는 혁신과 새로운 사업기회를 외치지만 정작 그 혁신을 받아들여 실행할 의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서비스 차별성과 UX를 가지고 승부하는 회사가 아니기에, 또 어차피 모그룹 계열사들이 다른 회사와 계약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에 UX 조직이 있음에도 화면 설계서 작성이나 디자인 시안 작업, 신기술에 대한 UX관점(그놈의 UX관점!! 극혐!!)에서의 대응, 심지어는 제안서에 몇 장 의견을 첨부하는 일도 종종 요구하곤 했다.  


회사 전반적으로 이러한 분위기이다 보니 UX 디자인의 실패와 성공은 실 사용자의 만족보다는 보스의 만족을 위해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 그 보스 중에는 잦은 조직개편으로 인해 비즈니스 환경에 대한 인사이트나 전문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했다. 점점 디자이너 개인의 성장은 더디고 만족도는 지속적으로 떨어져만 갔다. 


나는 더 나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실제 내 과업을 평가하기에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운 상사의 리뷰로 내 업무의 잘함과 못함이 결정되어버리고 내가 무엇을 더 학습하고 노력하면 더 나은 디자인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없는 상황은 점점 나를 더 질리게 만들었고 결국 이직을 결심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내가 갈 다음 회사 조건은..


출시된 제품과 실제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함.  

내가 그 제품을 직접 디자인할 수 있어야 함.  

UX에 관심이 많고 사용자 중심으로 제품을 바꾸려는 전향적인 태도를 조직원들이 가지고 있어야 함.

개발자들과 한 조직에서 일할 수 있거나 그럴 계획이 있는 곳

연봉이 줄어들지 않는 곳.


이 조건으로 이직을 모색하다 보니 한 비 IT기업(무려 금융권!!)과 연이 닿았고 2차 면접(이라기보다 면담에 가까운)에서 '바꾸어 보려 노력하는 곳'이라는 인상을 받아 이직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곳에서의 4개월


'이직은 이혼과 비슷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준다'라는 문구를 어디서 보았더라..? 원래 낯을 가리는 성격과 낯선 환경이 주는 생소함을 책상 위에 놓인 환영의 꽃바구니로 달래기 어려웠다. 그리고 비 IT기업이기에 발생하는 문제는 어느 정도 마음의 각오를 하고 갔다지만 상상보다 더 심각하여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보면,


1. 일하는 환경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툴이 없다.
모든 것이 종이와 메신저와 쪽지를 통해 이루어진다. Jira 같은 툴을 이야기하면 깜놀하는 분위기

보안을 위시한 제한적인 웹 접속 환경.
 데스크 리서치를 위해 핀터레스트 접속하려면 방화벽 예외를 받아야...심지어 핀터레스트가 음란물 사이트로 분류되어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

상사의 의견에 대립되는 의견을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
원체 성격이 물어뜯길 잘해서 이것은 매번 면접을 볼 때마다 면접관들에게 확인했던 질문인데 너무 순진하게 그들의 말을 믿었던 것 같다. 실제로는 그때 들은 이야기와 달랐다.  

2. 조직문화

매 해 조직개편과 업무 순환이 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바뀌게 된다. 조직문화를 만들어내기 쉽지 않다. 

1번의 이유로 사람들의 열정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내가 이 위치에 언제까지 있을 것인지 알 수 없고 이것이 앞으로 내가 할 일이 아닐 수도 있는데 현재 업무에 몰입하기 쉽지 않다. (이것은 사바사이긴 하지만..)

비IT 기업이기에 조직의 키를 잡고 있는 사람도 비IT인이다.
비IT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인사이트 있는 사람들은 분야를 막론하고 어디에나 있다. 그런데 여기는  IT 관련 트렌드에 대해 민감하지 못하다. 매 해 CES, MWC 다녀온다고 트렌디해지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중간관리자들의 무신경함. 
그들의 관심사는 현재 자신이 운영하는 서비스가 문제없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조직이 될 수 있을지, 개개인의 발전을 위해 어떤 부분을 채워줘야 하는지 신경 쓸 시간조차 없다.

모든 의사결정의 권한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
거쳐야 할 레이어가 너무 많다. 그것이 또 실제 사용자를 대표할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경영진이라는 것은 더 큰 그림을 보고 아래 실무진이 공감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첫 번째 책무라고 생각한다. 버튼의 위치나 색상은 실무자에게 맡겨두고 말이다. 


이제 될 대로 되라지 뭐...


찬찬히 내가 일하는 곳을 둘러보다 보니 조바심이 났다. 아 나 어떡하지. 사실 돌이켜보면 각오가 부족했던 것 같다. 세상에서 제일 보수적이고 굳은 조직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조금이라도 바꿔보려고, 그럴 가능성이 보인다면 길게 보고 붙어있고 싶었는데 인내심의 한계가 와버렸다...


이직을 준비하면서 다른 회사의 환경과 문화에 대해 참 많이도 물어보았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고 내린 결론은 소위 케바케, 사바사, 팀바팀이라는 것인데. 유일하게 현재 회사에 만족하는 사람은 외국계 IT기업에 다니는 사람인 것을 보면 진짜 어딜 가나 한국 기업은 비슷한가 보다. 


그래서 어차피 '안정'이라는 것을 버리고 야생으로 뛰쳐나왔다면 앞으로는 더 막살아겠다. 대기업이라는 우산 아래 있어서 개인 실력에 언제나 의문이 있었는데 부딪쳐보고 스스로에 대한 부족함이 느껴지면 더 열심히 하겠지... 그나마 지금처럼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진 않을 것 같다. 커리어 패스나 앞으로 뭐 먹고살지 걱정은 그때 가서 다시 하기로... 다음 회사는 지금보다는 나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커리어 세 번째 회사로 떠난다..

(또 이게 뭐냐며 툴툴대고 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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